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 탓에 LNG 장기계약 못했다? 3가지 왜곡과 남탓 [추적+]
가스公 LNG 장기계약 종료
비싼 공급처 바꾸는 건 기회
LNG 물량 대체 노력도 적절
전 정부 탓 어디까지 가려나
# 오는 12월 한국가스공사와 카타르ㆍ오만 간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장기도입계약이 끝난다. 그러자 일부에선 이런 분석을 내놓는다. "전임 정부가 탄소중립 목표를 무리하게 설정한 탓에 LNG 장기도입계약을 제때 하지 못했다. 그 결과, 내년부터 LNG 수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 어떤 계약이든 기간이 길면 가격이 싸진다. LNG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앞서 언급한 분석은 "전 정부 탓에 LNG 장기도입계약을 체결하지 못해 비싼 값에 LNG를 수입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는 위기론으로 귀결된다. 정말 그럴까. 현 정부가 출범한 지 2년 반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전 정부의 '바짓가랑이'를 붙드는 게 합리적인 일일까. 더스쿠프가 정말 그런지 답을 찾아봤다.
액화천연가스(LNG)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발전용으로는 석탄과 원자력에 이어 세번째(2023년 기준 26.8%)로 사용 비중이 높다. 난방ㆍ취사ㆍ온수ㆍ수송용은 물론 산업용 연료까지 쓰임새도 폭넓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국내 LNG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가스공사의 수입선에 변화가 생겨서다.
원래 가스공사에선 두가지 경로를 통해 LNG를 수입한다. 첫째 경로는 특정 국가와의 '기간계약(장ㆍ단기)'이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느 정도 규모의 LNG 물량을 수입할 테니 차질없이 공급해달라는 약속을 통해 이뤄진다. 대부분이 장기계약이다.
단기계약 역시 기간이 짧지 않은 만큼 수급과 가격 등이 안정적이다. 대신 수입 물량을 조절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참고: 기간계약을 맺는다고 해서 가격이 고정인 건 아니다. 유가 변동분을 반영할 수 있도록 가격조건을 정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뒤에서 한번 더 다뤘다.]
둘째 경로는 '현물계약'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여기저기서 LNG를 수입하는 방식이다. 일시적인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함이지만, 수급이나 가격이 불안정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기간계약과 현물계약의 비율은 7대 3 정도로 나뉜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물량을 수급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해 가스공사의 계약 물량은 3548톤(t)이었는데, 기간계약과 현물계약은 각각 2606만t(73.4%)과 942만t(26.6%)이었다. 기간계약에서도 장기의 비중은 94.6% (2465만t)로 압도적이었다. 그만큼 장기계약이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최근 가스공사의 LNG 장기계약 시스템에 빈틈이 생겼다. 올해 연말을 끝으로 가스공사의 일부 장기계약이 종료될 예정이어서다. 카타르ㆍ오만과의 계약이 끝나기 때문인데, 계약 종료 물량은 연간 898만t이다. 지난해 가스공사의 전체 계약 물량의 25.3%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카타르와 오만은 주요 LNG 공급처다. 두 국가로부터 들여오는 LNG는 현물계약까지 합치면 지난해 전체 수입량의 30.8%에 이른다.
물론 가스공사는 계약 종료를 대비해 정부는 지난 2021년 카타르(200만tㆍ20년 계약)와 다국적 에너지기업 BP(158만tㆍ18년 계약)로부터 연간 358만t의 LNG를 2025년부터 들여오기로 하는 새로운 장기계약을 맺었다.
다만, 계약 종료 물량과 비교하면 540만t이 모자란다. LNG 수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장기계약 물량이 크게 줄면 현물계약을 늘려야 하고, 물량 채우기에 신경을 쓰다 보면 가격 협상력이 떨어져 비싼 가격에 LNG를 수입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거다.
문제는 이런 우려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대략 이런 식이다. "문재인 정부가 2050년까지 모든 LNG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는 비현실적인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는 바람에 가스공사가 제때 LNG 장기계약을 맺지 못했고, 결국 지금과 같은 LNG 수급 위기가 발생했다. 가스공사가 추가 물량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가격 변동에 그대로 노출돼 가스와 전기요금 인상 부담까지 불러올 수 있다."
■ 오류➊ 장기계약 종료와 위기론 = 합당한 지적일까. 아니다. 이 주장엔 오류가 적지 않다. 우선 카타르ㆍ오만과의 장기계약 종료와 가스공사의 새로운 계약 발굴을 오로지 '위기'라고 해석하는 건 왜곡이다. 카타르와 오만이 우리나라의 주요 LNG 공급처인 건 사실이지만, 가격은 상당히 비쌌기 때문이다.
