[Interview] 스트라보스 카람페리디스 플리머스대 교수 | “슈퍼사이클 K조선, 시설·기술력 더 끌어올려야 中 따돌릴 수 있어”
글로벌 조선 경기가 10여 년 만에 최대 호황기를 맞았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감염병 대유행) 동안 컨테이너 선사의 수익이 늘었고, 국제해사기구(IMO)의 탈(脫)탄소규제 여파로 교체 주기에 도달한 선박이 증가한 데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로 해상 운임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의 수주 낭보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 3사의 올해 계약 합산 수주 규모는 2조1051억원에 이르는데, 글로벌 탈탄소 흐름에 맞춰 LNG(액화천연가스) 관련 분야의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 또 3사가 쌓아둔 수주 잔량도 3년을 웃돌면서 업계에서는 한동안 우리 조선업의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조선업 분야에서 가격 경쟁력이 주무기였던 중국이 몰라보게 달라진 기술력을 앞세워 바짝 뒤를 쫓고 있어서 반짝 호황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해양 강국 그리스 출신인 스트라보스 카람페리디스 영국 플리머스대 교수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조선업의 품질은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면서도 “최근에는 중국과 격차가 많이 좁혀지면서 경쟁력 약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걱정했다. 반면 군사용 선박 분야에서는 최근 미 해군 함정 사업 고위급 관계자들이 방한해 각 조선사에 ‘러브콜’을 보냈다는 소식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조선업 경쟁국인 중국이 미국과 전방위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걸 생각하면 한국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플리머스대는 해운 경제 분야의 세계적인 명문대다. 영국 남서부의 항구도시 플리머스는 미국의 선조인 순례자들이 종교 박해를 피해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출항한 곳이다. 다음은 카람페리디스 교수와 일문일답.
글로벌 해운·조선업을 둘러싼 지금의 경제 상황은 어떤가.
“지정학적 갈등과 미·중 갈등이 다소 복잡하게 얽혀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지정학적 갈등이 불거진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복잡한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세계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미·중 갈등으로 자유무역이 퇴좌는 상황에서 그러게 됐으니 큰일 아닌가.
“2017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뒤 대(對)중국 무역 적자 축소를 위해 관세 등 각종 무역 장벽을 동원했다. 2000년 810억달러(약 112조5000억원)였던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는 2018년(약 3770억달러)까지 늘었다가 2023년에는 2530억달러(약 351조5917억원)로 줄었다. 물량 기준으로 전 세계 교역의 약 80%를 해운업이 담당하고 있으니 전 세계 1위와 2위 경제 대국 간 무역마찰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반면 100GT(총톤수) 이상 대형 선박 기준으로 2011년 8만3283척이었던 전 세계 선단 구성은 올해 10만8787척으로 13년 만에 30%가 늘었다.”
교역은 줄었는데 선박은 늘었으니 해운·조선 업계에선 과잉 공급을 결정해야 할 텐데.
“그런데 지정학적 갈등 여파로 선박 수요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이유가 뭔가.
“예를 들어 홍해 항로는 전 세계 교역의 12%를 담당하는데,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이후 이곳을 지나는 상선을 공격하면서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지나는 우회 항로를 택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경우 희망봉 항로는 홍해 항로에 비해 상당한 거리를 돌아가야 하고 시간도 2주나 더 걸린다. 당연히 해상 운임이 치솟았고신규 선박 수요는 급증했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전 세계에서 2227만2326GT의 신규 선박이 발주됐는데,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전 기록은 2006년 3월의 2183만9035GT였다.”
글로벌 조선 업황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 올라탄 셈인데, 한국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로 보나.
“한국 조선업의 품질 경쟁력은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주요 국제 해운사 또한 한국 조선업의 품질 경쟁력을 매우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약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과거 연구개발(R&D)과 설계, 조달에서 중국에 크게 앞섰지만, 최근에는 격차가 많이 좁혀졌다. 중국은 2023년 처음으로 전 세계 선박 생산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다. 이제 중국 조선업은 설계와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금융 지원에 있어서도 경쟁력 있는 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어 한국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이 지난 5월 발표한 ‘중국에 뒤처진 조선업 가치 사슬 종합 경쟁력과 새로운 한국형 해양 전략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조선업 가치 사슬 종합 경쟁력 1위는 중국(90.8)으로 우리나라(88.9)를 앞섰다. 중국이 보유한 상선은 선복(船腹·선박 내 화물 적치 공간) 기준 세계 1위다. 한국은 4위에 머물고 있다.
한국의 조선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중국과 경쟁하려면 선주가 금융 지원과 혜택을 보다 쉽게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신기술을 장착한 전문 인력을 많이 유치해야 한다. IMO가 넷제로(net-zero·이산화탄소 순 배출량 0) 목표를 설정하면서 전 세계 해운업은 지속 가능한 환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오래된 선박의 교체·개조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이를 충족하려면 조선소의 시설과 기술 경쟁력도 더 끌어올려야 한다. 이와 함께 매력적인 금융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다면 시장점유율을 높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조선 기업의 법인세를 감면해 주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불황기엔 정부와 국유 기업이 선(先)발주를 하기도 한다.
친환경 전환 트렌드에 지정학 리스크 고조로 인한 에너지 안보 위기감이 겹치면서 LNG 운반선 수요가 높게 유지되고 있다.
“특히 LNG와 선박용 경유를 함께 사용하는 LNG 이중 연료 추진 선박 발주가 늘었다. IMO 차원의 넷제로 추진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대체 연료가 등장하고 LNG 수요도 점차 줄겠지만, 먼 미래의 이야기다. 중단기적으로는 LNG 운반선 수요 증가가 한국 조선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IMO는 지난해 2050년 선박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2008년 대비 기존 50%에서 100%로 높여 잡았다. 이에 따라 글로벌 선사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최소 20~30%, 2040년까지 최소 70~80% 감축해야 한다. 의무가 아닌 점검 차원의 지표다.
군사용 선박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어떤가.
“한국 조선소가 전 세계 군사용 선박 시장을 공략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 최근 미 해군 함정 사업 고위급 관계자들이 방한해 각 조선사에 ‘러브콜’을 보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같은 함정을 한국에서 생산할 경우 미국에서 만들 때보다 3분의 1 가까이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과 전방위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걸 생각하면 한국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조선 업계에 따르면, 미 해군 함정 프로그램 총괄 책임자인 토머스 앤더슨 소장과 미 해군 지역유지관리센터 사령관 윌리엄 그린 소장은 9월 2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는 HD현대 글로벌R&D센터와, 경기 시흥시 한화오션 R&D캠퍼스를 각각 방문했다. 업계에선 미 해군 함정 사업 고위급 관계자들이 방한해 각 조선사의 R&D 기술력을 점검한 것을 두고, 일종의 ‘러브콜’이라고 보고 있다. 세계 최대 방위산업 시장을 보유한 미국의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시장은 한국 조선소도 새로운 먹거리로 집중하고 있는 분야다. 한화오션은 지난 8월 미 해군이 발주하는 함정 MRO 사업을 국내 최초로 수주하며 미 해군과 첫 거래를 성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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