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귀환과 세가지 선택지 [문정인 칼럼]

한겨레 2024. 11.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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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다음날인 6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 컨벤션센터에 나타나 지지자들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웨스트팜비치/로이터 연합뉴스

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도널드 트럼프가 돌아왔다. 법원의 두차례 유죄 평결, 암살 위기, 온갖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4년 만에 백악관 오벌 오피스를 다시 차지하게 됐다. 공화당이 상원에 이어 하원까지 장악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 경우 국정 운영에서 커다란 탄력을 받게 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가히 ‘트럼프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 당선은 전세계적으로 희비쌍곡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유럽의 나토 국가들, 팔레스타인·이란과 그 동조 세력들은 트럼프 2.0 시대의 외교정책 기조 변화에 대해 커다란 위협을 느끼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나 러시아의 푸틴은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을 내심 반길 것이다. 간단한 외교부 논평 이외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중국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트럼프 2기의 한반도 정책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우선 내각과 참모진 구성의 성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2기 행정부에서는 크게 세개의 파벌이 경합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충복들이 표방하는 거래주의파다. 가치보다 실익을 강조하며, 모든 외교 관계는 손익계산에 기초해야 하고, 이를 위해 외교적 거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다. 둘째,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기’(MAGA)파다. 이들 역시 트럼프 충성파지만, 미국의 국제 개입에 반대하고 국익이 심각하게 침해받지 않는 한 전쟁은 안 된다는 시각을 견지한다. 잭슨주의적 고립주의 성격이 강하다. 마지막으로 공화당 강경 주류로 구성된 ‘네오콘’ 파벌이다. ‘미국 최고주의’(American primacy)와 더불어 미국적 가치의 전세계적 확산을 위해 무력 사용도 불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 정책은 거래주의가 주류를 이루지만 이들 세 파벌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누가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정책을 좌우하든 한-미 동맹의 현재와 미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온 ‘민주주의 연합에 의한 가치동맹’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 외교적 성과로 자랑해오던 확장억제, 통합 억제 강화의 지속 여부도 확실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대북 위협인식과 대중 위협인식 사이의 괴리가 커지면서 한·미 억제전략의 성격도 달라질 수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강도와 빈도는 물론 전략무기의 전진배치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이에 필요한 비용을 한국 쪽이 분담하지 않는다면 축소 또는 중단하겠다는 위협이 반복될 것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와 성공적으로 합의한 방위비 분담 합의를 무력화한 뒤 그 비용을 현재의 10억달러에서 100억달러까지 증액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역시나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수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북한 문제도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트럼프는 누차 김정은과의 직거래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특히 트럼프가 푸틴과의 빅딜을 통해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할 경우, 푸틴의 도움을 받아 김정은을 설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북-미 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면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과 마찰을 피하기 어렵다.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 2기 동안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한 대북 협상이 이뤄지거나 대북 확장억제가 차질을 빚게 되면, 한국의 독자 핵무장 의지는 더욱 강해질 것이고 트럼프 백악관은 이를 용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의 핵무장을 넘어 동북아의 핵 도미노 현상을 가속하고 이 지역의 전략적 안정을 크게 해칠 수 있다.

경제 문제에도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한국의 전체 수출액은 약 222억~448억달러(약 31조~62조원)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대체수요에 대한 대응이나 수출 전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29~0.67%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반도체법과 인플레 감축법에 따라 대미 투자를 결정했던 한국 업체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감축 또는 중단될 경우 경제적 부담은 더 커진다. 트럼프 2.0은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를 이유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개정을 요구하고 나설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 2기가 한국 정부에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오리라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 교수가 제시한 이탈(exit), 항의(voice), 충성(loyalty)이라는 세가지 선택지는 시사하는 바 크다. 이전과 같은 충성 일변도의 정책은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미국에 대한 항의, 심지어 이탈까지 고려할 수 있는 결기와 지혜는 있는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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