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돌봄의 조건 [더 보다]

이지은 2024. 11. 1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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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혜숙 / 70세
"어머니가 여기서 햇빛 쬐신다고 이렇게 열고 앉으셔서 1시간씩 햇빛 쬐던 장소예요. 이 의자를 보니까 또 어머니 생각이 나네요."

"엄마는 여기서 15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나가시면서 '내가 여기를 다시는 못 들어오겠구나' 그러는데 너무 그게 계속 생각이 나요."

어머니는 한 달 전 이 집을 떠나 요양원으로 갔습니다.

집 떠나던 그 날에 멈춰버린 어머니 방. 어머니는 살던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딸,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홍혜숙 씨는 22년 째 의류 매장을 운영하며 올해 아흔이 된 노모를 모셨습니다.

<인터뷰> 홍혜숙 / 70세
"집에 어머니가 그렇게 계시니까 어머니 돌보면서 같이 하기에 되게 힘이 많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인터뷰> 홍혜숙 / 70세
"제가 62살에 유방암을 앓았어요."

"주변에서는 '결국 시설에 (어머니를) 모셔야지 더군다나 이제 노년이 된 자식이 못한다'고 했죠. 저는 돌보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질 않고…."

어느새 일흔 줄, 그야말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상황입니다.

그러던 중 공공돌봄 서비스를 알게 됐습니다.

서울사회서비스원(서사원)이었습니다.

서사원은 2019년 서울시에서 설립 운영한 기관으로, 민간 돌봄 기관이 기피하는 최중증 장애인과 같은 취약계층에게 돌봄 서비스를 직접 제공해왔습니다.

이 서사원을 통해 큰 도움을 받았다는 홍혜숙 씨.

<인터뷰> 홍혜숙 / 70세
"서울시에서 오신 분은 3시간을 6시간 하는 것만큼 다 하고 가요. 병원도 모시고 가고 목욕도 시켜드리고. 토요일, 명절 그 시간을 다 해주시는 거예요. 자기가 힘들어도 쉬고 싶더라도 그거 다 참고 해주셨어요."

그런데, 이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병세가 악화돼 잠시 병원에 입원했다 돌아온 사이, 서사원이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은 겁니다.

<인터뷰> 김지영(가명) / 중증 장애 아동 보호자
"14살 된 이제 자폐 아동을 키우고 있는 엄마고요. 아이가 워낙 전체적인 오감이나 행동에 대한 예민함이 높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그런 생활 자체를 되게 힘들어하고 옆에서 도와주시는 활동 보조 선생님이나 도움반 선생님 또는 담임 선생님한테 공격성이나 부정적인 행동이 더 나타나는 것 같아요."

중증 발달장애를 안고 있는 딸. 한 달 90시간 학교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학교 돌봄이란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학교에서 장애 학생의 학습 등을 돕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2020년부터 4년간 서사원 활동지원사로부터 돌봄 서비스를 받을 땐 아이가 호전되는 게 보였습니다.

<인터뷰> 김지영(가명) / 중증 장애 아동 보호자
"아이 심리 봐주고 코칭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따로 아이에 대한 자폐 교육을 따로 받으시고 그러니까 아이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셨던 부분이 컸고 달랐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정말 오히려 끝나갈 때쯤에는 이 선생님하고의 아이하고의 애정이 높았었거든요."

이렇듯 이용자들이 서사원 돌봄에 만족할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인터뷰> 홍혜숙 / 70세
"반 공무원이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의식이 다르고 또 교육이라는 게 있잖아요. 민간은 실습도 형식적 모든 게 다 형식적이에요. 그냥 와서 밥 차려주고 방 한번 청소기 돌리고…."

민간 돌봄 종사자는 2년마다 8시간의 의무 교육을 받지만, 서사원 종사자는 방문 서비스 시간 외에 수시로 교육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교육 내용 역시 민간 종사자는 직업 윤리 등 공통 교육인 반면 서사원 종사자는 이용자 사례 연구로 맞춤형 돌봄이 가능했습니다.

서사원은 이런 교육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인터뷰>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
"민간 센터들은 전부 다 시급제거든요. 그리고 전국의 사회서비스원이 대구에도 있고 광주에도 있고 있지만 서사원이 유일하게 월급제였어요. 서사원은 '월급제를 통해서 고용 안정을 꾀하겠다', '그리고 다양한 수당이나 이런 제도들을 복지 제도를 만들어서 다른 노동자들처럼 복지가 있는 노동 현장을 만들겠다' 이런 취지가 있었고…."

계약직으로 시급을 받는 민간 종사자는 많은 이용자를 돌볼수록 돈이 됩니다.

반면, 서사원 종사자는 정규직 월급제여서 이용자 수 보다 서비스 질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서사원 종사자의 월 소득은 대략 233만원, 145만 원인 민간보다 60%가량 높습니다.

