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귀환, 북미정상회담 ‘시즌2’ 열리나 [정욱식 칼럼]

한겨레 2024. 11. 1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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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각) 미국 47대 대통령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 있는 컨벤션센터에서 승리 선언을 하고 있다. 웨스트팜비치/AP 연합뉴스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했다. 2016년 그의 당선이 미국 정치의 일시적인 ‘일탈’인 줄 알았는데, 그의 재선으로 ‘트럼피즘’이 ‘일상’이 되고 있다는 진단마저 나온다. 트럼프가 선거인단뿐만 아니라 전국 득표율에서도 앞섰고, 공화당이 상원은 물론이고 하원까지 석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트럼프가 귀환하면서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 ‘북미정상회담이 다시 열릴까’이다. 나의 예측은 2025년에는 ‘중간’ 정도이고, 2026년에는 ‘높음’이다. 그럼 성과는? 김정은 정권과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올 공산이 크다.

물론 상반된 예측도 가능하다. 우선 대북정책 자체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와는 달리 2기에서는 대외정책 우선순위라고 보긴 어렵다. 트럼프가 “24시간 내에 끝내겠다”고 장담해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문제가 최우선순위이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중동 분쟁도 마찬가지이다. 미중 전략경쟁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는 전략적 상위순위에 해당된다. 또 한국과 조선(북한)의 엇갈림도 크다. 1기 트럼프 때에는 문재인 정부가 북미정상회담의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섰지만, 윤석열 정부는 대북 강경기조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으면서 정상회담에 임했던 김정은 정권은 대미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2019년이 지나면서 미련을 접고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으로, 외교는 중국·러시아로 삼겠다’는 “새로운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도 북미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트럼프의 의지가 일관되고도 확고하다. 그는 정계 입문을 저울질하던 2010년대 초반부터 북미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고, 2016년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후보측에서 ‘친북주의자’로 몰아붙여도 소신을 꺾지 않았었다. 2024년 대선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7월 중순 공화당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나는 북한 김정은과 잘 지냈다”며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중단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이제 북한은 다시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며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누군가하고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고 “우리가 다시 만나면, 나는 그들과 잘 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한 측근은 “트럼프는 취임과 동시에 ‘아주 좋은 사람’을 대북특사로 지명할 예정이다. 그를 빨리 평양으로 보내 정상회담으로 진전시킬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회담 의지 확고한 트럼프
취임 동시 대북특사 파견할 듯
이르면 내년 회담 성사 가능성
미는 관계개선 통해 중국 견제
‘러·중·북·이란 연대’ 차단 기대
북은 ‘전략적 지위’ 다질 기회로

이러한 트럼프의 소신과 우선순위에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및 미중 전략경쟁 등 다른 대외정책 사이에 엇박자가 일어날 순 있다. 그런데 이들 사안과 대북정책은 ‘연결된 문제’이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복병으로 떠오른 조선의 파병 문제도 시야에 넣을 수밖에 없다. 조선과의 소통 채널이 완전히 막힌 바이든 행정부는 속절없이 우려만 표명했다면,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대북 특사 파견 등을 통해 조선의 파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북미관계 개선이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기여하고, 미국 내에서 초당적으로 나오고 있는 전략적 걱정인 ‘중국-러시아-조선-이란 연대’를 막을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트럼프가 정상회담을 타진해도 김정은이 호응할지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기실 ‘대미 관계 정상화 포기와 대미 장기전 돌입’을 핵심으로 하는 조선의 대전환은 2019년 말부터, 즉 트럼프 1기 중반부터 일어났다. 그리고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러한 조선의 전환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가시적인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트럼프의 재등장은 김정은의 전략적 셈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 예고편은 이미 나오고 있다.

미국 대선과 관련해 현재까지 조선에서 나온 입장은 두 가지다. 하나는 7월 23일 조선중앙통신이 트럼프를 향해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며 “미국은 조미 대결사의 득과 실에 대해 고민해보고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논평한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2018〜2019년에 쌓았던 트럼프와의 개인적인 유대가 북미관계를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이라고 여긴 것에 대한 오판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또 하나는 8월 4일에 나온 김정은의 발언이다. 그는 미국을 향해 “대화도 대결도 우리의 선택으로 될 수 있지만, 우리가 보다 철저히 준비되어있어야 할 것은 대결”이라고 말했다. 대결에 방점이 찍혀 있었지만, 그가 대화를 언급한 것은 2021년 6월 노동당 전원회의 이후 3년 2개월만이다.

