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엔 트럼프, 목요일엔 윤석열 대통령을 바라보며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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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먼지로 범벅이 된 아기를 보고 비명을 지르던 엄마는 아이를 건네받기 전에 쓰러져버렸다.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가자 전쟁을 주도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의 당선 소식을 전해받고 엑스(X)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귀!"라고 썼다.
올해 3월 "이스라엘 군이 가자지구에서 싸우는 방식에 동의하느냐"라는 인터뷰 질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렇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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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먼지로 범벅이 된 아기를 보고 비명을 지르던 엄마는 아이를 건네받기 전에 쓰러져버렸다. 거리의 모든 자동차들은 모두 트렁크에 사망자나 중상자를 넣고 달렸다. 팔레스타인 언론인 유세프 함마쉬 기자가 영국 방송사 ‘채널4’를 통해 보도한 ‘가자지구 내부는 패닉 그 자체-목격자 리포트’ 영상 중 한 장면이다.
가자지구의 아홉 살 소녀 엘라프는 폭격 직후 잔해들 사이에서 울먹이면서 말한다. “돌들이 제 등으로 떨어졌어요. 부서진 조각들을 밟고 맨발로 걸어왔어요. 발이 상처투성이가 됐어요. 전 신장질환이 있어요. 전쟁 전에는 저희 아빠와 같이 병원을 다녔어요. 지금은 숨쉬기도 힘들어요.”
이스라엘 군의 폭격 소리가 울리던 다른 날 밤 엘라프는 어둠 속에서 누워 엄마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밤이 무서워.” “괜찮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이번 전쟁은 다르네. 내가 얼마나 많은 전쟁을 목격했지?” “세 번? 두 번?” (···) “(부서진 집에서) 장난감을 더 갖고 오고 싶어.” “우리가 살아 있으면.” 팔레스타인 언론인 살라 알 하우 기자가 보도한 〈가자로부터 온 목소리〉에 담긴 모습이다.
두 보도는 올해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수상작이다.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은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를 기리는 언론상이다. 현대 사회에서 ‘내신’과 ‘외신’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한 나라의 뉴스는 더 이상 그 나라만의 이슈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가자 전쟁을 주도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의 당선 소식을 전해받고 엑스(X)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귀!”라고 썼다. 그는 트럼프와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반면 가자의 아홉 살 소녀 엘라프 관점에서는 트럼프 당선이 매우 나쁜 뉴스였을 것이다. 올해 3월 “이스라엘 군이 가자지구에서 싸우는 방식에 동의하느냐”라는 인터뷰 질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렇다”라고 답했다.
어제(11월6일) 예상보다 일찍 나온 트럼프 당선 유력 소식에 뉴스 속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한 대한민국 국민은 오늘(11월7일)도 TV와 유튜브 영상 앞에 모여들었다. ‘대국민 사과’가 예고된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기 위해서였다.
현 정부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도 ‘어쩌면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오해였고, 어쩌면 조금은 용서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 2시간20분을 견디며 대통령의 입을 바라봤다. 심지어 ‘정부 비판적’ 매체로 분류되는 〈시사IN〉의 편집국장마저도. 하지만 “‘아무튼, 어찌 됐든, 잘 모르겠고, 그냥 일단, 아 됐고’ 미안, 근데···”로 요약되는 2시간20분짜리 변명 쇼를 보면서 0에 수렴했던 그 기대감이 마이너스로 뚫고 내려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래도 더 견뎌야 한다. 가자의 소녀 엘라프는 부서진 집을 뒤져 교과서와 아끼던 인형을 건져내고, 엄마는 부서진 나무 잔해에 불을 붙여 난(빵)을 굽고, 구조된 고양이도 난 조각을 함께 핥아먹으며 내일을 기약하고 있다. 지치지 말아야 한다. 지치면 진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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