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치료에는 명의(名醫)가 없다”

난임전문의 조정현 2024. 11. 1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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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임신 성공률보다 중요한 건 배양 기술력
미성숙 난자의 체외배양은 수년 전부터 시행된 배양 기술이다. [Gettyimage]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지나친 경쟁은 때로 독이 되기도 한다. 특히 '최고'와 '최초' '등수'에 집착하면 시장이 불안해진다. 그것도 의료 시장에서라면 문제가 커진다. 너도나도 1등이 되려는 것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1등이 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특히 미디어(언론)까지 적극 활용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의술의 최대 목표는 1등이 아니라 완치를 향한 건강한 치료 과정에 있다.

다른 의학 분야도 그렇겠지만 요즘 난임 치료에 대한 과대광고(홍보라는 명분으로)가 판을 친다. 이렇게 되면 뉴스를 믿고 임신을 희망하는 난임 부부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난임 치료 분야의 과대광고 실례를 보자. 가장 흔한 것이 병원마다 임신율을 공개하는 것이다. 임신율은 의미 없는 통계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환자군(나이, 난소기능, 생식기 질환 등)이 천차만별이므로 몇 명 중에 몇 명이 임신에 성공했다는 통계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난소기능과 자궁에 별 문제가 없는 젊고 건강한 여성 10명 중에 몇 명이 임신에 성공했는지와 고령이면서 난소기능 저하인 여성 10명 중에 몇 명이 임신에 성공했는지는 결코 같을 수 없다. 따라서 병원들이 임신 성공률을 단순히 숫자로 기사화하거나 플래카드를 내거는 것은 현혹성 광고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어떤 난임병원은 임신 성공률 통계에 시험관아기시술(IVF)뿐 아니라 인공수정(자궁내정자주입술) 시술은 물론 냉동배아이식(전 횟수)까지 포함해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있다. 인공수정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에 성공하고 착상이 되는 전 과정이 당사자의 몫이다. 따라서 의사와 배양연구원의 성과가 될 수 없다. 이처럼 난임 시술의 종류(인공수정, 신선배아이식, 냉동배아이식)와 환자군에 대한 구분(나이, 질환 등)이 명확하지 않은 '얼버무리기'식 임신 성공률 데이터는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보면 된다.

미성숙 난자의 체외배양 권하지 않는 이유

병원 스스로 IVF에 관한 과대광고도 지양해야 한다. '국내 유일' '국내 최초'라는 광고 문구로 임신을 기다리는 난임 환자들의 절박하고도 애절한 마음을 흔들어선 안 된다. 이런 문구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품게 하는 만큼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사실 의료계에서 보조생식술만큼 기술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최신 기술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시술이다. 난임 치료 분야에는 비급여 항목 신기술의 경우 100% 자비 부담으로 받을 수 있는 인정비급여 시술이 있고, 자비를 부담해도 받을 수 없는(의사의 의료행위도 불법) 임의비급여 시술도 많다. 이런 신기술은 모두 실험적 도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결과(임신 성공)에 대한 어떤 보장도 없다.

최근 국내 대형 병원 가운데 한 곳이 '미성숙 난자의 체외배양 연구센터'를 개소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다낭성난소증후군 여성들에게 희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미성숙 난자의 체외배양은 이미 수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배양 기술로 '최신' '최초'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하다.

그런데 병원들이 미성숙 난자의 체외배양을 적극 권하지 않는다. 난소에서 성숙해야 할 난포가 인체 밖(배양 인큐베이터)에서 성숙될 경우 난자의 테두리가 두꺼워져 자연수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최신 체외배양 기술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이 다소 해결되고 있지만 체내의 비밀(난소의 역할)까지 밝혀낸 것이 아니다. 아직 어떤 의술도 인체가 지닌 신비로운 자연(nature) 현상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남성 생식기와 정자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난임 전문 비뇨기과 전문의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고환에서 꺼낸 아기 정자(정세포)를 체외배양으로 성숙한 정자로 만들 수는 있지만 생식력(정상적으로 수정이 되고 생명이 되는)은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몇몇 비뇨기과에서 무정자증(비폐쇄성) 남성을 대상으로 미성숙 정자의 체외배양을 홍보하고 있다. 이 또한 국내 유일,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사용해서 말이다. 고환에서 정자를 채취해야 하는 비폐쇄성 무정자증 남성은 관련 시술을 많이 한 남성 난임 전문 비뇨기과 의사와 반드시 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IVF의 꽃은 배양 기술력이다. 정자와 난자, 배아가 체외에서 선택되고 나면 배양(체외)이 진행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배양 기술력이다. 난임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최신 배양 기술에 관심이 높다. 하지만 배양 기술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최신 장비만큼 배양연구원의 실전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 다시 말해 병원의 규모와 장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IVF 경험이 풍부한 의료진과 배양연구원이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생식세포의 체외배양도 결국 사람의 눈과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최근 난임 치료 전문 한의원이 늘고 있다. 문제는 과대광고다. 필자의 환자 중에도 "어느 한의원의 한약을 먹고 싶다"며 한약 치료에 목을 매는 경우가 꽤 있다. 한약은 서양의학과 제약처럼 표준화돼 있지 않아서 한의사의 주관적 판단과 처방에 좌우될 때가 많다. 또한 어떤 한약재는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쳐 난임 치료를 방해할 수도 있다. 만약 양쪽 나팔관이 막혀 자연임신이 안 되는 여성이 있다고 치자. 한약보다는 IVF를 하는 것이 임신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필자를 만나 IVF로 임신에 성공한 사례 가운데 한의사 가족도 꽤 있다.

한약과 IVF 중 어떤 게 임신 가능성이 높을까

시험관아기시술(IVF)에 건강보험 급여 혜택이 적용된 후 난임 환자의 시술 이용 빈도가 꾸준히 늘고 있다. [Gettyimage]
난임 치료에는 명의(名醫)가 없다. 필자가 난임 시술을 한 지 38년째 접어들었지만 명의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난임 치료에서는 최선과 차선의 노력이 있을 뿐이지, 최고란 없다. 난임 치료에서는 임신을 간절히 원하는 환자와 의사의 호흡, 소통, 공감이 중요하다. 환자와 의사가 서로 믿고 공감하면 여성의 몸과 생식력이 한결 좋아질 수 있다.

난자와 정자, 배아의 퀄리티는 IVF를 할 때마다 다르다. 임신이라는 수능에 도전하는 학생(정자, 난자)이 매회 달라진다고 보면 된다. 더 나아가 시험장(자궁)도 매번 같지 않다. 따라서 결과가 예측 불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IVF를 하면 결국에는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 시대인 만큼 IVF가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 덕에 임신하려 난임병원을 찾는 부부가 꾸준히 늘고 있다. 서울만 하더라도 난임 시술로 태어난 출생아가 전체 출생아의 14.6%에 달한다. 11월부터는 난임 시술 건강보험 급여 혜택이 대폭 늘어나 출산 횟수 관계없이 25회까지 시술받을 수 있다. 45세 이상 여성의 본인부담률도 50%에서 30%로 인하된다고 한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소득 기준, 시술 횟수 등의 제한을 파격적으로 변경한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된다. 난임 의료계가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는 식의 무리한 욕심으로 과대 홍보를 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조정현
●연세대 의대 졸업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난임전문의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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