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찬구의 스포츠 르네상스] 핵심은 관람 경험… 춤추고 노래하는 ‘잠실 노래방’으로 1000만 관중 홈런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2024. 11. 1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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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잘 모르는 MZ와 여성 팬도 콘서트장만큼 즐거워해
연예인처럼 선수 팬덤도… 김도영 유니폼 100억치 팔려
골프·테니스를 반면교사로… 소프트팬, ‘찐팬’으로 바꿔야

2024 프로야구가 기아타이거즈의 통산 12번째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기아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맞대결은 프로야구 초창기 해태와 삼성의 라이벌전을 기억나게 했다. 그러나 경기장의 분위기는 야성이 넘치던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관중석에 중·장년층 남성 팬들이 아니라 MZ세대, 특히 여성 팬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즌 전 발표한 한국갤럽조사에서 20대의 야구에 대한 관심도는 30% 전후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해 6월 인터파크 예매데이터 기준 입장객의 42%가 20대, 39.2%가 여성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프로야구의 고민이었던 고령화와 좁은 타깃의 한계를 극복한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프로야구는 최초로 시즌 1000만 관중을 넘어섰다.

과거의 부침(浮沈)과 비교해봐도 올해의 관중 증가는 흥미롭다. 1995년 540만명이었던 한국 야구의 관객은 1998년 263만명까지 추락하는 등 2000년대 중반까지 250만명 선을 넘지 못했다. 이는 외환 위기와 박찬호, 이종범, 선동열, 이승엽 등 스타의 해외 진출, 그리고 아테네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등의 영향이었다. KBO는 팬을 MLB와 일본 프로야구에 빼앗겼다.

2008년 525만명으로 시작된 부흥은 구대성, 최희섭, 서재응 등 해외 진출 스타들의 귀환과 2006 WBC 4강, 2008 베이징 올림픽 우승에 힘입었다. 집 떠났던 KBO 기존 팬들은 물론 박찬호를 보고 처음 야구팬이 된 이들까지 한국 프로 야구를 다시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각 구단과 선수들의 해외 야구 기술 및 트렌드 도입 노력으로 경기력이 좋아지고 국제 대회를 통해 품질이 입증된 덕을 봤다.

그래픽=송윤혜

2020년대도 감염병, 2020 도쿄 올림픽과 2023 WBC의 참패, 이정후의 미국 진출 등 악재가 많았다. 야구계에서는 리그의 침체를 우려했다. 그러나 2024년 프로야구는 새로운 관람객 기록을 세웠다. 부정적 전망의 요소들은 20년 전과 유사하나 ‘부흥의 비결’이 이번에는 경기력의 향상이 아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첫째 부흥 비결은 두 가지 혁신, 즉 티빙과의 중계권 계약과 로봇 심판 도입이다. 유료화에 대한 반발과 미숙한 제작 역량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OTT 플랫폼인 티빙을 통해 KBO는 고객의 스펙트럼을 넓히며 도달 범위(Coverage)를 확장했다. 로봇 심판(ABS:자동투구판정시스템) 도입은 경기 속도와 공정성을 개선했다. 그라운드의 권력관계가 수평화되었고, 소모적인 언쟁도 없어졌다. 야구의 맛을 그리워하는 올드팬들의 아쉬움도 있으나 짧은 콘텐츠를 선호하고 공정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정서에는 적중했다.

둘째, 소프트팬의 증가다.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 강조하는 상업적 성공의 핵심 요인은 스타디움에서의 팬의 관람 경험(fan experience)이다. 한국 야구장에는 ‘잠실 노래방’이라는 별명과 같이 독특한 응원 문화가 있다. 초심자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야구 규칙을 잘 몰라도 새로 입문한 MZ세대와 여성팬들이 여전히 야구장에서 좋은 경험을 가지고 돌아가는 이유다. 유니폼을 사 입고, 춤추고 노래하며 인스타그램을 하는 장소로서의 야구장은 콘서트장에 비해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다.

셋째, 스토리와 캐릭터를 가진 스타플레이어가 등장했다. MZ팬들은 연예인 팬덤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들을 응원한다. 김도영, 문동주 같은 유망주가 활약했고, 소프트팬 유입의 중요한 계기였던 ‘최강야구’의 황영묵이나 ‘마황’ 황성빈 등 휴먼스토리의 주인공도 있었다. 팬들은 아이돌의 MD 상품을 구매하듯 스타들의 유니폼을 샀다. 김도영의 유니폼은 100억원 이상 팔렸다. “팬들이 연봉을 주나요”라며 논란을 일으켰던 안지만의 사례와 같이 과거 팬에 대한 야구 선수들의 불친절한 태도가 비판받고는 했는데, 지금의 스타들은 팬들과의 교감에 적극적이다. 멀리 있는 아이돌과 달리 야구 선수는 같이 사진도 찍고 사인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낸 리더의 존재다. 과거 기업인, 정치인 등이 비상임으로 맡던 총재직을 야구 산업 전문가인 허구연 총재가 전임으로 맡아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허 총재는 프로야구 콘텐츠와 IP의 가치를 제고하는 데 주력하며, 투명한 소통을 통해 미디어와 시장의 신뢰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야구 발전에 인생을 건 리더가 경험과 인사이트를 가지고 경영해 나가는 모습은 한국 스포츠에도 이제 전문가에 의한 체계적 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득시무태(得時無怠)라고 했다. 첫째 과제는 프로야구의 산업적 가치 제고다. OTT 플랫폼의 성장은 스포츠 산업의 재정 공급원으로서 또 폭발적인 콘텐츠 유통 채널로서 큰 기회다. 여기에 아직 미흡한 수준인 구매, 고객, 경기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 활용하여 인프라를 고도화해야 한다. 대기업이 프로 스포츠 구단을 소유하는 한국만의 독특한 구조는 안정성이 장점이지만, 산업적 성장을 향한 동기 부여가 떨어진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새로운 눈높이 설정과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둘째 과제는 미래 세대 육성이다. 인기가 올라갈 때 유소년의 참여 동기도 상승한다. 프로야구는 자생하는 아마추어 자원의 과실을 큰 투자 없이 취하고 있다. 축구처럼 구단이나 협회 차원에서 전략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 인구 감소에 따라 선수 자원이 부족하다. KBO와 구단이 저변 확대와 육성에 돌입할 적기다.

마지막으로 소프트팬을 야구 소비자로 전환시켜야 한다. MZ세대 소비 문화는 유행과 트렌드에 따라 수시로 변화한다. MZ세대가 몰렸다가 떠나간 골프와 테니스의 사례가 있다. 현재의 흥행을 즐기지만 말고, 그들을 찐야구팬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2020년대 들어 세대, 성별의 벽을 뛰어넘고 지역별로 균형 있게 자리 잡은 야구 붐업은 여러 갈등과 수도권 편중 현상으로 몸살을 앓는 한국 사회에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KBO 주식회사’의 새로운 눈높이와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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