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회장, 품위 있는 퇴장을 준비하라[김세훈의 스포츠IN]
이기흥 대한체육회장(69)의 3선 도전 여부가 체육계를 넘어 사회적으로 큰 이슈다. 적잖은 체육계 인사들과 대한체육회 노동조합이 출마 포기를 촉구하고 있다. 이 회장을 지지하는 단체, 인사들은 노동조합 등을 비판하며 맞불을 놓았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다수 국회의원들이 이 회장 사퇴를 노골적으로 종용했다.
정부 압박도 점점 거세진다. 정부는 10일 이 회장을 비롯한 간부와 직원 등 8명의 비위 혐의를 발견하고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공직복무점검단이 제기한 혐의는 직원부정채용(업무방해), 물품 후원 요구(금품 등 수수), 후원 물품 사적 사용(횡령), 예산 낭비(배임) 등이다. 최근 2~3년 이 회장 행보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부가 행정력을 넘어 사법적으로도 이 회장을 옥죄는 형국이다. 정부의 행정이 과한 면이 적지 않지만 세금과 체육진흥기금으로 운영되는 대한체육회 수장이 정부에 반기를 드는 태도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대한체육회는 연간 4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체육회가 체육행정 중립성을 주장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동시에 세금, 기금을 제공하는 정부도 체육회를 관리, 감독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돈을 정부로부터 받으면서 정부 관리를 받지 않겠다는 체육회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느 국가에서나 비슷하게 체육계는 정권과 협력 관계다. 스포츠가 지역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통한 지역 및 국민 통합은 스포츠가 가진 막강한 힘이며 민심, 표심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탐내는 유혹이다. 체육인들도 정부와 대립하는 체육계를 원치 않는다. 체육 재정을 정부에 의존하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부가 체육 예산을 줄이면 피해는 선수, 지도자, 체육계 종사자에게 돌아간다. 단기적으로는 사업과 활동이 움츠려든다. 장기적으로는 산업이 쪼그라들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국민 신체활동도 제한을 받는다.
이 회장은 그동안 강력한 리더 역할을 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강한 힘을 이용해 체육예산의 안정적인 확보, 체육계를 흔들려는 정치적 외풍 방어와 반격 등을 효과적으로 해왔다. 이 회장 재임시절 사회에 대한 체육계 존재감이 과거보다 강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에는 정부와 과도하게 대립하면서 역효과가 점점 커진다. 파리올림픽 이후 이 회장과 정부 간 진흙탕 싸움 속에서 애꿎게 몰매를 맞은 기업이 생기면서 산업계에서 체육계 투자를 피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체육회로 교부해온 예산 중 300여억원을 지방자치단체로 돌렸다. 무엇보다 체육계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논란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한숨과 손가락질에 이어 외면, 무시, 경시로 옮아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이 회장은 스포츠공정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3선에 도전할 수 있다. 이 회장은 공정위원 임명을 사실상 주도해 ‘셀프 승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공정위원회는 12일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규정상으로는 3선 도전을 거부할 문구가 마땅히 없다. 3선 포기는 결국 이 회장 본인만 할 수 있다.
체육계가 국민 신뢰를 되찾고 내부 갈등을 해결해야한다. 지금 이 회장이 무엇을 해야 할까. 출마를 포기해야 할까, 출마를 강행해야 할까. 이기흥 체제가 한 번 더 이어진다면, 체육계를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이 좋아지고 정부 지원이 든든해지며 기업들 투자도 늘어날까. 리더는 유능한 시작보다 품위 있는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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