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국제공항 안 하나, 못 하나…연구용역 vs 민심 ‘동상이몽’ [오상도의 경기유랑]
화성·평택·이천 여론 주시…지자체·주민 모두 ‘글쎄요’ 갸우뚱
공론화위·숙의공론조사 진행…군 공항 이전 제외한 건설 논의
김동연 지사, 경기국제공항 공약…“비용대비편익 지수 1.0 이상”
道 내년 2~10월 후속 연구용역…본격적 유치 공모 진행 예정
국토부 ‘제7차 공항개발종합계획(2026~2030)’ 반영이 목표
“화성습지의 생태 가치와 매향리 주민의 역사적 아픔은 잊혔는지요. 수원에 지역구를 둔 중진 국회의원은 국방부를 향한 갑질을 멈춰야 합니다.”
4년 전 마주한 홍진선 당시 수원전투비행장 화성 이전 반대 범시민대책위원장은 잔뜩 상기돼 있었다.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중진 국회의원이 나서 국방부 장관에게 “경기 화성시장을 고발 안 하냐”고 물은 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규정에도 없는 갈등관리협의체 회의에 화성시장이 참석하지 않은 것을 두고 ‘도망가 버렸다’고 비하하며 사실을 왜곡했다”는 주장이었다. 해당 국회의원은 이후 국회의장에 취임했고, 다른 수원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군 공항 이전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해 화성 서부 지역민들의 반발을 샀다.
홍 위원장은 “이곳 사람들은 54년간 매향리가 미 공군 폭격장으로 사용되면서 큰 고통을 겪었다”면서 “주민들이 투쟁해 매향리 사격장을 2005년 겨우 폐쇄했는데, 다시 전투비행장이 옮겨 온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며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철새도래지인 화성습지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공항이 들어서면 안 된다고 했다.
‘님비(지역이기주의) 아니냐’는 세간의 시선에 대해선 억울함을 내비쳤다. “만약 화성시가 전투비행장을 사람이 적게 사는 (수원) 광교산으로 이전하자고 하면 수원시민의 입장은 어떨지 궁금하다”며 수원시의 일방통행식 밀어붙이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간이 흘러 홍 위원장은 위원장직에서 물러났고 수원 군 공항의 화성 화옹지구 이전도 유야무야 되는 분위기로 흘렀다. 주민 반발로 후속 절차를 밟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사이 취임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민선 8기 핵심사업으로 경기국제공항을 끄집어냈다.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을 거치며 지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재준 수원시장 역시 군 공항 이전을 포함한 경기국제공항 건설을 공론화위원회에 제안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수원시가 목소리를 높인 경기남부 통합 국제공항 신설은 화성시와 군 공항 이전 갈등을 재연시키는 듯 보였다. 3000여명이 참여하는 국제공항 유치 숙의공론조사도 동시에 진행됐다. 중재에 나선 경기도는 결국 군 공항 이전 논의를 제외한 경기국제공항 건설만 내세워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지난 8일 경기도가 경기국제공항 건설 후보지로 화성시 화성호 간척지와 평택시 서탄면, 이천시 모가면의 3곳을 압축해 발표하면서 후폭풍이 불고 있다. 지역 갈등 해소를 위해 후보지 선정 작업을 공론화하고 연구용역을 거쳤지만 화성지역을 중심으로 벌써 반발 여론이 일고 있다. 과거 매향리 미 공군 사격장과 수원 군 공항 이전 문제로 속앓이를 해온 화성지역 주민들은 “또다시 화성에 비행장을 지으려는 꼼수”라며 반대 투쟁을 예고했다.
‘경기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비전 및 추진방안 수립 연구용역’에선 항공기 활동을 보장하는 공역과 소음 외에 지형도면, 현장 확인 등을 거쳐 5개 도시, 10개 지역이 1차 후보군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입지 적합성, 권역별 균형, 경제성 등을 따져 3개 후보지로 압축됐다. 도 관계자는 “3개 후보지 모두 부지 면적 270만㎡, 활주로 3200m 1개를 기준으로 경제성을 나타내는 비용 대비 편익(B/C) 지수가 1.0 이상이었다”고 설명했다.
도는 내년 2~10월 후속 연구용역을 진행한 뒤 본격적인 유치 공모에 나설 예정이다. 내년 말까지 국토교통부의 ‘제7차 공항개발종합계획(2026~2030)’에 사업을 반영시킨다는 방침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수원전투비행장 화성 이전 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이달 12일 도청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기로 했다. 논란을 빚어온 화성 화옹지구를 다시 포함한 건 수원 군 공항 이전을 위한 꼼수라는 주장이다. 범대위 관계자는 “화성 북동부지역은 이미 수원·평택 군 공항으로 인해 피해를 입어왔다”며 “모든 종류의 공항 건설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화성시 역시 소음 피해 가중, 고도 제한 등을 이유로 서부권역 경기국제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평택시와 이천시 역시 고도 제한에 따른 개발 억제와 소음 등의 문제로 반발이 예상된다. 평택의 경우 주한미군기지가 있어 구도심 지역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 전체의 38%가 군사기지법에 따른 비행안전구역으로 묶여 있는데 팽성읍, 서탄면 등은 90% 넘는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평택의 비행안전구역에선 건축물 높이가 45m(15층)를 넘을 수 없어 복합개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제공항 건설은 도심 노후화로 재개발을 추진 중인 평택시 입장에서도 달가울 리 없는 제안이다.
이천시는 서울이나 수도권 반도체 생산기지와 가깝고 인구밀도가 낮다는 이유로 후보지에 선정됐으나 소음 문제 등 기피시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만, 해당 도시들은 추후 지역 개발과 연계해 손익을 따질 것으로 보여 변수가 남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 관계자는 “지역민의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인센티브 지원안과 소음·고도제한 등 주민 우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 토론회를 열어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도는 용역 결과 발표에서 2035년 공항 개항 기준으로 30년 후인 2065년 여객 1755만명, 화물 35만t 이상으로 충분한 항공 수요가 예측됐다고 주장했다. 뉴욕, 런던 등 세계 주요 대도시권처럼 3개 이상 공항을 운영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공항 인근 경제자유구역 지정, 첨단전략산업 거점 구축, 배후지 국제업무지구·연구단지 조성 등의 청사진도 내놨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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