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연회비 100만원 짜리 카드를 쓰는 이유
# 올해 해외여행을 앞둔 30대 직장인 A 씨. 혜택이 많은 카드를 열심히 검색하며 연회비 혜택과 마일리지 적립률을 따져보니 프리미엄 카드를 선택하게 됐다. A 씨는 “연회비가 20만원이지만 호텔 스파나 신라면세점 포인트, 호텔 브런치 등으로 전액 돌려받을 수 있다”며 “신라면세점 포인트로 받을 경우 환율에 따라 20만원 넘는 금액이 적립되기도 해 더 이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신규 카드를 발급할 때 꼭 확인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연회비다. 카드사에 내는 1년치 회비인데 일반적인 할인이나 적립 혜택이 탑재된 신용카드의 연회비는 2만~3만원가량이다. 10만원 이상부터는 프리미엄 카드로 분류된다. 시중에는 항공 마일리지 적립 카드부터 호텔 브랜드 PLCC(상업자표시신용카드) 카드, 바우처 제공 카드 등 소비자 수요에 맞춘 다양한 프리미엄 카드가 나와 있다.
프리미엄 카드는 연회비보다 더 큰 혜택을 준다. 예컨대 연회비 50만원 카드를 발급하면 50만원 이상의 바우처를 제공하는 식이다. 연회비로 수십, 수백 쓰는 소비자들은 카드 값을 연체할 확률이 낮은 데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카드 실적도 높아 카드사 입장에서도 더 이득이다.
신용카드 플랫폼 카드고릴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출시된 신용카드 44종의 연회비 평균은 11만3225원이다. 지난해(6만9583원) 대비 63%나 올랐다.
‘호캉스’ 추구하는 2030이라면
“2000원짜리 김밥 한 줄로 한 끼를 때워도 하루는 유명 호텔에서 쉬고 싶은 2030세대가 늘고 있어요.”(카드업계 관계자)
프리미엄 카드는 일반적으로 구매력이 있는 4050세대들이 주요 소비층이었지만 최근엔 ‘경제력이 있는 2030세대’가 급부상했다. 고가의 연회비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카드를 발급하면 연회비에 준하는 호텔 숙박권을 얻고 높은 호텔 객실 등급도 획득할 수 있다.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즐기는 2030세대에겐 매력적인 상품인 셈이다.
실제 신한카드의 ‘메리어트 본보이 카드’를 최근 1년간 발급한 소비자 중 2030세대의 비중은 40%에 달한다. 연회비는 26만4000원(국내 전용)에서 26만7000원(해외 겸용)이다.
이 카드를 발급하면 전 세계 메리어트 체인에서 ‘골드 엘리트’ 등급의 객실을 기본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 등급은 일반적으로 25박 투숙 시 얻을 수 있다.
1년간 6000만원을 사용하면 다음해 호텔 회원등급을 업그레이드(플래티늄 엘리트) 해준다. 다만 30대 근로자의 1인당 평균 근로소득이 4262만원(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8~2022년 귀속 연령별 근로소득 천분위 자료’)인 점을 고려하면 맞벌이나 투자를 통해 얻은 여유 자금이 있지 않은 이상 플래티늄 엘리트 등급으로 오르는 건 힘든 셈이다.
우리카드의 ‘ALL 우리카드 Infinite’(올 인피니트)도 2030세대 비중이 39% 정도다(올해 9월 기준). 연회비는 메리어트 본보이 카드보다는 높다. 국내 전용, 해외 겸용 구분 없이 50만원이다.
올 인피니트 카드를 발급하면 반얀트리·래플스·소피텔 등을 운영하는 글로벌 호텔체인 아코르에서 플래티넘 등급을 곧바로 얻을 수 있다. 이는 보통 60박을 투숙해야 얻을 수 있는 등급이다. 연 3500만원을 사용하면 다음해 호텔 회원등급을 올릴 수 있다.
