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 남편은 돌돌이? ‘자두 엄마’ 만화가 이빈이 알려주는 진실

조지윤 기자 2024. 11. 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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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장기 연재 순정 만화 ‘안녕?! 자두야!!’는 세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28년째 연재 중이자 ‘자두’ 그 자체인 이빈 작가를 만나 자두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봤다. 

‘안녕?! 자두야!!’ 작가 이빈
28년, 강산이 바뀌어도 세 번이 바뀌었을 시간 동안 만화 '안녕?! 자두야!!’(이하 '안녕 자두야’)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매년 자두의 남편이 누구인지 분석하는 글이 화두에 오른다. 블랙핑크 제니, 아이브 장원영, 르세라핌 김채원 등 인기 걸 그룹들도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위로 틀어 올린, 일명 '자두 머리’를 자주 하곤 한다. '안녕 자두야’는 1997년 순정 만화 잡지 '파티’에서 선보인 이래 현재까지도 연재 중인 국내 최장기 순정 만화다. 자두를 보고 자란 독자가 부모가 돼 아이에게 자두를 보여주는 일도 다반사다. 잡지 만화 시장이 줄어들었지만 2011년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되며 TV와 유튜브를 통해 21세기 어린이들에게도 인기몰이 중이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자두를 '밥 친구’라고 부르며 밥 먹을 때마다 영상을 같이 보는 등 말 그대로 '영원한 친구’로 자리매김했다.

세대를 막론한 인기는 국경도 넘어섰다. 대만에서는 애니메이션 시청률 기준 1위를 기록한 바 있고, 베트남에서는 CGV 개봉작 기준 '뽀롱뽀롱 뽀로로’ 다음으로 관객 수 2위를 차지했다. 이 외에도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인기를 모으며 최근 애니메이션 강국인 일본 진출도 모색 중이다.

‘자두 엄마’로 잘 알려진 '안녕 자두야’의 원작자 이빈은 명랑 만화뿐만 아니라 순정 만화, BL(Boys Love)까지 넘나드는 잔뼈 굵은 만화가다. 1991년 순정 만화 '나는 깍두기’로 데뷔한 그는 'ONE’ '개똥이’ '크레이지 러브 스토리’ '걸즈’ '패리스와 결혼하기’ 등 정통 로맨스부터 힙합 만화, 로맨틱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냈다. 앙증맞은 자두 캐릭터로 이빈 작가를 먼저 접한 독자는 길쭉길쭉하고 날카로운 그의 본 그림체를 마주하면 낯을 가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빈 작가는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로맨스와 한 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예쁜 그림이 좋다"며 "여전히 순정 만화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의 10여 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 최애는 '안녕 자두야’라고. 할머니가 돼도 자두만큼은 계속 그리겠다는 이빈 작가와 만나 '성인 버전 자두’에 대한 예고부터 '돌돌이 남편설’의 진실까지 들어봤다.

"둘 중 먼저 만화가가 되는 사람이 '이빈’"

아이브 장원영(왼쪽), 블랙핑크 제니 등 인기 걸 그룹들의 자두 스타일링.
21세라는 어린 나이에 만화가가 됐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를 따라서 친구 언니가 만드는 만화 동인지에 참여했어요. 저희 둘을 제외한 다른 언니들은 이미 만화가 문하생이었죠. 그때 같이 활동한 언니들이 문계주, 이향우 작가님이에요. 그분들이 만화 작법도 알려주고, 만화 재료도 같이 사준 덕분에 만화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만화를 그리다가 대학교 2학년 때, 순정 만화 잡지 '르네상스’ 신인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데뷔했어요.

‘이빈’이 본명이 아니라 필명이라고요.
네. 이제는 남편도 "빈아"라고 부를 만큼 본명보다 더 익숙하지만요(웃음). 정확히는 학창 시절 친구와 같이 만든 팀 이름이 '이빈’이었어요. 초등학생 때, 그 친구와 제가 '그림 잘 그리는 애’로 전교에서 유명했는데 6학년 때 드디어 같은 반이 됐죠. 만화라는 공통 관심사도 있고 집도 근처여서 급격히 친해졌어요. 제가 만화 1화를 그려서 책상에 올려두면 친구가 2화를 그려서 돌려주는 식으로 '교환 연재’도 했죠. 고등학생이 되면서 친구가 이사 가고, 학교도 달라져 연락이 끊겼어요. 헤어지면서 둘 중 먼저 만화가로 데뷔하는 사람이 '이빈’이라는 필명을 쓰면, 다른 한 명이 찾아가자고 약속했죠. 이후 데뷔한 제게 친구가 팬레터를 보내면서 재회했어요. 아쉽게도 친구는 어른이 되면서 만화에서 손을 뗐고요.

