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흑백요리사: 감칠맛의 전쟁
“당근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써시고, 준비한 다른 채소와 함께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볶아 주시면 됩니다. 밥을 짓기 위해서 씻은 쌀에 물을 자작하게 부어 주시고, 대략 김이 모락모락 나기 시작하면 약한 불에 뜸을 들여 주세요.”
이처럼 조리법을 설명하는 한국식 표현은 구수하고 맛깔스럽다. ‘먹기 좋은 크기’,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자작하게’, ‘뜸들이다’와 같은 표현을 볼 때 한국식 조리법은 정감을 담는 대충의 미학 (the beauty of imperfection)을 느낄 수 있다.
영어권 셰프가 이러한 조리법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정확한 사이즈, 조리시간, 조리온도를 언급하는 걸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Please add 5 liters of water.(물을 5리터 넣어 주세요.)”, “Stir-fry over medium heat for about 10 minutes.(10분 정도 중간 불로 볶아 주세요.)”, “Cut the cucumber into 3 cm pieces. 오이를 3cm 크기로 썰어 주세요.)”와 같이 정확한 수치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 영어는 한국어보다 수에 민감한 언어임을 요리프로그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의 인기 때문에 귀에 연필을 꽂고 영국식 발음으로 욕을 하는 것이 화제가 되었던 고든 램지(Gordon Ramsay)의 ‘헬‘S 키친(Hell’s Kitchen)’이 넷플릭스에서 역주행을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05년에 시작해 현재까지 무려 시즌 23까지 제작되고 있다. 헬‘S 키친의 청홍 팀으로 나뉘어 경쟁하는 것과는 다르게 흙수저, 백수저라는 한국식 표현을 사용한 ‘흑백요리사’는 한국적으로 연출된 요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종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화제를 모으며 출연자들의 뒷이야기, 실생활까지 기사화되는 등 달아오른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주로 구수한 한국식 요리법을 현업에 적용하고 있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정확한 크기, 온도, 익힘을 중시하는 미슐랭 3 스타 셰프 안성재의 상반된 요리평가 기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했다.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는 여행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소식지로 시작했으나, 나중에 주변 식당 정보를 알리고 식당에 별을 주는 등급제로 유명해진 기관으로 원래 타이어 제조 회사이다. 타이어는 ‘미쉐린’으로 발음하지만 요리 평가 기관으로 발음할 때는 타이어 느낌을 빼기 위해 같은 단어를 ‘미슐랭’으로 발음해야 함을 주의해야 한다. 이미 익숙한 백종원 대표의 말투와는 다르게 미국 교포의 억양을 가진 미슐랭 3스타 안성재 셰프는 어떻게 음식을 평가하는지 모두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고기가 evenly(골고루) 잘 구워졌다”라는 유행어가 생길 만큼 그의 말투는 밈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상장 첫날 시가 총액 7000억원을 넘긴 백종원 대표는 한국 대중의 입맛을 가장 잘 아는 사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이 ‘감칠맛’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는 것이 주목된다.
‘감칠맛’을 영어 사전에 찾아보면 umami(우마미)라는 일본어가 나온다. 1908년 일본의 과학자 이케다 키쿠나에가 다시마 육수를 연구하면서 글루탐산이라는 아미노산이 우마미 맛의 원천임을 확인한 후 글루탐산나트륨(MSG) 생산법을 특허받아 전 세계 여러 요리에 사용케 되면서 감칠맛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로 자리 잡았다. 만약 우리나라 과학자가 먼저 특허를 냈다면 우마미가 아닌 ‘감칠맛(gamchilmat)’이라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감칠맛’이라고 표현하는 백종원 셰프와는 다르게, 안성재 셰프는 “동파육을 먹고 나서도 계속 우마미의 향이 남아 있다“라고 말한 장면이 있다.
우리는 음식에 맛있는 냄새. 구수한 향과 같이 냄새(smell)와 향(scent)을 모두 긍정의 의미로 사용한다. 흑백요리사의 영어 자막에는 긍정적인 음식의 ‘냄새’는 모두 scent로 번역됨을 볼 수 있다. 맹인 연기를 한 알파치노의 주연 영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가 ‘여인의 냄새‘라고 번역될 수 없음과 같은 맥락이다.
두 명의 요리 대결에서 한 명만 생존하는 토너먼트에서는 백종원과 안성재 모두 구운 고기를 평가할 때 ’쿰쿰한 냄새‘ 라고 표현하지 않고 ‘쿰쿰한 향 (pungent scent)’이라고 말하며 트리플 스타에게 생존권을 주는 장면이 있었다.
준우승자인 에드워드 리(한국이름 이균)의 음식 해석과 개인적인 스토리텔링이 후반부에 감동을 더하며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에드워드 리 셰프가 본인의 스토리를 떡볶이에 갈아 만든 세미프레도(semifreddo)는 이탈리아어로 semi(반), freddo(얼어붙은)을 합친 단어로, 반쯤 얼린 디저트(half frozen)를 말한다. 맛을 평가하는 안성재는 ‘쫄깃한(chewy)’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영어로는 ‘bouncy(탱글탱글한)’로 번역되어 믹서로 갈아 만든 떡볶이가 반쯤 얼어 탱글한 식감이 된 것을 자막으로 알 수 있어 시청자들은 그 식감을 글씨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단순한 요리 대결을 넘어 화려한 요리 테크닉, 원료가 음식으로 변해 가는 과정, 참가자들의 개인적인 스토리, 이에 심사위원의 감칠맛 나는 평까지 더해져 벌써부터 시즌2가 기대되고 있다. 또한, 오겹살(Ogyeopsal), 떡볶이(Tteokbokki), 장(Jang), 표고(Pyogo)버섯 등 많은 재료들이 한국식 발음 그대로 사용됨과 동시에 음식과 맛의 표현이 제대로 조화를 이뤘다. 흑백 요리사가 K푸드 열풍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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