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아니요,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이현호 기자 2024. 11.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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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광군제로 포장하고 대대적 상업 광고
日 ‘포키와 프리츠의 날’ 상업기념일 행사
영미권·유럽, 참전용사들 기리는 ‘국경일’
호주 등 이날 1~2분 묵념하는 문화 지속
독일 연방군이 행진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서울경제]

한국에서 양력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로 불린다. 공식적인 기념일은 아닌 상업적 기념일이다. 기업들이 판매고를 높이기 위해 내놓은 전형적인 데이 마케팅 중의 하나다. 그런데도 처음 시작된 1990년대 이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기념일로 거듭나고 있다.

여성 구매층이 많은 발렌타인 데이(2월 14일), 남성 구매층이 많은 화이트 데이(3월 1ㄹ4일)와 달리 빼빼로 데이는 남녀 모두에게 수요가 높아 기존의 데이 마케팅 대명사였던 이 둘 기념일 보다 연중 최대 매출이 발생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데이 마케팅 날로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시초는 1990년대 경남의 한 여고에서 여학생들이 빼빼로를 교환하며 시작됐다고 알려진 일종의 토종기념일이다. 롯데제과의 경남 지역 소장이 매년 11월 11일만 되면 빼빼로가 엄청나게 팔린다며 본사에 제보를 해서 조사해보니 그 지역 여학생들끼리 다이어트에 성공해 빼빼하게 되자 “살 좀 빼라”고 놀리며 빼빼로를 나눠먹는 날이었다고 한다.

이를 롯데 본사에서 발빠르게 마케팅에 사용해 전국적으로 퍼져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 정설이다. 이 때문에 빼빼로 데이를 앞두고 분주한 대표적인 기업은 롯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빼빼로를 2035년까지 1조원 브랜드로 만들어라”는 특명을 내린 만큼 11월 11일 앞두고 매년 대대적인 판촉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빼빼로 데이’는 상업적인 기념일 불과

상업적인 기념일인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로 불리는 게 전 세계가 공통적일까.

중국에서는 빼빼로 데이 대신 다른 걸 기념한다고 한다. 알리바바 등 중국의 유통업체들은 ‘독신의 외로움을 쇼핑으로 달랜다’는 취지의 광군제(光棍)를 1990년대부터 대대적인 연례 할인 행사로 키워왔다. 테무, 알리익스프레스 등이 11월을 전후로 매년 공격적인 광고에 나서는 이유다.

이웃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제과 대기업인 에자키 글리코사(社)가 초코 막대 과자인 포키를 판매를 위해 대대적인 판촉행사를 펼친다. 일본은 11월 11일을 ‘포키와 프리츠의 날’이라고 부르며 기념하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우리와 다른 점은 글리코사(社)는 이날을 1999년 일본기념일협회 신청해 정식 승인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만든 상업 기념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미국 등 영미권과 유럽 국가들에겐 11월 11일은 정부에서 지정한 정식 국가 기념일이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뜻 깊은 날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일로 세계대전과 여러 전쟁에 참여한 참전용사들을 기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1일 재향군인의 날을 맞아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의 묘 앞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베테랑스 데이’, 즉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을 맞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우리는 자유의 최전선에 섰던 여러 세대 미국인들을 다시 한번 기리기 위해 오늘 함께 모였다”며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고귀한 소수의 위대한 업적을 다시 한번 증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우리 참전용사들은 이 나라의 강철 척추이며, 바로 여러분과 같은 그들의 가족은 용기 있는 심장”이라고 밝히며 재향군인의 날을 축하했다.

미국에서 11월 11일은 퇴역한 군인을 기리는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로 공휴일이다. 세계 1차대전이 끝난 후인 1919년 11월 미국의 제28대 대통령인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11월 11일을 ‘휴전기념일’로 선포했다. 이후 1954년 미 의회는 ‘휴전기념일’을 ‘재향군인의 날’로 명칭을 바꿔 미군에 복무한 모든 퇴역군인을 기념하는 공휴일이다.

우리의 현충일과 성격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실 1918년 11월 11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휴전협정 기준, 콩피에뉴 협약)이다. 이날은 프랑스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의 휴전을 기념하는 공휴일(L’Armistice du 11 novembre)이다. 106년이 지난 최근까지 이날을 기리는 행사들이 줄잇고 있다.

호주에서는 11월 11일을 영령기념일(Rememberance Day)로 부른다. 영연방인 영국를 비롯해 캐나다,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도 이날 1~2분 동안 묵념을 하는 문화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이날 행사에선 개양귀비가 사용된다. 개양귀비 조화가 거리, 묘지 등에서 많이 등장한다. 폴란드에겐 러시아, 프러시아(독일), 오스트리아로부터 123년 동안 분할됐다 국가 지위를 회복한 날(독립기념일)로 국가 기념일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까지 열린다. 앙골라도 독립기념일로 이 날을 기념한다.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는 이날 양귀비꽃을 가슴에 달아 ‘포피 데이’라고도 한다. 1차 대전 당시 격전지를 찾은 존 매크레이 대령이 전쟁터에 피어난 양귀비꽃을 보고 ‘플랜더스 전장에서’라는 시를 쓴 후 캐나다와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양귀비를 전몰 용사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11월 11일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대한민국의 재향군인의 날은 10월 8일이다. 1954년 10월 8일, 6·25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대한민국 재향군인회가 설립돼 이날을 재향군인의 날로 지정하고 매년 기념하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경험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군인들이 전쟁 후에도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뜻을 모아 재향군인회를 설립한 것에서 비롯한다. 모든 재향 군인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날이다.

우리나라의 11월 11일은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이다. 6·25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날이다. 우리에게 전쟁이 남긴 상처를 돌아보고 그 속에서 배운 교훈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공유한다.

유엔군 참전용사의 평화를 향한 기억의 발걸음이 시작되는 곳인 부산에 유엔기념공원이 설치됐다. 매년 참혹한 전쟁을 기억하고 참전용사에게 감사하기로 다짐하는 날로 ‘턴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으로 불린다. 이는 2007년부터 11월11일 오전 11시(한국시간)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한 21개국 6·25 참전국 현지에서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1분간 묵념하고 추모하는 행사를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현호 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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