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식적 행복 뒷면의 고통을 보라… ‘비정상적 가족사진’의 경고[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비극… 정상성 요구라는 억압 폭로
가족사진은 정상성 집착 상징… 위장된 행복을 거실에 진열
과시 거부하는 사진엔 진실이…
실제로 ‘채식주의자’는 처음부터 남편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인다. 변변찮은 자신을 사회에 잘 적응시켜 살아가는 소시민. 그가 현재의 아내와 결혼한 이유는 꽤 분명하다. 특별한 매력도,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던 그가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그녀와 결혼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이러한 선택에 걸맞게 단조로운 결혼생활이 이어졌으나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니 특별히 권태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육식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른다.
자, 남편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이 지점에서 독자들의 의견이 갈린다. 도대체 남편이 뭔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부터 남편이야말로 문제의 근원이라는 의견까지. 실제로 남편은 부인이 전과 달라지자 “망가진 시계나 가전제품을 버리는 것처럼” 이혼하며, 처가 식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를 비열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최대의 피해자는 나라는 걸 세상 사람들이 다 압니다.”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상성을 수용하고, 또 그러한 정상성을 사회 속에서 연기하는 데 만족할 독자라면 아내보다는 남편에게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친밀성에 대한 열망 혹은 더 깊이 있는 관계에 대한 갈구가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내면에서 솟는 깊은 열망이 좌절되며, 정상성의 요구는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억압이 되니까. 그러나 남편이 원했던 것은 정상성뿐이었다. 남편은 직장 상사와의 회식 자리에서 아내가 정상 부부를 연기하는 데 실패하자 좌절한다. “그녀의 머릿속이, 그 내부가, 까마득히 깊은 함정처럼 느껴졌다.” 많은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가족 관계도 이처럼 소리 없이 망가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고장 난 부분을 드러내는 순간 사회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회사에서 남편 쫓겨나는 꼴 보고 싶어?”
이 사회에서 튕겨 나가지 않으려면 정상인 행세를 해야 한다. 이런 정상성에 대한 집착을 상징하는 것이 가족사진이다. 거실에 흔히 놓여 있는 바로 그 가족사진. 그 사진에는 예외 없이 가족들이 말쑥하게 옷을 차려입고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행복해’라고 말하는 미소를 짓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가까워’라고 말하듯 서로를 밀착시키고 있다. (혹시 사진관에 오다가 싸우지는 않았겠지?) 물론 그 사진만큼이나 행복한 가족도 있을 것이다. 그 이상으로 행복한 가족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 사진을 찍는 행위가 자아내는 특유의 행복감도 존재한다. 그러나 대다수 가족이 그렇다고 보기에는 한국 근현대사가 너무 참혹하다. 어디 한국뿐이랴. 이웃 나라의 예술가 기타노 다케시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것이 바로 가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행복한 가족이라면 모르겠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 가족마저 가족사진을 찍는가. 왜 슬피 우는 대신 “치즈” 하며 입꼬리를 올리는가. 왜 그 가식적인 사진을 거실에 진열하는가. 그것은 정상성을 구매하는 행위가 아닐까.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첫머리에서 행복한 가족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불행하다고 한 것처럼, 가족사진은 모두 비슷하게 정상적이지만 실제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비정상적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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