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과 ESG] AI발 전력 수요 급증…다양한 무탄소 발전원 확대 유도해야
지난 9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의 주요 내용에 대한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2년 주기로 수립되며, 향후 15년간의 전력 수급에 대한 장기 계획이다. 제11차 전기본은 2024년부터 2038년까지를 대상으로 하며, 전력 수급의 기본 방향과 장기 전력 수급 전망, 설비 계획, 수요관리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번 전기본은 국회 보고와 전력정책심의회 심의를 거쳐 올해 4분기에 확정될 예정이다. 본 고는 9월 공청회에서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돼 최종 확정될 내용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무탄소 전원 경쟁 유도
9월 공개된 제11차 전기본의 주요 내용은 수요 전망과 공급 계획 그리고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 방안과 전원 믹스, 백업 설비에 대한 내용을 포괄한다. 먼저, 수요 전망을 살펴보자. 전기본은 다양한 여건을 고려하여 기준 수요를 산출하고, 수요관리를 통한 절감분을 차감하여 목표 수요를 추정한다. 2038년 기준 수요는 경제성장, 기온 상승, 첨단산업 및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 전기화 확대 등 여러 요인을 반영하여 145.6 로 전망되었다. 수요관리를 통한 절감분은 2038년 기준 16.3 로 산정되었는데, 주요 수단으로는 에너지 공급자 효율 향상 의무화 제도(EERS), V2G(Vehicle to Grid) 등이 고려되었다. 목표 수요는 수요관리에 따른 절감 효과를 반영해 129.3GW로 전망됐는데, 이는 2023년 실적인 98.3GW 대비 31.0GW 증가한 수치다.
설비 계획은 목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목표 설비를 산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목표 설비는 발전 설비의 불시 고장 또는 정비, 건설 지연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목표 수요에 예비율(22%)을 적용해 2038년 기준 157.8 로 산정됐다. 한편, 제10차 전기본까지의 계획과 신재생 보급 전망을 종합하면 2038년 확정 설비는 147.2 인 것으로 추정됐다. 신규 필요 설비는 목표 설비에서 확정 설비를 차감한 10.6 로 나타났다.
필요 설비에 대한 전원 구성은 무탄소 전원을 확대하되 2038년까지의 기간별 예비율과 건설 기간, 기술 여건 등이 고려됐다.
2031~2032년은 무탄소 전원의 진입이 불확실한 상황임을 감안해 액화천연가스(LNG)를 활용한 열병합발전으로 필요 설비 중 일부를 충당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입찰 시장을 개설해 사업자를 선정하고자 하며, 올해 시범 입찰이 추진된다. 2033~2034년에도 무탄소 전원의 진입이 여전히 불확실해, 수소 혼소 전환을 조건으로 하는 열병합 또는 무탄소 전원을 고려하되 차기 전기본에서 전원 구성을 결정할 수 있도록 유보했다. 2035~2036년은 소형모듈원자로(SMR) 실증 1기를 반영하고, 그 외의 물량은 수소 전소 등 무탄소 전원 간 경쟁을 통해 확보할 수 있도록 입찰 시장을 개설할 계획이다.
2037~2038년은 건설 기간을 고려해 대형 원전이 진입할 수 있는 시기로, 부지 확보 등 추진 일정과 소요 비용을 고려해 건설 기수를 확정할 계획이다. 이러한 전원 구성은 2030년 NDC와도 부합하며, 2038년 기준 무탄소 전원 비중이 70%를 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로 재생에너지 설비 증가에 따라 양수(揚水)발전과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BESS) 등 에너지 저장 장치도 고려됐다.
다양한 발전 자원, 경쟁 통해 전력 시장 진입
제11차 전기본의 주요 특징은 수요 전망과 설비 구성, 시장 제도의 측면에서 관찰된다. 먼저, 수요 전망에서는 데이터센터 같은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가 반영되었다. AI와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은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전력 수요를 증가시키는 중이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도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26년까지 2022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설비 구성은 2038년까지의 필요 설비를 LNG 열병합발전과 무탄소 전원으로 구성하였다. 다만, 수소 혼‧전소와 SMR 등 무탄소 자원의 기술 불확실성을 고려하여 필요 물량을 산출하되 구체적인 전원 구성의 설계는 유보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마지막으로 제11차 전기본은 전력 시장의 제도 개편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용량 시장의 도입으로 기존의 하향식 계획 체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발전 자원이 경쟁을 통해 전력 시장에 진입하는 구조로 변화하고자 계획 중이다.
제11차 전기본의 방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력 계통 및 전력 시장 제도와 연계가 중요하다. 전력망 확충과 운영 계획이 전기본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는다면 발전 설비의 안정적 운영이 어려워지고, 추가적인 계통 보강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또한, 전력 수급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발전 자원이 시장에 자율적으로 진입하고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언급한 바와 같이 제11차 전기본은 용량 시장 도입을 고려해 설비 구성을 계획하였다. 이외에도 전력 시장 제도 개편에서 고려되고 있는 계약 시장과 실시간 시장 등과 더욱 긴밀히 연결해 발전 자원의 효과적인 배분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다만, 기술적인 불확실성이 큰 자원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고도화되는 시장 제도와 연계하는 설비 계획을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전기본을 아웃룩(outlook)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현재 전기본은 정부 주도로 구체적인 설비 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이지만, 이러한 방식은 시장 상황이나 기술 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아웃룩 체제에서는 중장기적인 수급 전망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하여, 발전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계획과 투자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한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가 이미 채택한 아웃룩 체제는 불확실한 에너지 수요와 기술 변화를 반영하며 시장이 자율적으로 수급을 조정하도록 유도하는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정책 방향과 규제 환경을 제공하고, 시장 내 자율 경쟁을 촉진하며,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탄소 중립 목표 달성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제11차 전기본은 현재 초안 단계로, 최종안의 모습은 예단할 수 없지만 필요 설비를 추정하되 설비 계획을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아웃룩 체제로의 전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기본이 전력 수급의 유연성과 자율성을 높이고, 아웃룩 체제로 전환되는 중간 단계로서 역할 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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