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저어주세요" 밥솥의 기계음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조경선 시인의 시
‘하루에 한마디 하는 여자’
한집에 사는 외로움
하루에 한마디 하는 여자
나무와 나무 사이 한여름의 입덧처럼
뜸 들여 답답해진 혼잣말이 오고 간다
스스로 울다 간 소리
마당 가득 풀만 키운다
하루에 한마디 듣는 새들도 날아간다
힘에 부쳐 멀리 왔다는 한마디 탄식에
울음을 열어젖힌 후
그 소리만 파먹는다
부엌에 홀로 앉아 한마디 하는 여자
밥을 저어 주세요 전기밥솥 그녀의 말
오늘 중 유일하게 들리는
처음이자 마지막 소리
「어때요 이런 고요」, 여우난골.
제목만 보고는 과묵한 여성과 살아가는 한 남성의 투덜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천만에, 독신 남성의 일과를 다룬 시조다. 한국의 1인 가구가 35.0%에 이른다고 한다. 나홀로 집에 사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결혼 안 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혼·졸혼 부부도 많다. 따라서 고독사가 늘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세월이 흐를수록 인구가 줄어들겠지만 1인 가구는 더 늘어날 거라고 예상한다.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다. 컴퓨터를 켜놓고 게임을 해도 되고 넷플릭스 영화를 봐도 된다. 유튜브를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배가 고프면 배달음식을 시켜 먹어도 되지만 밥만 하면 반찬은 온갖 걸 다 파니까 냉장고 안에 뒀다가 데워 먹으면 된다. 아마도 그 독신남은 때로 혼잣말을 할 수도 있다.
시조의 첫째 수를 보니 사는 곳이 농촌인 것 같다. 농촌의 노총각이 장가가기 어렵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들의 울음소리도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도 때로는 정답게 들린다. 텅 빈 집에서 소리를 들려주는 존재니까.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넣고는 30분쯤 있으면 기계가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얼마나 반가운가.
그런데 그 목소리는 기계음이다. 오늘 중 유일하게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자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고작 "밥을 저어 주세요"다. 싱글의 징글징글한 외로움을 잘 그린 이 작품을 읽고 공감하는 사람이 무척 많을 것이다.
이승하 시인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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