더스쿠프가 2004~2023년 주요 LNG 공급국가 중 t당 단가가 가장 비싼 국가 1~3위를 연도별로 추려본 결과를 보자. 1위 횟수는 오만이 10회, 인도네시아가 5회였다. 2위 횟수는 카타르와 오만이 각각 9회와 7회였다. 3위 횟수는 카타르와 인도네시아가 7회와 6회였다. 지난 20년간 가스공사가 수입한 LNG 중 오만ㆍ카타르ㆍ인도네시아산 LNG가 거의 매년 1~3위를 다툴 정도로 비쌌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t당 단가 차이가 500달러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2012년 당시 오만산과 카타르산 LNG 수입단가는 각각 t당 962달러와 943달러였다. 반면 말레이시아산은 566달러, 예멘산은 393달러에 불과했다. 당시 수입 물량은 카타르ㆍ오만산이 1441만t, 말레이시아ㆍ예멘산이 667만t이었다. 과거의 장기계약에 발이 묶여 값비싼 LNG를 대량으로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럴 때 가스공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기존 장기계약을 종료하고, 좀 더 저렴한 LNG 공급처를 찾아야 한다. 올해 2월 최연혜 가스공사 사장이 한국가스연맹 정기총회에 참석했을 때 "우리나라 LNG 수입단가가 주변국들보다 비싸다"는 지적을 받자, "비싼 LNG 장기계약이 곧 끝나는데, 그러면 수입단가도 내려갈 것"이라고 반박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가스공사 입장에서 기존 카타르ㆍ오만과의 장기계약 종료는 위기가 아닌 기회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카타르가 가스공사와 장기계약을 연장하지 못하면 카타르는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의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타르산 LNG를 가장 많이 구매하는 국가가 바로 한국(지난해 기준 1위ㆍ전체의 17.9%)인데, 카타르 입장에선 우량 고객을 놓치는 거나 다름없어서다.
■ 오류➋ LNG 물량의 진실 = "LNG 물량을 급하게 구하느라 가격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따져볼 지점이 있다. 가스공사는 이미 대안을 마련해 놨기 때문이다. 언급한 것처럼 가스공사는 2021년에 카타르와 BP로부터 358t의 LNG를 내년부터 들여오기로 하는 장기계약을 맺었다. 특히 당시 계약단가는 기존 계약단가보다 34%가량 낮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에서 가장 저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모자라는 물량을 다른 방식으로 채우기도 했다. '개별요금제'란 시스템을 통해서다. 가스공사는 그동안 LNG를 수입해서 국내 발전사 11곳에 똑같은 가격(평균요금제)으로 공급해왔는데, 2020년 개별요금제로 시스템을 바꿨다. 개별요금제는 발전사의 발전기 상황을 반영해 각각 다른 가격으로 LNG를 공급하는 거다.
쉽게 말해 국내 발전사들의 직수입 물량도 가스공사가 통합관리하는 건데, 이에 따르면 가격 협상력을 가진 가스공사가 좀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많은 LNG를 들여올 수 있다. 개별요금제에 따른 LNG 누적 계약 물량은 올해 4월에 400만t을 넘어섰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LNG 시황에 따라 판매자와 구매자 중 우위가 달라지는데, 지금은 구매자 우위 시장"이라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점을 충분히 따져 장기계약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급하게 서두르면 손해를 보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 오류➌ 제때 장기계약 못했나 = 그렇다면 가스공사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 때문에 장기계약을 체결해야 할 시기를 놓쳤다는 주장은 어떨까. 가장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한번 더 2021년 진행한 카타르ㆍBP와의 새로운 장기계약을 예로 들어보자.
이 계약이 이뤄진 시기는 문재인 정부 때다. 준비는 이보다 2년 정도 앞선 2019년에 시작했다. 2018년부터는 미국이 새로운 LNG 공급처로 등장했고, 지금도 여전히 주요 LNG 공급처(올해 수입량 3위)다. 가스공사가 미국과도 장ㆍ단기계약을 맺었다는 방증이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장기계약은 보통 수년에 걸쳐 이뤄진다"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에 새로운 장기계약을 위한 준비와 계약 체결이 모두 이뤄졌다는 점으로 볼 때, 문 정부의 에너지 정책 때문에 장기계약을 못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런 측면에서 가스공사와 카타르ㆍ오만 간 LNG 장기계약 종료를 둘러싼 우려는 기우杞憂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마치 큰 위기라도 닥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그 책임을 애먼 전 정부에 돌리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전 정부의 임기가 끝난 지도 벌써 2년 반이 흘렀다. 이쯤 됐으면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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