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온기를 전하고 싶어요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4. 11. 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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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다문화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 필자 제공

간가혜 | 상호문화교육강사

“저는 이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저는 결혼 이주민이에요. 한국에 온 지 거의 13년이 됐지요. 제 인생의 3분의 1보다 긴 시간이에요. 모든 여성이 그렇듯 결혼은 제 인생의 제일 크고 중요한 결정이었어요. 한국과 대만은 비슷한 부분도 많지만, 다른 부분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래서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어도 생활하다 보면 오해가 생기곤 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모든 게 익숙하지 않아 매일 대만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큰일이 생기지 않으면 대만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한국 생활에 적응된 거겠죠. 이렇게 변한 것은 마법 같은 여정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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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란 참 신기해요. 저와 제 남편은 여행 중에 만났어요. 그때는 제가 대학생이었고 남편은 저와 인터넷을 통해 영어 공부를 함께 하는 사이였죠. 어느 날 남편이 대만에 여행하러 왔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만나기 시작했어요.

대학 졸업을 반년 앞두었을 때 친정아버지가 남편 생일에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어요. 대만 문화에 따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석달 안에 결혼하지 않으면 3년을 기다렸다가 결혼해야 했어요. 남편은 당시 서른살이었어요. 우리는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간단히 혼인 신고만 했지요. 저는 미신을 믿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때는 제게 닥친 일들이 다 운명처럼 밀려왔어요. 남편의 존재는 아버지를 대신해 제 인생을 채워줄 것 같았어요.

결혼 후 한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활이 시작됐어요. 제 인생도 다르게 펼쳐졌죠. 한국에서 인생 2막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족들을 만났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했어요.

시댁은 부산 동래에 있어요. 동래는 참 아름다워요. 특히 시댁 옆에 공원이 있어서 봄에는 공원 길 양쪽에 벚꽃이 활짝 피죠.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세상 모든 고민을 새하얗게 물들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육아는 간단한 게 아니에요. 특히 외국어는 영어만 할 수 있었던 내가 모국에서 숨쉬기처럼 간단한 일들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됐어요. 신생아처럼 뭐든지 다 도움이 필요했지요. 그런데 저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남편은 출근해야 했어요.

필자가 직접 그린 시부모님과 두 자녀. ♣️H6s필자 제공

다행히 시부모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처음엔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수 없었지만, 시어머님이 저를 대신해 애를 봐주고 제가 대학에 있는 어학원에 등록해 공부할 수 있게 시간을 만들어 주셨어요.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따듯한 밥이 늘 차려져 있었죠.

시아버지는 한국 생활에 어려워하는 저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항상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물으셨죠. 제가 외출한다고 하면 혼자서 길을 찾을 수 있겠냐고 용돈이 부족하지 않으냐고 걱정하셨죠. 힘든 일은 제가 하지 못하게 하고 무얼 하더라도 진심으로 저를 칭찬하고 인정해주셨어요.

부산에서 5년 동안 살았어요. 좋은 친구도 많이 만났죠. 저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에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어요. 많은 분이 시부모님과 같이 생활하기 싫다고 해요. 저는 운이 좋았어요. 시부모님과 생활했던 5년은 제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이었죠. 새로운 신분, 새로운 문화, 새로운 언어, 심지어 종종 외국인이라 오해받는 일이 생겨 슬플 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시부모님은 제 상처들을 치유해줬어요. 깊고 오래된 상처들도 말이에요.

결혼은 삶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에요. 저한테도 마찬가지죠. 저는 한국에 와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저도 따듯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 세상의 따듯함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요? 한국 사람들이 이주민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면 오해도 줄어들겠죠? 그러면 이 세상도 좋아지겠죠?

7년 전 남편 직장 때문에 파주로 이사했어요. 대만 친구의 권유로 파주시 무지개작은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엄마와 책 놀이’라는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죠. 파주시 가족센터에서 교육받아 지금은 다문화 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한 출판사의 도움으로 ‘누가 산을 베어 먹었니?’라는 대만 전래동화를 소재로 한 그림책을 내기도 했죠. 그동안의 모든 것을 감사하며 열심히 살고 있어요.

만약에 누군가 지금 나한테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하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답할 거예요. 빛과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온기를 전하고 싶어요.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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