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와 반대... 계급에 집착해 벌어지지 못한 '춤판' [K컬처 탐구생활]
Mnet '스테이지 파이터'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춤을 추면 눈물이 난다. 끔찍한 자기 연민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가장 지쳐 있을 때만 춤을 춘다. 눈물이 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결과였다. '춤과 노동은 그 동작이 정반대'라는 무용가 안은미의 말처럼, 사람들은 고된 노동을 잊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흔든다.
그러나 춤을 추는 것이 직업인 무용수들에게 춤은 어쩔 수 없이 경쟁일 것이다. 그들에게 춤이란 콘테스트와 같은 통과 의례이자, 실력을 입증하는 삶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현실을 가장 영리하게 이용한 것은 Mnet의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제작진이었다. 발레, 현대무용, 힙합 등 모든 장르의 댄서들이 한데 모여 자신의 춤 실력을 겨뤘던 '댄싱9'(2013)은 국내 최초의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고, 순수 무용에 비해 계보가 약했던 스트리트(거리) 댄스를 주목해 출연자들을 일약 스타로 만든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신드롬급 인기로 예능 역사에 족적을 남겼다. 경쟁을 잊기 위해 춤을 추는 평범한 사람들 즉 시청자는 '춤으로 경쟁하는 세계'를 만나며 그 새로움에 열광했다.
'스우파' 이후의 흥행 부진
흥행 프로그램을 시즌제로 제작하는 Mnet의 특기에 따라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스트릿 걸 파이터'와 '스트릿 맨 파이터' 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후속 작품들은 새로운 출연자들의 다양한 개성에도 불구하고 '스트릿 우먼 파이터'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방송 중인 '스테이지 파이터'엔부진의 원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테이지 파이터'는 발레, 한국·현대 무용 등을 전공한 남성 무용수들이 댄스 영화 촬영, 단체 공연 등을 치르며 경쟁하는 무용 서바이벌이다. 미션의 형식, 진행 방식에서 '스트리트 댄스 파이터' 시리즈를 따르고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판이하게 다르다. 피라미드형 계급도에 따라 출연자들을 서열화하고, 순위로 도전자를 방출하고 최후의 1인을 남기는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무용수들의 잔혹한 계급전쟁'이란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 '스테이지 파이터'는 무용수들을 철저히 계급화한다. 체력과 테크닉 테스트를 통해 각 장르의 무용수들은 '퍼스트', '세컨드', '언더'라는 계급으로 분류된다. 제작진은 단계별 미션을 통해 계급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혹독해지는 미션은 무용수의 개성을 살리기보다 무대와 공연의 완성도에 치중돼 그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무대마다 '군무', '조역', '주역'으로 계급이 다시 분화되고, 같은 주역 계급 내에서도 '단독 주연'을 가리기까지 하니 계급에 얽매여 무용수들은 제대로 된 춤판 한번 벌이지 못하는 형국이다.
계급 집착의 그늘
'스테이지 파이터'와 비슷한 시기 공개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역시 '요리 계급 전쟁'이라는 부제를 달고 '흑수저'와 '백수저'의 대항전으로 진행됐다. '흑백요리사'가 시청자를 본격적으로 끌어들인 순간은 심사위원인 백종원과 안성재가 안대를 착용하고 오직 맛으로만 음식을 평가할 때였다. 이 방식은 역전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제작진이 구성한 계급의 장벽을 무너트렸다. 회를 거듭할수록 계급을 나누는 것에 집착하는 '스테이지 파이터'와는 확연히 다른 전개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댄서들은 서바이벌이라는 포맷을 뒤엎고 '한 팀'이 되는 서사를 만들었다. 싸우지 않아도 되고, 경쟁하지 않아도 괜찮은 춤이라는 자유의 언어는 그것을 가능케 했고, 시청자들은 감동했다. 생존, 계급 같은 구도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은 이제 많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춤에서 경쟁의 유희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되짚으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려야 했는지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복길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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