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무역파고 100일 내 닥칠 것…한국 최악 상황 대비해야”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100일 내에 한국 등 주요 대미 무역 흑자국을 상대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경제·통상 정책 속도전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관세 인상과 보조금 축소 등을 넘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지 엄포까지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2019년(114억달러)부터 5년째 늘어나, 올해 10월 말 현재 400억달러를 웃돌고 있다.
여한구·유명희·박태호·김종훈 등 역대 통상교섭본부장 4명은 11일 서울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한국의 대미 흑자 규모를 볼 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통상 압박을 빠르게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당선자가 자동차·철강 등 제조업이 쇠락한 지역인 이른바 ‘러스트벨트’ 지역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자신을 지지한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다지기 위한 정책에 빠르게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후보가 ‘레드 웨이브’(백악관과 의회 모두 공화당의 상징인 빨간 물결이 장악하는 것)를 몰고 오며 낙승함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통상 어젠다는 취임 100일 이내에 강력하게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 2기 정부는 무역적자 축소, 미국 제조업 부흥, 미-중 패권 경쟁 우위 확보라는 3대 목표 아래 관세 등을 핵심 수단으로 사용해 ‘아메리카 퍼스트’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명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트럼프 쪽이 양자 관계를 판단하는 척도가 ‘무역 적자’인 만큼, 미국의 무역 적자국 중 8위인 한국은 중국·멕시코 등에 이어 타깃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직접 협상한 경험이 있다. 그는 당시 미국 정부의 특징으로 △동맹국 여부와 무관하게 무역수지 적자를 핵심 판단 잣대로 삼고 △세계무역기구(WTO), 한-미 자유무역협정 위반 여부 등을 개의치 않고 무역 적자 축소 조처를 도입하며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곧바로 조처 시행에 나서는 빠른 속도감을 보인다는 점 등을 꼽았다. 유 교수는 “한-미 에프티에이가 있어서 보편 관세에서 면제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안이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자동차 부문에 대한 우려가 컸다. 여한구 위원은 “트럼프 1기 때 자동차에도 ‘국가 안보’ 우려를 걸어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하려고 했었지만 코로나19로 흐지부지됐다”며 “당시 인사들과 나중에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그때 했어야 했는데 못 한 것을 정말 후회한다’는 말을 하더라”고 전했다.
한국의 대미 수출은 자동차와 반도체·컴퓨터 등의 수출 호조로 지난해 8월부터 15개월 연속 월별 역대 최대 실적을 갱신 중이다. 현대차·기아의 10월 미국 판매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8.3%, 16.5% 증가한 14만7613대(현지 생산 포함)에 이른다.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수석대표를 맡은 바 있는 김종훈 전 국회의원은 “미국이 자동차를 대표적으로 표적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그때 우리의 대응은 ‘덜 팔게’보다는 ‘미국이 경쟁력 있는 게 뭔데, 그걸 더 사보자’ 하는 쪽의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로켓, 항공기 산업 등과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발굴할 수 있으면 ‘윈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과거 미국의 정책 추진 방식을 보면 복잡하게 정책을 설계해놓고 유예 조치를 한다”며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 등의 보조금 혜택이 줄어들어도 위축될 필요 없다. 오히려 대미 투자를 더 늘리는 등 과감한 활동을 하면 돌파구가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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