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일본 총리 취임 후 불확실성 휩싸인 이시바 시게루 | 이시바, 총선 자민당 참패에도 사퇴론 일축 “국정 확실히 추진”

윤진우 기자 2024. 11. 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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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오른쪽) 일본 총리가 10월 4일 도쿄 참의원 회의에 참석했다. / 연합AP

“엄중한 심판을 받았고, (선거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사퇴 가능성을) 입에 올려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국정을 확실하게 추진해 나가겠다.”

집권한 지 한 달도 안 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집권 자민당의 중의원 선거 참패로 벼랑 끝에 몰렸다. 자민당 내 사퇴 요구까지 나오면서 11월 11일로 예정된 임시국회(총리 선출을 위한 결선투표)에서 총리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사퇴설을 일축한 이시바 총리는 제3 야당인 국민민주당을 우군으로 확보하면서 총리 재지명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다만 이시바 총리는 임기 내내 자민당 참패에 따른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당이 결집하면 정권 교체도 가능한 만큼 일본 내 정치적 불확실성은 계속될 수 있다.

정치자금 스캔들에 직격탄 맞은 자민당

자민당과 공명당으로 이뤄진 연립 여당은 10월 27일 제50회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이번 선거는 소선거구 289석·비례대표 176석으로 구성된 465개 의석을 차지하기 위한 투표였다.

자민당은 191석(56석 감소), 공명당은 24석(8석 감소)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2012년 정권을 탈환한 자민당은 이후 치러진 네 차례 총선에서 한 번도 단독 과반을 잃은 적이 없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의석까지 합쳐 과반을 이룬 건 2009년부터다. 2009년부터 자민당은 야당의 협조 없이 모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다수 지위를 누려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다수 지위는 물론 단독 과반까지 무너지면서 자민당은 위기에 빠졌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 1강 시대가 끝났다’라고 했다. 자민당의 참패는 2023년 12월 불거진 일명 ‘정치자금 스캔들’ 때문이다. 정치자금 스캔들은 옛 아베파(정식 명칭 세이와정책연구회) 등 주요 파벌 내 의원들이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받은 현금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소속 의원들에게 넘겨주는 방식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말한다.

자민당은 정치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옛 아베파 의원 39명을 징계했지만, 징계 수위가 낮고 과거 대형 부패 사건까지 재소환되면서 유권자는 자민당에 등을 돌렸다.

자민당 참패에 이시바 내각 지지율 급락

자민당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치자금 스캔들이었지만, 이번 선거는 10월 1일 출범한 이시바 내각의 신임을 묻는 성격도 있었다. 이시바 총리는 당에 유리하도록 조기 총선을 치르기 위해 10월 9일 중의원을 역대 최단기 해산하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먹히지 않았다. 자민당의 참패가 이시바 내각에도 타격을 준 이유다.

자민당 참패는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쳤다. 요미우리신문이 10월 28일부터 이틀간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68명을 대상으로 유선전화·휴대전화 방식으로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내각 지지율은 34%로 집계됐다. 내각 출범 후 실시한 조사(10월 1~2일)에서 지지율 51%를 받은 걸 감안할 때 한 달도 안 돼 17%포인트가 급락한 것이다. 이시바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1%에 달했다. 다행스러운 건 자민당 참패에 따른 이시바 총리의 총리직 사임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이시바 총리가 자민당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은 28.6%에 그친 반면 ‘사퇴는 필요 없다’는 응답은 65.7%였다. 이런 결과를 반영한 듯 이시바 총리는 사퇴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라며 “국정을 확실하게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사퇴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시바 총리 정치 가시밭길 예상"

이시바 총리에 대한 책임론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11월 11일에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이시바 총리의 총리 재지명은 무리 없이 이뤄질 전망이다. 연립 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총리 재지명 및 정권 연장을 위해서는 야당과 협력이 필요한데 제3 야당인 국민민주당이 협조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임시국회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1·2위 간 결선투표가 열리게 되는데, 국민민주당이 결선투표에서 사표를 던져 이시바 총리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국민민주당의 표가 무효표가 되면서 이시바 총리가 다수 득표로 총리로 재지명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0년 넘게 일본 정치를 주도해 온 옛 아베파 소속 현직 의원 54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32명이 낙선해 당내에서 이시바를 흔들 세력의 힘이 약화하긴 했다. 다만 총리 재지명 이후에도 이시바 총리의 정치 인생은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언제든 결집하면 정권 교체가가능한 야당의 의석수 등이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0월 1일 당 대표 겸 총리로 취임한 이시바 총리는 처음부터 비틀거리고 있다”며 “그의 초기 지지율은 지난 20년 동안 어느 새로운 총리보다 가장 낮다”라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시바 총리는 국가 정치를 마비시킬 수 있는 결과(자민당 참패)를 주도했다” 라며 “앞으로 이시바 총리의 정치는 가시밭길이 예상된다”라고 했다.

Plus Point
‘이시바 쇼크’에 엔화 3개월 만의 최저

일본에서 자민당의 참패로 이시바 총리의 사퇴론 등이 나오면서 엔화 가치가 약 3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0월 30일 오전 8시 10분 기준 153.33엔을 기록했다. 7월 31일(153.89엔) 이후 3개월 만에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엔화 가치는 7월 31일 일본은행(BOJ)이 금리를 추가로 올리면서 달러당 140엔대로 강세를 보였지만, 10월 1일 이시바 총리가 취임하면서 150엔대로 엔저 현상을 보이는 ‘이시바 쇼크’가 나타났다. 여기에 자민당이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엔화 약세가 심화됐다. 금리 인상을 통한 물가 안정과 임금 인상으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탈피 등으로 대표되는 ‘이시바노믹스’를 내세운 이시바 총리의 입지가 흔들리면서 국정 운영의 안정성이 흔들렸고,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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