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官 개발, 분양에 목맨 민간 도시 개발서 벗어나야”

신수지 기자 2024. 11. 1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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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디벨로퍼 ‘모리빌딩’ 최초 한국인 직원, 박희윤 HDC현산 본부장
서울 용산에 있는 HDC현대산업개발 사무실에서 박희윤 본부장이 본지와 인터뷰하는 모습. 롯폰기 힐스를 만든 일본 디벨로퍼 ‘모리빌딩’에 한국인 최초로 입사했던 그는 한국지사장을 거쳐 2018년 HDC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최근 착공한 광운대역세권 등 서울 도심 개발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일본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복합상업단지 ‘롯폰기 힐스’는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로 활력을 잃어가던 도쿄를 다시 글로벌 도시로 발돋움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기업과 5성급 호텔, 쇼핑몰, 미술관 등이 집결된 롯폰기 힐스는 2003년 개장 이후 연간 4000만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주상복합 ‘메세나폴리스’는 ‘롯폰기 힐스’를 모델로 2012년 준공됐지만, 개장 초반 미분양과 공실로 몸살을 앓았다. 인근 홍대 상권에 밀리면서 개장 1년이 지나도록 입점률이 60% 수준에 그쳤다. 롯폰기 힐스를 개발한 모리빌딩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입사해 당시 한국지사장이던 박희윤 HDC현대산업개발 개발본부장(전무)이 이듬해 메세나폴리스 구원투수로 나섰다. 박 본부장은 지역과의 연계성을 높이는 ‘타운 매니지먼트’를 도입해 상권 살리기에 집중했다. 연중 다양한 문화 행사를 중앙 광장에서 열면서 지역 방문객들이 몰렸고, 다양한 유명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데 성공했다. 모리빌딩이 운영을 맡은 지 1년 뒤 메세나폴리스 입점률은 95%에 달했고, 매출은 140% 늘었다.

박 본부장은 “한국은 시장을 잘 알지 못하는 공공이 주로 개발을 계획하고, 민간은 건물을 지어 높은 가격에 분양하는 데만 몰두해 대형 도시 개발 사업이 번번이 실패하거나 반쪽짜리로 남는 것”이라며 “지역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복합 개발의 밑그림을 가진 전문성 있는 민간이 운영까지 지속해야 한국판 롯폰기 힐스가 탄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은행원 접고 日 유학… 디벨로퍼 꿈 이뤄

경남 마산 출신인 박 본부장은 고향집이 있던 신마산(월영동)을 비롯한 원도심이 쇠퇴하는 것을 보며 도시를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디벨로퍼라는 직업은 생소했고,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대학 졸업 후엔 은행원의 길을 택했다. 5년간 은행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했지만 ‘도시 전문가’라는 꿈을 버리지는 못했다. 박 본부장은 “첫 해외 출장을 일본 규슈로 갔는데 나가사키, 구마모토 같은 지방 도시 개발 수준이 뛰어나 놀랐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도시 재생’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고, 무모하지만 서른에 회사를 그만두고 한양대 도시대학원에 진학해 석사를 마치고 일본 유학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와세다대에서 도시·지역 재생을 연구하면서 인구 10만 이상 지방 도시를 전부 둘러봤다. 박 본부장은 “공공이 주도한 도시재생사업은 대부분 처절하게 망했고, 민간 디벨로퍼가 주체가 된 지역은 성공했다”며 “롯폰기 힐스와 마루노우치 재개발 등 민간 주도의 개발 사업이 잇따라 성공하는 것을 보며 디벨로퍼의 길을 가야겠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마침 모리빌딩이 한국 신도림역세권개발(디큐브시티) 사업 컨설팅을 맡게 되면서 2006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모리빌딩에 수석컨설턴트로 스카우트됐다. 이후 삼성동 파르나스몰, 서교동 메세나폴리스, 종로 그랑서울 등을 컨설팅했다. 박 본부장은 “복합 개발을 하려면 명확한 콘셉트를 잡고 기획부터 설계, 테넌트(임차인 유치), 운영까지 해야 한다”며 “한국은 네 박자가 갖춰진 회사가 없어 컨설팅을 통해 개발의 밑그림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원’으로 ‘힐스’ 같은 도시 모델 만들 것

HDC현대산업개발과는 용산역 아이파크몰 리뉴얼과 정선 리조트 파크로쉬 컨설팅을 맡으며 인연을 맺었다. 2018년 광운대역세권 부지를 사들인 정몽규 회장이 본격적인 디벨로퍼 사업 확장을 위해 직접 박 본부장을 영입했다. 박 본부장은 “서울 내에서 상대적으로 낙후한 동북 지역 전체를 바꾸고자 하는 회사의 의지와 방향이 맞아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첫 삽을 뜬 광운대역세권개발(서울원 아이파크)은 서울 노원구 광운대역 인근 15만6491㎡(약 4만7300평) 부지에 3000가구 규모의 공동주택을 비롯해 오피스와 쇼핑몰, 호텔, 헬스케어 시설까지 복합 개발하는 4조5000억원 규모의 대형 사업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준공 후 본사를 이전하고, 상업 시설과 오피스·호텔도 회사에서 직접 보유·운영할 예정이다. 박 본부장은 “1km 내에 일과 주거, 문화, 휴식 등 삶에 대한 모든 콘텐츠가 포함되는 새로운 도시 모델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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