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현안진단④] 문체부와 국회는 어떻게 기업이 스포츠계를 떠나게 만들까
파리올림픽 이후 문체부와 체육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운영 전반’, 체육회는 ‘문체부의 위법‧부당한 체육 업무 행태’를 문제 삼으며, 서로를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했다. 국정감사에서도 체육계 현안에 대한 ‘호통’은 끊이지 않았지만, 체육 발전을 위한 ‘진정한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 문체부와 체육계가 갈등을 빚는 주요 현안을 짚어보고, 엘리트‧생활 체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정형근, 배정호 기자] “앞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 유니폼 공식 후원사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공식 후원사가 생겨도 선수들은 국제대회마다 입찰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의 옷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타국의 저가 항공기를 타고 올림픽에 나가는 상황이 생기면 그때는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겠다.”
대한체육회는 국민체육진흥법 33조 2항에 따라 수익사업을 하고, 후원사를 모집한다. 그동안 후원사는 ‘팀코리아’의 지식재산권과 국가대표 초상권, 독점 공급권 등의 권리를 행사했다.
공식 후원사가 ‘독점 공급권’을 갖는 것은 국제 스포츠 마케팅에서 통용되는 방식이다. ‘독점 공급권’은 계약이 체결된 후원사가 수의 계약 등을 통해 후원 물품이나 상품을 먼저 공급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FIFA(국제축구협회), 각국 NOC(국가올림픽위원회)를 후원하는 기업은 마케팅 권리를 보유하고, 이러한 독점 공급권을 제공받는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올림픽 공식 후원사가 되면 마케팅 및 올림픽 관련 상품에서 경쟁사인 LG 전자 제품은 찾아볼 수 없는 게 당연하게 인식됐다.
그런데 최근 대한체육회가 후원사들과 마케팅, 제품 공급 계약을 맺으면서 300억 원대 ‘불법 수의계약’을 체결했다는 지적이 국정감사에서 나와 논란이 됐다. 체육회가 2019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후원사 14개 업체와 300억 원대의 수의계약 162건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안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한체육회 후원사와 마케팅 계약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한체육회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의류와 여행사 등 일부 후원사가 있었다. 당시에는 장기간 상당 규모의 후원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2011년 7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대한체육회는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와 '공동 마케팅 프로그램 협약'(Joint Marketing Program Agreement, 약칭 JMPA)에 따라 2013년부터 2020년까지 평창올림픽의 모든 마케팅 권한과 자산을 조직위로 통합했고, 수익을 배분받게 되었다.
JMPA 기간(2013-2020) 동안 대한체육회는 조직위의 마케팅 수익을 배분받는 대신 후원사에 독점 공급권을 제공했고, 이 과정에서 문체부의 승인도 받았다.
문체부는 2015년 11월 “대한체육회는 JMPA에 의해 조직위의 후원사 및 상업적 파트너의 상품 또는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어 있다. 위 협약에 따라 물품 구매 계약 등을 이행하길 바란다. 단 계약 시에는 시중 가격을 초과하는 가격으로 계약이 이뤄지지 않도록 유의하고 정산 시 증빙을 제출해야 한다”며 체육회의 후원사 물품 수의계약을 승인했다.
2018 평창올림픽 이후 대한체육회는 새로운 후원사 모집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국가계약법 제7조 1항은 ‘계약을 체결하려면 일반경쟁에 부쳐야 한다. 다만 계약의 목적, 성질, 규모 등을 고려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이에 따라 2021년 2월 대한체육회는 후원사 독점공급권 승인을 문체부에 요청했고, 문체부는 “독점공급 계약 시 단가가 시중 가격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체결”하라며 조건부 승인했다.
이후 대한체육회는 공개 입찰 방식으로 후원사를 선정했고, 계약 기간은 파리올림픽이 열린 올해 말로 정해졌다. 대한체육회는 의류와 항공, 인쇄 등 여러 후원사와 수의 계약을 체결해 국가대표 및 각 종목 선수를 지원했다. 수의 계약 시 가격은 후원사가 시중에 판매하는 시장가격의 80% 이하 금액으로 공급해야 하며, 후원사는 공급가액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했다.
국제 스포츠계에서 당연한 권리로 적용되는 ‘후원사의 독점 공급권’은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의 갈등이 절정에 달한 시점에서 갑자기 ‘심각한 문제’로 변모됐다.
올해 9월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대한체육회가 특정 기업에 몰아주기용으로 300억 원의 불법 수의 계약을 맺었다”며 후원사의 물품을 체육회가 독점적으로 구매하는 ‘독점 공급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했다.
2015년과 2021년 두 차례나 독점 공급권을 ‘승인’한 문체부도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다. 문체부는 ‘상업권자(후원사)에 대한 독점공급권 제공에 따른 수의계약 중단’이라는 공문을 대한체육회로 보내며 ‘후원사 수의계약 전면 금지’를 선언했다.
