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살리는 유통]⑨ 라면 축제부터 농가 지원까지… 34년째 구미와 공생하는 농심

민영빈 기자 2024. 11.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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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구미살이 34년째인 농심 공장… 신라면 등 대표 제품 75% 생산
현지 직원 고용·라면 축제 후원… 지역 경제 활성화 촉진
구미시 “30년 넘게 인구 소멸 속도 늦추는 역할”

저출산에 따른 지역 소멸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위기 속 지역과 상생하는 유통업체들도 있다. 조선비즈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토종 유통업체들의 현장 및 지자체 현황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구미시 인구는 45만 명에서 현재 40만4000명으로 인구 소멸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구미시를 찾도록 하면서 지역 경제도 살릴 묘책으로 시작한 게 ‘구미 라면 축제’다. 구미시의 소멸을 막고자 하는 마음이 담겼다.”

지난 1일 경상북도 구미시 공단동에 위치한 농심 구미공장에서 32년째 근속 중인 김상훈(59) 농심 구미공장장은 ‘농심이 지역과 상생하기 위해 힘쓴 게 있는지’를 묻는 말에 “구미에 공장을 둔 우리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구미 라면 축제는 농심과 구미시가 협업해 선보인 구미 대표 축제로, 올해 3회차를 맞이했다. 농심은 이 축제에 라면을 공급하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농심은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셋째 동생인 고(故) 신춘호 회장이 1965년 설립한 ‘롯데공업 주식회사’가 농심의 모태다. 사명이 ‘농심’으로 바뀐 건 1978년부터다. 당시 광고로 유명해진 농심라면에서 따왔다. 1980년대부터는 너구리·안성탕면·짜파게티·신라면 등 이른바 ‘국민라면’ 타이틀을 달 만한 제품들이 줄줄이 나왔다.

농심이 구미에 뿌리를 내린 건 1990년 구미공장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이전에는 부산공장에서 라면을 생산했는데, 부산보다는 전국으로 제품을 유통하기 좋은 고속도로를 갖춘 구미가 적합했던 것이다. 이후 신춘호 회장은 생산성 증대를 목표로 1998년 4월 설비 자동화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구미공장은 국내 신라면 생산량의 75%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신라면 외에 라면·스낵 등 총 42종의 제품도 이곳에서 생산된다. 특히 자동 시스템과 고속 생산 체계 구축을 통한 최첨단 공정을 통해 1분에 신라면 600개를 만들고 있다. 구미공장의 생산액(매출)은 지난해 기준 7697억원이다. 농심 관계자는 “구미 산단에 식품회사가 많지 않다. 농심은 구미시 1등 식품회사로 꼽힌다”며 “올해는 구미공장 매출만 830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경북 구미시에 위치한 농심 구미공장에서 라면이 만들어지는 공정 단계. 소맥분을 배합수와 혼합한 반죽을 압연한 뒤 '절출' 단계를 거쳐 증숙(익힘)한 라면이 다음 공정 단계를 위해 옮겨지고 있다. /양범수 기자

◇스마트 최첨단 구미공장… 누적 고용 인원 6500여 명

농심 구미공장은 하루 라면·스낵 등 제품 665만 개를 생산할 수 있는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있다. 2021년 신춘호 회장이 별세한 뒤 회장직에 오른 신동원 회장이 최첨단 설비 개선에 힘쓴 결과다. 현재 구미공장의 라면 고속 생산 라인은 총 8단계를 거치고 있다. 첫 번째 공정 단계에서는 소맥분과 배합수를 혼합해 반죽을 형성한다. 이후 반죽을 압연해 면대를 만들고 ‘절출’ 단계를 거치면 우리가 아는 꼬불꼬불한 라면 모양이 된다. 라면 고유의 식감을 구현하는 핵심 단계다.

절출된 면은 한 번 익혀진 뒤 일정한 크기로 잘려 납형(틀)에 담긴 채 기름에 튀겨진다. 이후 일정한 온도로 식힌 면은 포장 라인으로 옮겨진다. 옮겨진 면은 분말 스프·후레이크와 함께 포장된다. 이 과정에 농심은 불량품을 걸러내기 위해 AI(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했다. 포장 불량·수량 부족·소비기한 표기 오류 등을 잡는 것이다. 김 공장장은 “스마트공장 시스템으로 원료 공급부터 생산까지 첨단 자동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품질·환경·안전에 대한 인증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생산 환경을 구축한 것”이라고 했다.

현재 구미공장에서 일하는 직원 수는 645명이다. 대부분이 구미시에 거주하고 있다. 공장 직원들의 초임이 보통 연 3000만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구미 시민의 연간 급여 소득 중 최소 193억5000만원이 이곳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농심에 따르면 공장 설립 이후 농심 구미공장 누적 고용 인원 수는 6500여 명이다. 34년간 구미 지역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다.

구미 라면 축제 마지막 날인 지난 3일 행사장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모습. 지난 1일부터 이날까지 3일간 열린 축제에는 약 17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구미시 제공

◇지역 살리기에 진심… 농가 이어 지역 축제도 지원

농심은 국산 농산물 구매와 농가 지원에도 진심인 면모를 보여왔다. 40년 넘게 이어온 완도 다시마 어민과의 동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1982년 너구리를 출시한 농심은 차별화된 해물 우동의 맛을 구현하기 위해 완도 다시마를 원물 그대로 넣기로 결정했다. 이후 농심은 매년 약 400t(톤) 규모의 다시마를 구매해 완도 어민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올해까지 누적 구매한 다시마 양은 1만7500t에 달한다.

또 농심은 2021년부터 귀농 청년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과 함께 ‘청년 농부’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매년 청년 농부 10명을 선정해 파종 전 사전 계약으로 선급금을 지원하고, 우수 농가와 멘토·멘티 결연을 맺도록 해 씨감자 보관·관리법 등 세부적인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청년 농부들이 안정적으로 영농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농심은 이들이 수확한 감자를 구매해 포테토칩과 수미칩 생산에 사용하고 있다. 올해까지 누적 구매한 감자는 850t에 달한다.

농심이 2022년부터 올해까지 3회째 참여 중인 구미 라면 축제도 지역 경제 살리기 일환이다. 구미시에 따르면 지난해 축제에 방문한 관광객 수는 9만 명이었다. 이 중 36%는 다른 지역에서 온 방문객이었다. 지난해 축제 기간 소비 금액도 전후 1주일 대비 17% 늘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올해는 축제 개최 장소를 구미역 앞으로 옮겼다”며 “쇠퇴하고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는 구도심에서 축제를 열어 인근 전통시장이 부활하는 계기를 만들고 상권을 살리자는 취지”라고 했다.

구미시는 농심이 지역 상생·공존에 초점을 두고 소멸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농심 구미공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구미시가 얻는 연간 경제 효과는 4500억원에 달한다고 전한다. 구미시 관계자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IMF 사태) 당시에도 농심은 구미공장 문을 닫지 않고, 증설하고 직원을 더 고용했다”며 “2022년에도 생산 라인을 늘리면서 약 400억원을 투자하고 100명의 직원을 신규 고용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기업과 지역 상생의 본질은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의 유무에 따라 사람들이 오거나 떠나지 않나”라며 “농심이 구미의 인구 소멸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30년 넘게 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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