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m 원통속 ‘빛의 속도’ 양성자… 불량 반도체 ‘콕’

박지민 기자 2024. 11. 1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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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硏 ‘양성자가속기’ 르포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의 양성자가속기. 75m 길이의 원통형 관에서 가속한 양성자를 표적 물질에 충돌시켜 각종 실험을 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난 7일 경북 경주시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 2m가 넘는 방사선 차폐문을 열고 터널 내부로 들어가니 75m에 달하는 기다란 원통형 금속관이 끝없이 이어졌다. 수소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낸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 ‘양성자가속기’다. 양성자를 강력한 전기장으로 가속시킨 뒤 특정 물질에 충돌시켜 물질의 성질을 바꾸거나 새로운 물질을 만든다. 이재상 양성자과학연구단장은 “가속된 양성자를 반도체에 충돌시키면 방사선 노출에 따른 불량, 오류 등 문제를 시험할 수 있다”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이 주 고객”이라고 했다.

원자력연은 2012년 세계에서 세 번째 100MeV(1억 전자볼트) 출력의 양성자가속기를 설치했다. 초당 12억경 개 이상의 양성자를 만들어, 자연 상태에서는 10년 이상 걸리는 방사선 영향 평가를 1년 만에 마칠 수 있다. 양성자가속기는 순수 과학이나 미래 기술만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예컨대 반도체의 경우 지구 자기장을 뚫고 내려온 대기방사선에 의해 ‘소프트 에러’라 불리는 일시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최근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하면서 이 같은 오류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를 양성자가속기 실험을 통해 예측하고 해법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 단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반도체 납품 때 방사선을 견디는 평가가 필수로 자리 잡았다”며 “최근에는 민간 우주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우주 부품 시험 수요도 늘고 있다”고 했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양성자가속기를 이용하려는 기업 간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양성자가속기 이용 경쟁률은 2019년 상반기 1.22대 1에서 올해 상반기 4.17대1로 올랐다. 이 때문에 원자력연은 올 하반기부터 24시간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설비 확장도 과제다. 반도체 최종 성능 평가 때는 최소 200MeV 출력에서 견뎌야 한다. 현재는 100MeV인 경주 가속기에서 시험한 뒤 영국이나 캐나다 등 해외에서 최종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이 단장은 “2029년까지 가속기 길이를 60m 늘려 200MeV급으로 성능을 향상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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