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3년 준비한 수능, 어둠 속에서 본다면?

박성원 기자 2024. 11.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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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맹학교 3학년 최윤서 학생이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공부를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이번 수능 잘 치러서 법학과에 진학할 겁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6일 서울 강북구 한빛맹학교에서 만난 박미연(19) 학생의 다짐이다.

이번 수능에 도전하는 박미연 학생은 선천적 시각장애인으로 6살부터 맹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 점자를 읽는 속도가 빠르다. 이날 빽빽하게 점자가 쓰여 있는 수능 기출문제집을 단숨에 읽으며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점자로 된 교재뿐 아니라 일반 문제지를 점역해 공부하는 노력파였다.

지난 6일 오전 서울 강북구 한빛맹학교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수험생이 점자로 된 지난 모의고사 문제를 훑어보고 있다. /박성원 기자

고3 최윤서(19) 학생은 행정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이 학생도 어릴 적부터 맹학교에 다녔다.

“행정학과에 가서 행정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수능 고득점을 위해 매일 EBS 강의를 듣고 연구교재로 나오는 문제집을 풀고 있다. 이와 함께 시중에 나와있는 전년도 모의고사 파일을 다운 받아 ‘점자 정보 단말기’를 이용해 학습하는 등 수능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점자 정보 단말기’는 시각 장애인들이 전자 점자와 음성을 통해 문서 출력 및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휴대용 정보통신 기기로 워드프로세서, 이메일, 계산기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노트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시각장애를 가진 수험생이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 점자시험지와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 문제를 푼다. /박성원 기자

수능 당일 시각장애인은 일반학생과 동일한 시험문제를 푼다. 차이점은 시험 운영 시간이 다르다는 점뿐이다.

시각장애 수험생의 경우 일반학생의 시험 시간보다 과목당 최대 1.7배로 길다. 5교시(제2외국어/한문) 시험을 끝내면 밤 9시 48분이 된다. 오전 8시 40분에 1교시(국어영역) 시험을 시작해 밤이 되도록 한자리에 앉아 시험을 보기 때문에 수능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각장애 수험생은 수능을 볼 때 컴퓨터용 사인펜 대신 점필로, OMR카드 대신 점자용지에 답을 쓴다. 점자용지는 평가원 관계자들이 수거, OMR카드에 이기(移記)한다.

비장애인 수험생들이 컴퓨터용 사인펜을 이용해 OMR카드에 마킹하는 것처럼 시각장애를 가진 수험생들은 점필을 이용해 점자용지에 정답을 적는다. /박성원 기자

시각 장애의 정도에 따라 중증과 경증으로 나눠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중증 시각장애 수험생의 경우 시험장에 마련된 PC나 녹음테이프로 ‘음성 평가 자료’를 귀로 들으며 시험을 본다.

이와 함께 제공되는 점자 문제지(시험 문제지)를 손으로 읽으며 문제를 풀게 된다. 2교시 수학 영역과 4교시 탐구 영역은 점자 정보 단말기를 제공받는다. 수능에 쓰이는 점자 정보 단말기는 필산(筆算) 기능만 가능하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둔 지난 6일 서울 강북구 한빛맹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음성평가자료를 들으며 모의고사 문제를 풀고 있다. /박성원 기자

경증 시각장애 수험생은 확대 문제지를 제공받고, 개인이 원할 경우 확대 독서기를 사용할 수 있다. 희망하는 경우 A4 크기의 축소 시험지를 받을 수도 있다. 경증 수험생은 과목당 1.5배의 시간을 더 부여받는다.

시각장애 수험생이 지난 모의고사 문제를 풀고 있다. /박성원 기자

이들은 수능 대비를 하며 어려웠던 점을 털어놨다.

박미연 학생은 “공부할 때 EBS 강의를 많이 활용하는데, 영상 속 선생님들이 수업을 할 때 판서를 많이 한다. 우리 같은 맹인은 판서를 보지 못하니 시각장애인용 화면 해설 강의를 따로 제작해 주는데, 그 시기가 너무 늦다. 그래서 수능 공부 할 때 활용하기가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최윤서 학생은 “수능 국어영역은 글의 양이 많아 점자문제지 자체가 두껍다. 그걸 다 읽고 듣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문제 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박미연 학생이 6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늘은 제가 분리수거 당번"이라며 서둘러가는 뒷모습. 수능을 일주일 앞둔 고3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주어진 일은 충실히 해내는 모습에 책임감이 느껴졌다. /박성원 기자

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아 마치 어둠 속에서 시험을 보는 것과 같지만,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감각을 살려 공부에 열중했다.

서울 강북구 한빛맹학교 고3 교실의 수업 현장. 궁금한 게 많은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박성원 기자

서울시 종로구 서울맹학교에 재학중인 후천적 시각장애인 조운철(26)씨는 24살부터 맹학교에 다녔다. 3년간 열심히 공부해 이번 수능에서 ‘경증 시각장애’로 응시한다.

평소 조씨는 ‘보이스 오버’, ‘센스 리더’와 같은 음성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를 해왔지만, 경증 수험생이라 수능 시험을 볼 때 음성 평가 자료를 이용할 수 없다.

조씨는 “저는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었기 때문에 점자 읽는 속도나 확대기를 통해 글을 읽는 게 느리다”며 “경증 수험생들도 수능을 볼 때 음성 평가 자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6일 서울 강북구 한빛맹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박미연 학생은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다른 친구들보다 적게 먹었다. 장애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느 또래의 여고생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는 학생일 뿐이다. /박성원 기자

한편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는 52만 2670명이 응시한다. 지난해보다 1만 8082명이 늘었다. 전체 응시생 중 졸업생 수는 16만 1784명으로 지난해보다 2042명 늘어 지난 2004년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자신의 꿈을 위해 수능에 임하는 장애인들도 있다. 그들의 꿈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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