‌순정 만화부터 명랑 만화, 음악 만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립니다.
원래는 다크 판타지나 음악 장르를 주로 그렸어요. 어릴 적 같이 살았던 삼촌의 영향이 컸죠. '안녕 자두야’ 속 삼촌처럼 저희 삼촌도 로커였는데, 맨날 삼촌 방에서 레코드로 하드한 록 음악을 듣고 자랐어요. 여기서 영감을 받아 작품도 많이 어두웠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더더욱 이런 장르가 비주류였어요. 데뷔해도 수요가 없으니 작품을 연재할 수 없었죠. 전업 작가가 되지 못하고 광고 회사에서 콘티를 그리며 먹고살았습니다. 이대론 안 되겠어서 '팔리는’ 그림을 그려야겠다 생각하고 순정 만화를 시작한 거예요. 한승원 선생님처럼 당대 인기 있는 작가님들의 그림으로 많이 연습했습니다. 그 후에 BL, GL(Girls Love) 등 로맨스를 바탕으로 한 다른 장르로도 넓혀갔고요.

순정 만화 'ONE’에도 음악적 배경이 많이 녹아 있는 이유인가요.
‘ONE’은 잡지 연재 당시 기자님께서 많이 도와줬어요. 음악 잡지에 오래 계셨던 분이라 연예계 쪽으로 발이 넓었어요. 덕분에 음악 잡지 PD나 방송국 PD를 많이 소개받아서 취재를 꼼꼼하게 할 수 있었죠.

장르는 다채롭지만 뿌리는 '이빈’ 작가인 만큼 작품들 간 공통점도 있을 듯해요.
장르와 무관하게 모든 작품에 '휴머니즘’을 꼭 담으려고 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어느 한쪽이 종속되지 않고 대등한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아무리 순정 만화라고 해도 남자 주인공에 의해 여자 주인공의 서사가 끌려가는 만화를 안 좋아하는 이유예요. 'ONE’에서도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이어지지 않고 각자의 노선을 걸어요. 로맨스 없이도 성공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걸즈’는 아예 남자 주인공 없이 여자들만 등장시켰고요. 심지어 BL이나 GL을 그릴 때도 양쪽이 동등한 관계를 추구해요(웃음).

"어른이 된 자두, 곧 만날 수 있어요"

1 이빈 작가가 직접 그린 성인 버전 자두(가운데)와 윤석(오른쪽), 성훈.
‘안녕 자두야’는 어떻게 그리게 됐나요.
신인 작가 시절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만화가 잡지에 1년에 한두 편 실렸어요. 당시 편집장님께서 일거리를 챙겨주려고 운세나 영화 소개 페이지에 활용할 수 있는 컷을 종종 요청했어요. 이전까지는 순정 만화체로만 그리다가 그때 SD(2〜3등신 인물 캐릭터) 그림체를 개발했죠. 이후 편집장님이 만화 잡지 '파티’를 창간하면서 원고를 청탁했어요. 문제는 제가 다른 잡지에 연재하던 때라 도무지 겨를이 안 났는데, 그럼 SD 그림으로 10쪽이라도 연재하자고 해서 시작한 것이 '안녕 자두야’예요.
자두 삼남매의 모티프인 이빈 작가(오른쪽 첫 번째)와 두 동생. 자두와 똑같은 헤어스타일의 이빈 작가를 확인할 수 있다.
‘안녕 자두야’는 19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빈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주인공 '최자두’가 곧 작가 본인인 것. 극 중 캐릭터들도 실제 가족 구성원과 친구들로부터 따왔으며 에피소드 역시 실화 바탕이다. 인기 에피소드 중 하나인 채변 봉투를 안 가져와 친구에게 '변’을 샀던(!) 이야기는 남편이 초등학생 때 목격한 사건이라고. 이빈 작가는 "여전히 어릴 때 쓴 일기장에서 만화 아이디어를 얻는다"며 "캐릭터의 외형도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자두의 트레이드마크인 머리 스타일도 작가가 어릴 적 실제 하고 다녔던 모양이다.


자두 머리는 파마머리를 묶은 건가요, 땋은 머리를 묶은 건가요.
땋아서 묶은 거예요. 실제로 제가 어릴 때 엄마가 많이 해주셨던 머리입니다. 첫째 딸이다 보니 엄마가 머리를 예쁘게 해주려는 로망이 있었어요. 그런데 자두가 애니메이션화되면서 머리 스타일이 바뀔 뻔했어요.

어떻게요.
애니메이션화를 담당하던 에이전시 회사에서 원작의 자두 머리를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기도, 피규어나 인형으로 만들기도 어렵다더라고요. 차라리 '뿌까’처럼 머리를 뭉텅이로 묶거나 동글동글한 라인을 없애고 도넛 형태로 바꾸자고 제안했는데 결사반대했어요. 애초에 이 머리는 자두의 아이덴티티고, 머리를 바꾸면 다른 캐릭터들과 구분도 잘 안 될 것이라고요. 당시 이미 도넛 머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놓았던데 다행히 다 수정해줬습니다. 에이전시 대표님께서 직접 중국에 있는 금형 공장에 가서 검수를 꼼꼼하게 해주신 덕분에 피규어 퀄리티도 잘 나왔죠.

