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글로벌 경쟁가도 놓인 ‘맛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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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요리 경연 예능 '흑백요리사'의 인기 파급효과가 계속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향한 인간의 교환 본능을 인정한다면 그것이 관련 산업과 무역의 폭과 깊이를 더욱 확장했을 것이라는 점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생산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 효용 중심의 새로운 산업분류체계를 상상하면 농업이 '맛 산업'으로 그 명칭이 바뀐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맛 산업이라고 하면 국민소득이 높은 선진국 산업이고 미래 전략 산업이라는 점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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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식품기업 다수 보유
수출경쟁력 덕 식량안보 강화
수요자 중심 시장재편 물결속
1·2·3차 산업분류체계 무의미
식품이 농업 경쟁력 끌어올려
넷플릭스 요리 경연 예능 ‘흑백요리사’의 인기 파급효과가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인간 본성에 깊이 뿌리박힌 진화의 알고리즘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물 가운데 인간이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는 가설이 맞다면 말이다. ‘음식이 바꾼 인류 250만년사’를 쓴 일본의 신타니 다카후미는 “인간의 맛있는 음식 추구가 문명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맛있는 음식을 향한 인간의 교환 본능을 인정한다면 그것이 관련 산업과 무역의 폭과 깊이를 더욱 확장했을 것이라는 점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연도별 순위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주요 농산물 수출국으로는 미국·네덜란드·독일·브라질·프랑스·중국·스페인·캐나다·벨기에·이탈리아 등이 꼽힌다. 대부분 선진국인 데다 음식이라면 일가견을 자랑하는 나라들이다. 수출 경쟁력이 있는 농업이라는 ‘후방산업(upstream)’이 맛있는 음식과 관련한 ‘전방산업(downstream)’을 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올해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식품 생산’으로 이름을 올린 기업은 9개사다. 이들 기업의 본사가 소재하는 국가를 보면 미국 4곳, 싱가포르 2곳, 브라질 1곳, 네덜란드 1곳, 중국 1곳이다. ‘식품 서비스’로 리스트에 올라간 기업은 2개사로 미국 1곳, 영국 1곳이다. 3개사가 들어간 ‘식품 소비자 제품’에서는 미국 2곳, 스위스 1곳이다. 18개사에 이르는 ‘식품과 의약품 유통 매장’ 분야로 눈을 돌리면 미국 3곳, 일본 2곳, 영국 2곳, 호주 2곳, 스위스 2곳, 네덜란드 1곳, 프랑스 1곳, 캐나다 1곳, 러시아 1곳, 브라질 1곳, 스페인 1곳, 포르투갈 1곳이다. 포천 글로벌 500에 들어간 식품 관련 기업은 거의 선진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글로벌 기업이 창출하는 식품 전방산업이 농업이라는 후방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해석 또한 가능하다.
올해 포천 글로벌 500 리스트에 포함된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기아, 한국전력, LG전자, 포스코 홀딩스, KB금융그룹, HD현대, 현대모비스, LG화학, 한화, GS칼텍스, 한국가스, 삼성C&T 등 15개사다. 지난해 481위였던 한국의 유일한 식품 관련 기업 CJ는 500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언제쯤 한국에 본사를 두고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맛 비즈니스’로 농업의 전방산업을 개척하고 확장하는 글로벌 기업이 속속 탄생할 수 있을까.
통계적 목적을 제외하면 1차·2차·3차라는 기존의 산업분류체계는 이미 수명을 다한 느낌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이 모든 산업의 경계를 다 무너뜨리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생산자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중심, 효용 중심의 새로운 산업분류체계를 상상하면 농업이 ‘맛 산업’으로 그 명칭이 바뀐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맛 산업이라고 하면 국민소득이 높은 선진국 산업이고 미래 전략 산업이라는 점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식량안보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안보는 안에서 지키는 능력과 밖으로 나가는 능력이 같이 갈 때 강해진다. 자급력을 통한 ‘방어’와 수출력을 통한 ‘공격’이 동시에 요구되는 이유다. 능력은 의지와 결합할 때 빛을 발한다. 한국이 농업을 넘어 ‘맛 산업’을 국가의 미래 전략 산업으로 키울 의지가 있다면 농업정책과 거버넌스(governance)에 일대 혁명이 불가피하다.
안현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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