국내외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는 “후원사의 독점공급권은 스포츠마케팅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예를 들어 체육회 공식 후원사가 A사인데, 선수들에게는 B사의 옷을 입힌다면 어떤 후원사가 후원한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현재 논리라면 A사가 후원해도 대기업이거나 중견기업은 입찰에 참여할 수도 없고, 공개 입찰 평가를 통해 선정된 중소기업 B사의 옷을 국가대표에게 입혀야 한다. 또 국제 대회마다 매번 입찰을 진행해야 해 옷을 준비하는 일정도 빠듯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국민체육진흥법에 규정된 설립 목적을 달성하려면 대한체육회가 자체 수입을 확보하고, 새로운 수익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방향은 거꾸로 가고 있다. 문체부에서 체육회의 자체 재정 수익 안정화와 다양화를 도와줘야 하는데 오히려 기업이 떠나가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문체부와 체육회의 갈등이 절정에 달한 시점에서 후원사 관련 문제가 터져 나왔다. 후원사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은 결국 체육회의 힘을 빼겠다는 것이다. 후원사의 독점 공급권과 관련된 부분은 ‘명확한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해석하기 나름일 수 있다. 정부가 스포츠 활성화에 대한 정책을 추구한다면 법을 제정해 후원사를 지원해 주는 게 스포츠 발전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체육인 출신 정치인인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지난해 후원사 계약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5월 임오경 의원 등 10인은 ‘올림픽 휘장 사업 공식 후원사에 대한체육회 사업의 우선 공급권 제공’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대한체육회가 공식 후원 계약 이후 구매계약 체결 단계에서 이미 선정된 ‘공식 후원사’에 우선 공급권을 제공함으로써 후원사의 유지 및 확대를 통한 ‘스포츠마케팅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그러나 관련 법안은 국회에 계류됐고,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체육계는 정치권과 문체부가 후원 기업의 ‘불법성’을 문제 삼으며, 시장을 위축시킨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후원사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위해 모든 후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갑자기 불법 계약을 맺었다며 정치권에서 비난을 쏟으니 기분이 나쁘고 섭섭한 감정이 든다. 우리는 선수들의 기량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정치권과 문체부가 직접 나서서 스포츠 후원 기업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 어떤 기업이 앞으로 스포츠에 후원하려고 하겠나”라며 쓴소리를 했다.
한 회원종목단체 회장은 “기업인이 체육 단체의 회장을 맡는 것은 순수한 봉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행태를 보면 기업인은 체육계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회사 직원들조차 체육계에 후원하다 기업에 세무조사가 들어오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현실이다. 기업인이 국위선양 하는 체육 단체를 후원하는 것을 정부에서 막는 게 정상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체육계는 기업인들이 스포츠 업계를 떠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다른 국회의원들에게 진심이 담긴 말을 전했다.
“오랫동안 스포츠 현장에서 몸담았던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스포츠 종목 단체들은 대기업의 후원이 절실하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기 위해 노력한다. 핸드볼은 한데볼(춥고 힘든 종목)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2008년 SK 기업이 핸드볼을 후원하면서 지금의 리그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동안 여러 기업들이 수많은 팀을 창단하고 비인기 종목들을 후원해서 우리나라 스포츠가 세계 10대 강국으로 올라서는데 우리 기업들이 이바지했다고 생각한다. 2022년과 2023년 기업의 스포츠단 지원 현황을 한번 보면 삼성과 현대, LG, SK 등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불법이나 편법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현대가 기여한 부분만 간단히 얘기하면 현대는 계열사 운영으로 프로팀만 4개, 울산과 전북, 부산 아이파크, 인천 현대제철이 있으며,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8개의 남녀 축구팀이 있다. 이 축구팀의 운영비로 투입된 금액만 연간 1,000억 원이 넘는다. 타이틀스폰서로 낸 후원금만 300억이 넘고,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 후원도 상당한 걸로 알고 있다.”
“문체위에서 잘못된 부분은 반드시 지적해야 하고, 잘된 부분은 문체위원들이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데, 지금 우리 문체위에서는 잘한 부분은 부각하지 않고, 잘못된 부분만 계속해서 부각하는 것 같다. 문체부가 직접 나서서 현장에서 스포츠인들이 기업과 함께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올해 주요 후원사 계약이 끝나는 대한체육회는 당장 내년부터 후원할 기업을 모집해야 한다. 그러나 후원사의 독점공급권 논란이 해결되지 않고, 국가대표 선수들을 정성으로 후원한 기업이 불법 계약 논란에 휩싸인 현 상황에서 기업이 얼마나 후원할지는 미지수다.
체육계 관계자는 “후원사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면 가장 큰 피해는 선수들이 입을 수밖에 없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운동하고,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며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는 선수들이 좋은 지원과 후원을 받으며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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