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양심 미꾸라지

우승순 2024. 11. 1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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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엔 잘못을 저질렀어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양심 미꾸라지가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휴대전화의 단체 대화방에도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가 있고 나아가 운전 미꾸라지, 부동산 미꾸라지, 경제 미꾸라지, 정치 미꾸라지 등 곳곳에 양심 미꾸라지가 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미꾸라지가 되었던 경험이 있고 늘 내 안의 양심 미꾸라지와 갈등을 겪으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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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순 수필가

가을이다. 바다에선 전어가 제철이고 민물에선 미꾸라지가 제맛인 계절이다. 미꾸라지는 좀 특별한 민물고기다. 우선 그 생김새나 행동거지가 우아한 편은 아니다. 왜소하고, 못생겼고, 미끈미끈 잘 빠져나가는 데다 헤엄치는 모습도 방정맞고 흙탕물까지 일으킨다. 그러나 보기와는 다르게 맛과 영양이 뛰어나 미꾸라지 입장에선 잡아먹히기 십상이다. 낚시꾼의 미끼로 애용되는 것을 보면 같은 물고기 사이에서도 미꾸라지의 맛은 일찌감치 소문이 났었던 모양이다.

미꾸라지는 사는 곳도 특이하다. 깨끗한 계곡물보다는 탁한 물에 산다. 입이 작아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고 실같이 가느다란 모기 유충이나 바닥의 개흙을 핥아 유기물을 섭취하며 산다. 자신의 몸뚱어리를 노리는 천적이 많다 보니 필사적으로 흙 속을 파고들다 보면 흙탕물을 튀기는데 그 모습에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주홍 글씨를 안고 산다. 이래저래 팔자가 사나운 물고기다.

미꾸라지는 불리는 이름도 별나다. 살아있을 땐 미꾸라지로 불리지만 죽어서 음식으로 조리되면 별나게 추어가 된다. 메기매운탕, 장어구이, 붕어찜은 변함없이 그 이름 그대로 불리면서 미꾸라지는 엉뚱하게도 추어탕이라 한다. ‘미꾸라지 추(鰍)’ 자를 파자해 보면 ‘물고기 어(魚)’와 ‘가을 추(秋)’의 조합인데 자연산 미꾸라지는 기름이 잘 오른 늦가을이 제맛이긴 하다.

사람들은 미꾸라지를 보양식으로 즐겨 먹으면서 한편으론 폄훼한다. 행동이나 처신이 잽싸고 약삭빠른 사람이거나 자신에게 이롭지 않으면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사람을 미꾸라지에 비유한다. 그러다 보니 ‘미꾸라지 같은 놈’이란 밉상으로 풍자되어 뭇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린다. 사람들의 건강과 맛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미꾸라지 입장에선 섭섭하고 억울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엔 잘못을 저질렀어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양심 미꾸라지가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한때 법망을 잘 빠져나간다고 하여 ‘법 미꾸라지’란 말이 회자되기도 했는데 어디 그뿐인가. 휴대전화의 단체 대화방에도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가 있고 나아가 운전 미꾸라지, 부동산 미꾸라지, 경제 미꾸라지, 정치 미꾸라지 등 곳곳에 양심 미꾸라지가 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미꾸라지가 되었던 경험이 있고 늘 내 안의 양심 미꾸라지와 갈등을 겪으며 산다. 갑남을녀가 미꾸라지일 땐 그 흙탕물이 주변에 그치지만 사회 지도층 위치에서 양심 미꾸라지가 되면 그 여파가 국민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오늘 점심은 구수한 미꾸라지탕을 먹었다. ‘미꾸라지’라는 어감의 여운이 종일 머릿속을 맴돈다. 나로 인해 물이 흐려지는 곳은 없는지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미꾸라지 #흙탕물 #물고기 #민물고기 #생김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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