홍혜숙 씨는 서사원 폐지로 다시 민간 돌봄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한 달 사이 무려 요양보호사 4명이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홍혜숙 / 70세
"할머니들은 아직도 그 목욕을 하고 싶어 하세요. 그러면 '우리는 목욕을 못 시키게 돼 있다', '내가 때밀이냐' 할머니한테 대놓고 '못하겠다' 이그러니까 민간센터를 제가 만약에 한다 하면은 한 서너 명은 거쳐야 되겠구나. 그러는 동안에 뭐 한 달 두 달 막 흘러가요. 그럴 동안에 제가 이제 너무 지치고 힘든 거죠."

홍혜숙 씨는 이런 사정으로 결국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2년 서사원은 이용자와 보호자 500명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종합 만족도는 92.3점으로 나타났고 재이용 의향이 96.8점, 추천 의향은 97.7점으로 두루 높았습니다.

그런데 왜 서사원은 지난 7월 문을 닫았던 걸까?

<인터뷰> 고광현 / 서울시 복지정책과장
"서사원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사회 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돌봄 공백도 해소한다는 목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5년간의 결과를 보면 돌봄 공백을 해소하지 못했고 민간의 수준도 견인하지 못했다는 결과를 발생시켰습니다."

"중증 이용자들, 1~3등급 요양 이용자 비중 서비스가 36%로 민간의 한 46.7%에 비해서 한 10% 정도가 낮았습니다."

서사원의 설립 취지인 돌봄 취약 시간대 서비스 실적을 살펴봤더니, 지난 한 해 주말은 전체의 1.61%, 야간은 단 3건에 그쳤습니다.

돌봄 사각지대인 중증 이용자 돌봄 제공 비중도 오히려 민간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사원에서 5년간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한 오대희 씨.

서울시가 서비스의 질적 성과는 외면하고 양적 성과만 평가했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오대희 / 공공운수노조 서사원 지부장
"정성적 평가를 정말 제대로 했었어야 하는데 이렇게 통계적인 수치로만 봐서 저희가 답답한 게 되게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 더 많은 예산과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데 오히려 인력은 더 축소되고 이런 실정에서 장애인 활동지원사 숫자가 마지막에 35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분들을 가지고 24시간을 한다는 것도 이제 앞뒤가 안 맞고…."

지난해 서울시가 서사원의 예산과 인력을 줄인 것도 영향을 줬다고 말합니다.

2022년 350억 넘던 예산은 1년 만에 25% 삭감됐습니다.

인력도 13%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높은 인건비 대비 공공성이 부족하다는 서울시의 판단.

돌봄은 다시 민간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인터뷰> 양난주 /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여기에 일하시는 분들이 점점 고령화되고 그 다음에 신규로 일하시는 분들이 별로 없어요. 그렇게 하다보니까 가급적이면 덜 힘든 분들의 집에 가고 싶어 하세요. 그러면은 정말 중증 장애인이라든지 이런 분들은 일해줄 서비스를 제공할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럼 그런 분들은 어떻게 하나요?"

중증 장애인을 돌봐줄 수 있는지 민간 돌봄 기관에 의뢰해봤습니다.
△△ 민간기관
돌봄 받을 장애 아동이 공격성이 심한가요? 그럴 경우 활동지원사가 돌봄을 못하겠다고 한다면 저희가 강제로 하게 할 수는 없어요.

○○ 민간기관
만약에 지금 시간이 비어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있다면 바로 보내드릴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활동지원사 구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인터뷰> 양난주 /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일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그 일하는 분들에 대한 처우와 보상의 수준을 개선을 계속 안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돌봄 일자리가 진짜 안정적이고 돌봄을 잘 하시는 분들이 좀 직업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실 수 있도록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우리보다 앞서 돌봄 문제를 겪은 독일.

요양보험 혜택을 받은 사람 가운데 10명 중 8명이 집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습니다.

2008년부터 요양보험료율을 올려 꾸준히 돌봄 종사자의 인건비를 인상해 돌봄의 양과 질을 높였습니다.

독일의 돌봄 종사자 임금은 시간당 많게는 19.5 유로, 우리 돈 2만 9천 원 수준입니다.

특히 독일은 전체 방문 요양 기관의 18%가 국공립으로 운영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공립 돌봄 기관 비율은 전체 방문 돌봄 기관의 0.6%.

<인터뷰> 조한진희 / 다른몸들 대표
"시장은 태생 자체가 이윤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어느 정도 이상의 비율로 존재하면서 항상 이 돌봄의 방향이나 표준을 설계하고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홍혜숙 씨는 매주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찾습니다.

모녀는 서로의 안부가 제일 걱정입니다.

어머니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길게만 느껴집니다.

<녹취>홍혜숙 어머니
"한 달 안 됐지? 보름 됐나? 아직도 며칠 안 됐는데 엄청 오래된 거 같아. 나도 오래된 거 같아."

다른 사람 얘기를 빌려 속마음을 내비치는 어머니.

어머니를 계속 집에서 모실 수는 없었을까?

딸은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녹취> 홍혜숙 / 70세
"엄마 힘내고 나도 힘내고 엄마한테 내가 노후에 도움 되는 딸이 되도록 해야지. 걱정하지 말고. 울지 마. 엄마 절대 울지 마. 엄마 나도 엄마가 울면 내가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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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writte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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