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44] 무지개
무지개
슬몃 자개농짝을 어루만지는 걸 보니
너도 이제 제법 나이를 먹었는가보다
어미가 저 전복 패한테 배운 게 있다
무엇이든 겉만 보고 가름하지 말거라
누구나 무지개는 가슴 안쪽에 둔단다
-이정록(1964-)
어머니의 말씀은 받아 적기만 해도 시가 된다. 어머니의 말씀에는 지혜와 혜안(慧眼)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말씀은 흙과 바다, 산등성이와 골짜기, 시장, 이웃과 친교, 쌓인 세월 속에서 높이 솟은 것이기 때문이다. 자개를 박아서 꾸민 장롱을 눈에 띄지 않게 슬쩍 쓰다듬어 만지는 시인에게 어머니께서 말씀하신다. 전복으로부터 얻은 삶의 슬기를 이르신다. 사람이든 무엇이든 겉모양으로 구분해선 안 될 일이라고. 진면목은 겉에 있지 않고 안쪽에 있다고. 전복이 껍데기의 바깥부분이 아니라 안쪽에 천연의 찬란한 광채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그리하여 껍데기 안쪽의 조각이 화려한 자개가 되는 것처럼. 그렇다면 누구나 가슴 안쪽에 두고 있다는 ‘무지개’는 무엇을 의미할까. 아름다움의 세계, 미래의 시간과 가능성, 선심(善心), 그리고 자존(自尊) 같은 것이 아닐까.
이정록 시인의 시편에는 능란한 말씨와 유머가 돋보이지만 또 동시에 서정의 부드러움과 새뜻한 감각도 빛난다. 일례로 시인은 시 ‘수선화’에서 활짝 핀 수선화를 일러 “태초의 달입니다. 무명 옷고름으로 감싼 달무리 꽃입니다. 자장자장 어둠을 잠재우는 달꽃입니다”라고 미려(美麗)하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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