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수혜국이 기쁘지 않은 이유 [사이공모닝]

이미지 기자 2024. 11. 1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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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두 얼굴의 베트남-뜻 밖의 기회와 낯선 위험의 비즈니스>라는 책도 썼지요.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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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최대의 산업용 부동산 개발업체인 WHA 에는 최근 중국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60%까지 높이겠다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작되기 전에 중국에서 탈출하려는 기업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 기업이 태국과 베트남에서 운영하는 1만2000㏊ 규모의 산업단지에 공장 자리가 있느냐는 문의이지요. WHA는 쏟아지는 문의에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을 충원했습니다.

동남아 지역에서 산업 단지를 운영하는 태국 아마타 그룹에 따르면 올해 문을 연 90개 공장 중 60여개는 중국에서 이전해 온 기업들이었습니다. 베트남 언론 뚜오이쩨는 “중국의 희생으로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 국가들이 수혜를 입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LS일렉트릭 베트남 박닌공장에서 엔지니어들이 전력기기를 조립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스스로를 관세 맨 (tariff man)이라 부르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면서 중국에서 이삿짐 싸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기업들이 인근 동남아 국가로 옮기면서 베트남 같은 동남아 국가들은 ‘미중 무역 갈등의 수혜국’으로 불리고 있지요. 수혜를 입는다는 건 좋은 뜻인데, 베트남에서는 이런 수혜를 마냥 반기진 않는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사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까지만 해도 베트남은 미국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의 수혜국이었던 게 확실합니다. 당시에도 많은 기업이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전했었죠.

하지만 문제는 달라진 베트남과 미국의 상황입니다. 2021년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미국은 베트남의 최대 수출 시장이 됐습니다. 올해 1~10월 베트남의 대미 무역 흑자는 861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9%나 증가했습니다. 중국·유럽연합(EU)·멕시코에 이어 4번째로 큰 규모이지요. 초강력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을 대상으로 돈만 벌어가는 것을 두고 볼 리 없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베트남은 중국의 수출 우회국으로 불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이 중국 상품의 수출 우회국으로 평가받을 경우 베트남에 대한 관세 인상이나 무역 제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우려이지요. 하지만 중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에서 베트남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미국 선거 개표 방송을 보는 미국인들.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이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하는 기업인들이 서로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뚜오이쩨

현지 언론 뚜오이쩨에 따르면 다국적 로펌 베이커 맥켄지의 베트남 사무소 선임 고문인 프레드 버크 역시 “베트남이 중국의 수출 중개인으로 평가받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데보라 엘름스 힌리히재단 무역 정책 책임자는 “아세안 국가가 직면한 위기는 1기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2기 행정부에서 더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관세’를 무기로 이익을 본 경험이 축적되면서 이를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 여기게 됐을 거란 해석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 대선 전에는 베트남 관료들이 트럼프보다 카멀라 해리스의 당선을 바라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 오기도 했습니다. 탈중국의 수혜를 입은 베트남이 중국과 함께 관세 폭탄을 맞을까 걱정하는 거죠.

◇베트남 관세 문제, 한국에도 영향

작년 미국과 베트남은 양국의 관계를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습니다.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협력을 공고히 하기로 했지요. 베트남은 한발 더 나아가 무역 지위를 현재의 ‘비시장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바꿔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무역 지위가 격상돼야 징벌적 반덤핑 관세를 낮출 수 있거든요.

하지만 미국 상무부는 올해 8월 베트남의 무역 지위를 ‘비시장 경제’(NME)로 유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베트남산 수입품에 대한 반덤핑 관세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미국이 비시장 경제로 분류하는 국가는 베트남과 중국, 러시아, 북한 등 12개국입니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이 중국산 제품의 원산지 세탁에 이용될수록 무역 지위가 격상될 가능성이 작아진다고 보고 있지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며칠 앞둔 지난 2019년 2월 24일 베트남 하노이 시내의 한 상점에서 김정은과 트럼프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 티셔츠를 본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종찬 기자

베트남은 트럼프 당선인과 인연이 깊은 나라입니다.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대선 중이었던 9월엔 트럼프 재단이 베트남 북부 흥옌 성에 2조원 규모의 초호화 골프 리조트를 짓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지요. 상황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갑자기 베트남에 관세 폭탄을 떨어뜨리진 않을거란 말이지요.

베트남엔 삼성, LG 같은 대기업은 물론, 이들 기업과 관련된 1·2차 납품사들이 대거 진출해있습니다. 삼성이 전 세계에 판매하는 스마트폰의 절반은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지요. ‘메이드 인 베트남’(Made in Vietnam) 문제가 남의 일만이 아닌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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