198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데, 세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여전히 인기가 많아요.
저도 가끔 놀라요(웃음). X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려고 만든 작품인데 요즘 친구들도 많이 좋아해줘요. 중국이나 대만 등 동양 문화권에서도 인기가 많고요. 자두와 친구들 캐릭터가 워낙 친근하기도 하고, 스토리 자체도 어느 세대나 공감할 법한 가족, 학교생활,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 같아요. 의외였던 것은 남자아이들한테도 인기가 많다는 점이에요. 팬레터를 받아보거나 팬 사인회를 하면 독자들 성비가 반반입니다. 자두가 애니메이션화될 때만 해도 여자아이 캐릭터라서 걱정된다는 말이 많았는데 말이죠.

어떤 이유에서요.
당시 국내에서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은 '크레용 신짱’ '도라에몽’ '아기공룡 둘리’ 등 남자아이가 주인공이라는 이유가 컸어요. 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드는데, 여자아이 캐릭터는 여성 독자들에게만 인기 있어서 위험부담이 있다고요.

어떻게 설득했나요.
‘달려라 하니’ '영심이’처럼 여자아이가 주인공이어도 성공한 애니메이션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어요. 하니랑 영심이가 당찬 캐릭터인데, 최자두 역시 비슷한 결인 데다 보다 더 억세고 강한 캐릭터예요. 이런 소녀 캐릭터가 한국 애니메이션에 있어도 분명 좋을 것 같았죠.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비슷한가요.
처음에는 비슷했는데 지금은 거의 애니메이션과 원작이 멀티버스로 가고 있어요. 원작에서는 짧게 등장하는 '성훈’이가 애니메이션에서는 '윤석’이와 비등비등하게 겨룰 만큼 서브 남주 역할을 하는 식이죠.

가장 궁금한 대목입니다. 자두 남편은 누구인가요.
공식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그런데 '돌돌이’는 절대 아니에요(웃음). 제 남편이 돌돌이의 모티프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자두랑 돌돌이가 결혼한다는 소문이 났더라고요. 돌돌이를 처음 등장시킬 때는 애초에 남편이랑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어요. 당시 '호돌이(남편 별명)’는 제 친한 친구 문하생이었는데, 친해지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어요. 지금이랑 달리 키도 작고 뚱뚱하고, 친구들에게 관심받으려고 학교에 매일 게임기를 들고 다녔다더라고요. 캐릭터가 재미있어서 돌돌이로 등장시켰는데 정작 제가 호돌이랑 결혼할 줄은 꿈에도 몰랐죠.
‘돌돌이’ 캐릭터는 작가의 남편 만화가 전호빈 씨를 모티프로 탄생했다.
만약 두 분이 결혼 전에 헤어지셨다면 돌돌이의 운명은….
상당히 껄끄러워질 뻔했죠(웃음). 이제는 남편이 돌돌이에게 되게 애착을 갖고, 돌돌이가 비호감으로 나오면 화도 내고, 분량도 신경 써요. 그렇지만 이미 돌돌이는 '민지’를 짝사랑하고 있고요. 돌돌이랑 자두는 너무 친구 같은 관계여서 결혼할 만한 서사가 만들어질 것 같지 않아요.

자두가 누구랑 결혼하는지는 영원히 비밀인가요.
자두 성인판에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최초로 밝히는 거예요! SNS에 한 번씩 자두가 어른이 된 버전을 올리고 있어요. 독자들은 제가 재미로 그리는 줄 알고 종종 정식 연재해달라고 말하는데, 사실 이미 연재 준비 중이에요. 곧 찾아갑니다.

이전에 자두의 미래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고 한 바 있어요.
맞아요. 저는 캐릭터가 나이 먹는 모습을 안 보여주고 싶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젊은 시절은 괜찮은데 중년이 된 모습을요. 완성되지 않은 모습에서 독자도 캐릭터에 대한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는데 이미 미래가 완전히 정해지면 그럴 수 없잖아요. 온라인에 자두가 중년이 된 모습이 돌아다니는데 원작이랑 별개로 애니메이션에만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어느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든 편인데, 당시에는 허락했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 중이에요. 자두의 성인 버전도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넘어가는 시점에 끝내려고 합니다.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독자들의 환상을 깰 수도 있다고 봐요.

혹시 마음에 안 드는 캐릭터도 있을까요. 사실 저는 애기(승기)가 조금 얄미웠어요.
애기는 얄미우라고 만든 캐릭터가 맞아요. 저희 남편도 싫어해요. 저는 마음에 안 드는 캐릭터는 없어요.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자두가 아니라 민지예요. 그리기 쉬워서요(웃음). 또 자두는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어가다 보니 때론 나쁜 짓도 하고요.
20년 이상 한 작품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국내 순정 만화 사상 최장수 연재를 하고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계속 이어가고 있어요.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심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두만큼은, 할머니가 돼서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정말 만화를 그만두는 날까지 자두를 계속 그리고 싶어요.

#안녕자두야 #만화가이빈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 이빈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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