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폭풍 속으로… 긴장한 미래, 그나마 안도의 한숨짓는 KB, 웃고 있는 한투
KB, 차입금·수수료 챙겼는데 책임에선 한 발 뒤
미래에셋, 공개매수·유상증자 했다가 금감원 검사받아
고려아연 우호세력 분류됨에도 쳐다도 안 본 한투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주선회사로 참여해 수수료를 챙기고 빌려준 돈도 회수하려던 KB증권이 골치 아프게 됐다. 유상증자 증권신고서를 들여다볼 금융감독원이 송곳 심사를 예고하면서다. 그래도 KB증권의 상황은 미래에셋증권보단 나은 편이다. 금감원은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관여한 증권사에 대해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지 들여다보겠다고 경고했는데, 이를 어긴 주체로 미래에셋증권을 더 강하게 의심하고 있어서다.
1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2조5000억원 규모의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KB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의 관여도를 달리 판단하고 있다. 두 회사는 이번 유상증자에 모집주선회사로 참여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미래에셋증권이 (유상증자 등의 업무에서) 좀 더 메인 역할을 맡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 징계까지 이어질 경우 KB증권보단 미래에셋증권이 무거운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KB증권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유상증자 이전에 증권사는 발행사에 대한 기업 실사를 진행하는데, 고려아연에서 이 업무를 한 건 미래에셋증권 IB1팀이었다. KB증권은 미래에셋증권과 공동 모집주선회사였으나 실사를 진행하진 않았다. 이번 유상증자에서 핵심 임무를 맡은 건 미래에셋증권이란 얘기다.
또 금감원이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 일부가 KB증권으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점도 KB증권엔 긍정적 요소다. 고려아연은 유상증자를 통해 투자자에게 자금을 받으면 그중 2000억원은 KB증권에 대한 차입금을 상환하겠다고 공시한 바 있다. 유상증자가 진행되면 KB증권은 빌린 돈을 돌려받고 유상증자에 따른 수수료도 챙기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가 유상증자의 모집주선회사이면서 동시에 조달한 자금으로 상환 대상이 되는 경우에 대해) 특별히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모집주선수수료는 기본 주선수수료(33억원)에 추가주선수수료(주선회사가 발행사에 납입한 청약대금의 0.15%)와 성과수수료(최고 29억원)의 합으로 결정된다.
현재 금감원이 따지고 있는 것은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할 당시에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었는지와 증권사가 그 내용을 인지했는지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계획을 발표하면서 “공개매수 후 회사의 지배구조, 재무구조, 사업내용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 계획은 수립하지 않고 있다”고 공시한 바 있다. 하지만 공개매수가 끝난 지 일주일 만에 전체 물량의 20%에 해당하는 주식을 유상증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은 미래에셋증권은 고려아연의 유상증자를 공개매수 당시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유상증자 기업 실사 기간(10월 14~29일)이 자사주 공개매수 기간(10월 4~23일)과 겹치기 때문이다. 특히 미래에셋증권은 두 업무를 진행한 담당자가 같다. 이렇게 되면 공개매수 당시에 ‘재무구조 변경을 가져올 구체적인 장래계획은 수립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은 거짓이 된다. 공개매수신고서에 중대한 사항이 허위로 작성됐다는 뜻이다.
고려아연은 날짜를 착각했다며 실제 기업 실사 기간은 지난달 23일 공개매수가 끝난 후라고 발표했지만 금감원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증권신고서를 작성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고려아연 말대로 지난달 23일부터 실사에 돌입했다면 불과 4영업일 만에 실사를 마치고 증권신고서를 작성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 끼어들지 않은 증권사들은 내심 미소를 짓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한국투자증권이다. 한국투자증권은 고려아연의 지분 0.8%를 갖고 있는데, 최윤범 회장 측 우호주주로 분류된다. 앞서 두차례 연속으로 자사주 취득 업무를 맡기도 했다.
증권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이 가장 먼저 한국투자증권에 공개매수 대행을 의뢰했으나 한투가 거절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한 주요 증권사 임원은 “한투는 이미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해상충 문제 때문에 공개매수 대행은 맡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한투 측은 “이해상충 문제는 없고, 찰나를 이용한 순간적인 금융은 지양하자는 차원에서 맡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투는 영풍과 MBK파트너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에 응했는지 여부도 밝히지 않고 있다.
한편 허위 기재된 신고서라도 공개매수는 유상증자처럼 실행되기 전에 막기 어렵다. 더욱이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는 지난달 끝났다. 자본시장법상 금융위원회는 공개매수신고서를 거짓 기재한 회사에 대해 최장 1년간 공개매수를 제한할 수 있다. 업무를 담당한 증권사(사무취급자)에 대해서도 최장 1년 동안 공개매수를 아예 못 하게 할 수도 있다. 또 발행사(고려아연)와 증권사에 대해 ▲임원에 대한 해임 권고 ▲법 위반 시 수사기관 통보 ▲경고 또는 주의 조치 등을 내릴 수 있다. 징계는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와 금융의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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