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과 한국 철강산업의 위기 [한양경제]

하재인기자 2024. 11. 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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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보다도 한참 뒤쳐진 수소환원 제철
미국 철강산업 보호, 한국 철강산업 직격탄 우려
정부와 기업 모두 체질개선 나서야

이 기사는 종합경제매체 한양경제 기사입니다

한때 세계 2위 철강 기업이었던 미국 베들레헴스틸의 용광로 굴뚝 등이 녹슨 채 남아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제47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미국의 가치를 되찾겠다'는 슬로건 아래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무역 정책을 예고했다. 특히 철강산업에 대한 보호조치는 그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해리스 민주당 대선후보도 유세 과정에서 철강산업 보호 의지를 강조했던 만큼, 이러한 조치는 초당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보호무역 조치의 첫 신호탄이 철강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외국산 철강에 대한 높은 관세 부과와 수입 제한을 통한 자국 산업 보호를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WTO 회원국들 간 직접적인 관세 부과는 무역 보복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이에 따라 그는 세계적인 이슈인 탄소배출량을 문제 삼아 저가로 인한 반덤핑 논란이 있는 중국산 철강을 규제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으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높아 미국 철강산업에 위협이 된다.

탄소배출 규제와 수소환원 제철로의 전환

전통적으로 철강산업은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대표적인 굴뚝산업이다. 고로 방식에서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철 1t당 약 1.9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는 철강산업이 전 세계 탄소 배출의 약 7%를 차지할 정도로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

반면, 수소환원 제철 방식은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철을 생산하며, 부산물로 물(H₂O)만 배출돼 탄소 배출이 거의 없다. 이런 기술적 차이로 인해 수소환원 제철 방식은 고로 방식 대비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포스코는 이러한 글로벌 기류에 발맞춰 'HyREX'라는 자체 수소환원 제철 기술을 개발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포스코는 HyREX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약 20조~30조 원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연구개발과 파일럿 프로젝트를 포함한 대규모 상용화 설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제철도 수소환원 제철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의 HyREX 기술 작동 과정. 포스코

중국보다도 한참 뒤처진 수소환원 제철

포스코는 최근 고로 1기를 개선했지만, 이는 최소 15년간 고로 방식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탄소 배출 저감에 대한 즉각적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제철도 고로 기반 생산을 이어가고 있으며, 친환경 기술 도입 속도는 더딘 편이다.

반면, 중국은 수소환원 제철 전환에서 빠르게 앞서가고 있다. 중국 최대 철강기업인 바오우철강그룹은 2024년 초 광둥성 잔장 제철소에서 연간 100만 t 규모의 수소 기반 직접환원철(DRI)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탈리아의 테노바와 협력하여 진행되었으며, 중국의 탄소 배출 저감 정책과 맞물려 국제적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허베이철강그룹도 2023년 자회사에서 60% 이상의 수소 농축 가스를 기반으로 한 수소 직접 환원 제철 기술을 도입하며 빠르게 전환 중이다.

유럽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수소환원 제철 기술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다. 스웨덴의 SSAB는 철광석 생산기업 LKAB, 에너지 기업 바텐발과 협력해 'HYBRIT'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2026년까지 완전한 그린스틸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의 티센크루프도 수소 기반의 직접 환원 철 생산을 위해 새로운 설비를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CBAM은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며, 철강 제품에 높은 탄소세를 부과해 탄소 배출을 억제하려는 강력한 규제다.

철강 체질 개선, 정부도 나서야

탄소 배출량 감소를 위해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한국의 주요 철강 기업들은 단기 이윤을 중시해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한 고비용 기술 전환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수소환원 제철 방식으로의 전환에는 막대한 초기 투자비가 필요하고, 기술 도입 후 운영비용도 기존 고로 방식에 비해 높다. 이에 따라 정부의 재정 지원과 정책적 인센티브가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철강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친환경 기술 전환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 지원이 미흡할 경우, 글로벌 규제 강화로 인해 한국 철강업계는 경쟁력 저하와 수출 감소 등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철강산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 중 하나로, 주요 수출 산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국가 경제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0월 17일 포스코그룹 투자 활성화를 위한 현장 간담회 후 포항제철소 내 수소환원제철 예정부지에서 천시열(왼쪽) 포항제철소장이 최상목(가운데)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브리핑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한국 철강산업의 위기와 대응 필요성

한국은 세계 5위의 철강 생산국이며, 4위의 철강 소비국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연간 철강 수출량은 약 2,880만 t에 달하며, 주요 수출국은 미국, 중국, 유럽 등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강화와 유럽의 CBAM 시행 등으로 인해 수출 시장에서의 규제가 강화되면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한국 철강산업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후발주자에게 시장을 내줄 위험이 있다.

기업과 정부는 협력해 탄소 배출 감축과 친환경 기술 전환을 위해 전략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기존 고로 방식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장기적인 경쟁력 유지를 위해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도 기업의 친환경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세제 혜택, 보조금 지원, 연구개발 투자 촉진 등의 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트럼프의 재집권과 보호무역 정책 강화 속에서 한국 철강산업은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경쟁력을 유지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지금이야말로 과감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재인기자 hajaeinn@hanyang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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