1년에 한 번 연회비에 상당하는 호텔 숙박권(포인트)도 준다. 숙박권만 받아도 연회비를 건질 수 있는 셈이다. 메리어트 신한카드도 연 1회 무료 숙박권과 국내 메리어트 참여 호텔 조식 5만원 할인권(연 2회), 동반 1인까지 적용되는 공항라운지 혜택(연 4회)도 제공한다.
가성비 있는 프리미엄 카드는
“호텔 이용 등 미래 혜택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성 혜택을 제공하는 카드인지를 따져요.”(30대 육아휴직자)
프리미엄 카드의 연회비는 크게 10만~30만원, 50만원, 100만원 이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2030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연회비 부담이 덜한 10만~30만원의 카드를 주로 이용한다. 카드사는 미래세대를 충성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2030의 유입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 때문에 최근 10만원대의 프리미엄 카드 마케팅이 한창이다.
억대 자산가나 대형 로펌 등 전문직 등을 대상으로 연회비 20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 카드만 발급했던 하나카드도 올해부턴 연회비를 대폭 낮춘 JADE(제이드) 시리즈를 출시했다. 제이드 클래식, 제이드 프라임, 제이드 퍼스트, 제이드 퍼스트 센텀 등 총 4종 카드의 연회비는 각각 12만원(해외 겸용), 30만원, 60만원, 100만원이다.
제이드 클래식의 경우 카드를 발급 받으면 5가지의 바우처가 생긴다. ①호텔 다이닝 10만원 현장 할인 ②신세계 상품권 10만원 모바일 교환권 ③SK 모바일 주유권 10만원 ④배달의민족 모바일 상품권 10만원 ⑤9만원 하나머니 등이다.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평소 배달 음식을 즐겨 먹는 소비자라면 배달의민족 모바일 상품권을 바우처로 선택하면 된다. 이 경우 2만원(연회비 12만원-바우처 10만원)만 내고 공항라운지(연 3회) 이용 등의 혜택까지 누릴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카드 발급 후 50만원 이상 이용 시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고 다음 해부터는 1년간 600만원 이상 카드를 써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카드고릴라 차트를 보면 지난 10월 한 달간 연회비 10만원 이상 카드 30개 중 제이드 클래식이 1위를 차지했다. 제이드 시리즈는 지난 9월 말 기준 7만 매 넘게 발행됐다.
연회비는 20만원이지만 실제 부담액이 0~5만원인 카드도 있다. ‘현대카드 Summit(서밋)’이다. 연회비가 국내 해외 상관없이 20만원인 이 카드는 발급 시 15만 원 상당의 바우처를 제공한다. 신세계 백화점 또는 롯데백화점 상품권으로 받을 수 있다. M포인트로 교환한다면 20만 포인트까지 가능하다. 공항라운지는 연 5회까지 무료 이용할 수 있다.
2위부터 4위까지는 현대카드의 프리미엄 카드가 차지했다(카드고릴라 차트).
쇼핑·여행 즐긴다면
“2만~3만원 연회비 내면서 혜택 받는 게 없는데 똘똘한 프리미엄 카드로 갈아타야 할지 고민이네요.”(대학생 자녀 둘 있는 50대 직장인)
4050세대는 가장 돈을 많이 쓰는 세대다. 본인은 물론 자녀와 부모를 위해서도 소비한다. 쇼핑, 여행, 골프 등 각자 주목하는 활동에 따라 프리미엄 카드를 선택하는 게 더 이득일 수 있다.
롯데카드의 ‘롯데백화점 Flex(플렉스)’는 롯데백화점 및 롯데아울렛의 해외명품·컨템포러리 매장에서 결제 금액의 7%를 L.POINT(엘포인트)로 적립해 준다. 다만 월 최대 10만 포인트까지다. 전월 실적은 100만원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전달 100만원 이상 소비하고 200만원짜리 명품백을 산다면 10만원의 포인트가 쌓이는 것. 체감상 190만원에 상품을 구매한다는 얘기다. 롯데백화점 7% 현장할인 혜택도 있다. 연간 최대 20만원까지다. 연회비는 국내 전용, 해외 겸용 구분 없이 10만원이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소비자에게는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이 필요하다. ‘IBK기업은행 K22’ 카드는 결제금액 1500원당 대한항공 1~2마일리지를 적립해준다. 연간 600만원 이상 이용하면 5종 바우처 중 1개를 연 1회 제공한다. 15만원 상당의 상품권이나 탑 포인트 13만 점 중에 고르면 된다. 연회비는 해외 겸용 기준 22만원이다.
