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인구 1억 기회의 땅 베트남, 한국 의료가 간다
의료 수요 증가, 2007년부터 외국에 개방
H+양지병원, 한국 의료법인으로 첫 진출
GC그룹, 첫 암전문진단기관 내년 개소
지난 6일 오후 베트남 수도 하노이 서호신도시에 있는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롯데가 지난해 9월 공식 개장한 이 복합 쇼핑몰은 이제 하노이의 랜드마크가 됐다. 이 쇼핑몰 옆 오피스 빌딩 6~7층에 다시 한국 주도의 랜드마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의료법인 서울효천의료재단 에이치플러스(H+)양지병원이 설립 중인 ‘H+인터네셔널 메디컬센터 헬스케어&폴리클리닉 하노이(이하 H+하노이)’다. H+양지병원은 서울 관악구에 있는 300병상 규모의 대형 종합병원이다. 한국 의료법인이 독자적으로 베트남에 진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H+양지병원이 조선비즈에 최초로 공개한 H+하노이는 막바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층당 연면적은 1500㎡로, 2개층 합쳐 3000㎡(약 1000평) 규모다. 이곳은 건강검진센터와 함께 내과와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치과 등 12개 진료과에서 외래진료를 하는 폴리클리닉이 운영된다. 의사를 포함한 병원 직원 수는 약 100명이다. 베트남 진출을 위해 병원에 투입한 비용은 150억원 규모다.
이날 만난 김상일 H+양지병원장은 “애초 내년 개원이 목표였는데, 인허가 절차가 순조롭게 이뤄져 이르면 이달 중 최종 정식 허가를 받고 진료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외래진료를 하는 폴리클리닉부터 시작해 내년 1월에는 건강검진센터도 열어 완전 가동한다”고 했다.
◇파트너 없이 독자 진출, 100% 직접 투자
이달부터 가동할 H+하노이에는 의료기기 기업 GE, 삼성메디슨 등의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유방촬영 장비를 갖추고 있다. 김상일 H+양지병원장은 “현재 한국 주요 대학병원의 건강검진센터보다 더 좋은 최고급 장비”라며 “한국인 의사는 소화기내과·가정의학과·소아과·산부인과·치과 5명이고, 나머지는 베트남 의대를 나온 현지 의사들을 채용했다”고 말했다.
의료기관이 해외에 진출할 때는 대부분 현지 병원이나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위탁 운영하거나 지분 투자로 합작하는 형태다. 한국과 다른 법과 설립, 인허가 제도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손실 위험)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양지병원은 현지 파트너 없이 100% 직접 투자해 독자 진출을 택했다. 김상일 병원장은 “현지 파트너와 합작한 형태의 진출이 초기 인허가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운영 과정에서 어려움과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며 “중국에 진출한 한국 병원들이 이런 이유로 고생하거나 실패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허가 절차가 한국과 다른 데다 문턱도 높지만, 성공적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H+양지병원의 목표와 비전을 실현하려면 독자적인 진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김 병원장은 H+하노이 병원장도 맡아 직접 베트남 진출과 병원 운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베트남 진출을 준비하면서 서울과 하노이를 오가다, 5개월 전부터는 하노이에 거주하고 있다.
7일 오전, 하노이 남뚜리엠 지역에서도 종합병원 건립 공사가 막바지 작업 중이었다. 베트남 사립대학인 페니카(Phenikaa) 대학교를 운영하는 페니카 그룹의 의과대학 부설병원이다. 한국 의료법인이 세운 병원인 H+하노이에서 남쪽 방향으로 약 13㎞ 떨어져 가까운 거리에 있다. 바로 이곳에 또 한국 기업인 GC녹십자홀딩스가 건강검진센터를 설립해 진출한다.
GC녹십자홀딩스는 지난 7월 베트남 페니카 그룹과 양자 간 주주 간 계약서(SHA)를 맺고 베트남 최초의 유전자·암 전문 종합 진단·판독기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페니카 의대 부설병원은 8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4개동으로 구성되는데, GC의 건강검진센터가 한 동에 들어선다. 건강검진센터는 2·3층에서, 진단검사실은 4·5층에서 운영될 예정으로 내년 6월 개소가 목표다. 페니카 그룹 측은 “우수한 한국 의료진을 영입해 배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베트남 사망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질환이 심혈관 질환과 암이다. 특히 암 환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페니카 그룹 관계자는 “암은 조기에 발견된다면 사망률을 줄일 수 있지만 아직 베트남 내 암 전문 진단기관은 아주 부족한 상황”이라며 “GC와 함께 설립하는 선진 기관이 패니카 그룹이 구축하려는 의료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07년부터 외국인에 의료시장 개방
한국만 베트남 의료 시장에 진출하는 건 아니다. 하노이 외곽 에코파크신도시에는 일본 도쿄의대병원이 설립됐다. 도쿄의대는 베트남 진출을 노리고 2020년 병원 건립을 추진해 2000만달러(한화 약 280억원)를 투자해 150개 병상 규모의 병원과 부속 시설을 지었다.
외국인 의사와 의료기관, 기업이 베트남 의료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는 이유는 고(高)성장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올 4월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베트남 인구는 1억77만명이다. 인구가 많지만 베트남 의료기관 대다수가 공공(국립)병원으로, 의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서비스 질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현지 자산가 중에는 현지 의료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해 태국, 싱가포르 등으로 원정 치료를 가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글로벌 제조기업과 금융사들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해외 사업의 무게추를 옮기면서 베트남에서 외국인의 의료 수요도 늘고 있다.
현지 병원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열악한 의료 체계와 서비스를 강화하려는 의지가 더 커졌다. 베트남 병원들이 한국의 선진 의료시스템과 기술을 도입하고, 사업을 협력하고자 한국을 방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베트남 빈 그룹의 의료계열사 빈멕 헬스케어 시스템은 지난 5~6월 한국 의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기도 했다. 공고에서 하노이에 있는 병원에서 근무할 한국 의사에게 주 44시간 근무에 월 급여 3000만원, 주거 지원금 월 800달러(112만원) 등 파격적 근무 조건을 제시했다고 알려졌다.
베트남 정부도 적극적이다. 2007년부터 외국인에게 의료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2009년에는 의료법을 전면 개정했으며 이후에도 의료산업 관련 제도를 정비해 왔다. 특히 2019년 10월 베트남 보건부는 병원의 환자 기록을 디지털화하고 스마트 병원을 구축하기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인공지능(AI), 빅테이터(대용량 정보)를 활용한 디지털 헬스를 도입하는 게 주요 골자다. 김상일 H+양지병원장은 “한국에서 법제도 문제로 막혀 있는 원격의료, 첨단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병원 시스템과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실현해 보려는 것도 베트남 진출을 결정한 주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스태티스타(Statista)는 베트남 의료시장 규모가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약 10%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고우람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호찌민 무역관은 보고서를 통해 “베트남 시장이 커지고 양질의 의료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어 한국 병원의 베트남 진출 기회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고 무역관은 “베트남에 진출하는 해외 의료기관들이 늘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며 “베트남은 의료법인 설립 조건과 실무에서 요구사항이 복잡한 데다 빈부격차가 커 베트남 병원 진출 전 현지 제도와 시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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