외항사인 싱가포르항공에 특화된 카드도 있다. ‘싱가포르항공 신한카드’는 싱가포르항공의 크리스 플라이어 멤버십 마일리지를 이용금액 1500원당 2~3.5마일 적립해준다. 아울러 연간 1만5000마일리지를 기본 제공하고 연 이용실적에 따라 추가 제공도 한다. 연회비는 해외 겸용 25만원이다.
싱가포르항공은 싱가포르의 국적항공사로 전 세계 38개국 121개 도시에서 운항 중이다. ‘크리스플라이어 마일리지’는 싱가포르항공 외에도 아시아나, 유나이티드, 루프트한자 등이 속해 있다.
삼성카드의 THE iD. TITANIUM(디아이디 티타늄)은 연회비(해외겸용)가 70만원이다. 호텔, 골프, 쇼핑을 골고루 이용할 때 쓰기 좋다. 1년간 두번의 바우처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그랜드 하얏트 서울, 서울신라호텔, 조선팰리스 등 국내 특급 호텔 객실·다이닝 서비스에 대해 25만원 현장할인하는 식이다. 가평베네스트골프클럽 등 골프장을 이용하거나(현장할인) 꼼데가르송, 메종 키츠네 등 삼성물산 브랜드 직영 매장에서 25만원 결제일할인을 제공한다.
여기에 인터파크 티켓·골프장·온라인쇼핑몰(SSF SHOP 등)에서 10 만원 이상 결제할 때 한달에 한번, 연 3회 5만원 결제일할인 혜택을 준다.
아무나 못 쓰는 VVIP 카드, 연회비 이상 혜택은 당연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VVIP 카드는 가입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다. 한국 최초 VVIP 카드로 알려진 현대카드의 ‘더 블랙’은 현재까지 몇 개의 카드가 발급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카드를 소유한 사람은 총 1000명을 넘기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더 블랙의 마지막 번호는 1000번이다. 지난 9월 연회비를 기존 2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인상했다.
현대카드가 조건을 갖춘 이들에게 가입 초청을 보내고, 가입 의사가 있다는 답변을 받으면 내부 심사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발급 여부가 결정된다. 연예인 중에는 배우 이정재와 가수 지드래곤, 그룹 블랙핑크 리사 등이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 겸 배우 아이유가 사용하는 카드로 이슈가 된 우리카드의 TWO CHAIRS(투 체어스) 블랙도 반기 평균 잔액이 50억원 이상이어야 하며 연회비(해외 겸용)가 250만원에 달하는 등 가입 조건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VVIP 카드는 연회비 이상의 혜택을 제공한다. 투 체어스 카드만 봐도 연회비만큼의 현금성 혜택(기프트 바우처)을 제공한다. 카드 결제 시 사용할 수 있는 모아포인트 100만 점, 신세계·롯데·현대 중 원하는 백화점 상품권 100만원, JW매리어트 동대문 등 프리미엄 호텔 외식 이용권 50만원이다.
해외 겸용 연회비가 200만원인 하나카드의 CLUB1(클럽1) 200을 발급 받으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이용 시 좌석 승급(비즈니스→퍼스트, 비즈니스 스위트)을 선택하거나 동반자 비즈니스 항공권을 선택할 수 있다. 연회비만큼의 혜택을 받는 셈. 동반자 비즈니스 항공권을 선택할 경우 미주·유럽·중동·오세아니아는 연 1회, 동남아시아·일본·중국은 연 3회까지 가능하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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