이를 놓고 보면, 조선은 트럼프의 당선을 계기로 대외 전략 노선의 재검토에 들어갈 개연성이 존재한다. 먼저 ‘공사 구분’을 강조한 데에는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뜻도 있지만, 공과 사가 얼마나 일치할지 두고 보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조선은 북미정상회담 프로세스가 실패로 돌아간 데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과 존 볼턴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 ‘X맨들’의 농간이 컸다고 본다. 이에 따라 조선은 북미정상회담을 서두르기보다는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팀 구성과 입장을 먼저 지켜볼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1기에 “어른들”, 혹은 “저항세력”이라고 불렸던 비토 세력을 최대한 배제하고 2기에는 ‘충성파’들로 참모진을 구성할 가능성이 확실시된다. 이에 따라 2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내부적 균질성’은 1기보다 강해질 것이다.

회담 의제는
러-우 전쟁, 미·중 전략경쟁 등
미국의 대북정책과 ‘연결된 문제’
‘상호 만족’할만한 합의 도출 위해
북 동의 안할 ‘비핵화 의제’ 대신
군비통제·핵감축에 방점 둘 듯

무엇보다도 조선은 트럼프의 귀환을 자신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 주목할 것이다. 조선의 목표는 최근 부쩍 강조해온 “전략 국가”와 “전략적 균형”, 그리고 “국제질서의 다극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들 세 가지 목표를 아우르는 것이 바로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하는 것이다. 이미 핵무력법 제정과 헌법 개정을 통해 국내적 절차를 마무리한 조선은 외부로부터도 이러한 지위를 확보하려고 한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이미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황이다. 김정은 정권은 이를 지렛대로 삼아 중국의 시진핑 정권에게도 핵보유국 인정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게 바로 최근 북중 관계에 냉기가 흐르고 있는 본질적인 이유이다. 그런데 “핵보유국 지도자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해온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김정은으로서는 또 하나의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고 여길 법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휴전·종식되면 북러 관계도 조정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조선은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볼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은 이를 위한 유력한 카드가 될 수 있다. 2018〜2019년에 김정은과 트럼프가 세 차례 만날 때, 이전엔 한 번도 없었던 김정은-시진핑 정상회담은 다섯 차례나 열렸다. 또 다시 북미정상회담 프로세스가 진행되면 북중관계도 냉기를 털어내고 강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김정은이 트럼프로부터 조선의 제한적인 핵보유를 용인 받는다면, 시진핑을 설득하기도 용이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조선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하면서도 ‘북러 동맹 유지-북중 관계 강화-북미관계 개선’이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략적 지위를 다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선이 2기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북미정상회담에 호응하는 시점은 언제가 될까? 이와 관련해선 조선의 정치 일정도 중요하다. 트럼프가 취임하는 2025년은 조선이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선포한 국가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에 해당된다. 이에 따라 내년에는 5개년 계획의 목표 달성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2026년에 열릴 것으로 보이는 9차 당대회를 계기로 대미 전략의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3차 북미정상회담이 2026년에 열릴 것으로 전망하는 까닭이다. 물론 그 시점이 빨라질 수도 있다. 트럼프가 취임 직후에 대북 특사를 타진하고 조선이 호응해 북미정상회담의 조건과 환경에 공감대를 이룬다면, 내년에도 열릴 수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시즌 1’에선 트럼프는 완전한 비핵화에서, 김정은은 대북 제재 해결에서 ‘조기 수확’을 원했었다. 이에 반해 시즌 2’에선 비핵화와 제재가 최대 의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이 비핵화를 의제로 삼는 협상에 동의할 가능성도 전무하고, 미국 조야에서도 비핵화는 당분간 현실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며 우선 군비통제부터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제재 해결을 갈망했던 조선은 2021년 당대회를 통해 제재를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자고 입장을 바꿨다. 조선에게 재재 해결이 ‘갈망의 대상’에서 ‘불감청고소원’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조선이 대미 협상에서 재제 해결을 먼저 강하게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뜻이다.

그럼 상호 만족할 수 있는 합의는 무엇일까?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온 트럼프는 조선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일 것이다. 관건은 어느 수준까지 목표치를 설정할 것인가에 있다. 가장 낮은 수준의 목표는 조선에게 ICBM 발사 중단을 약속받는 것이고, 가장 높은 수준의 목표는 조선이 보유한 ICBM의 폐기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조선의 수용 가능성이 있지만, 후자는 단기적으로는 없다. 그래서 ICBM 시험 발사 중지 ‘플러스 알파’가 중요해질 수 있다. 여기에는 ICBM 동결, 핵실험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완전 폐쇄, 그리고 영변 핵시설 폐기 등 추가적인 핵무기 생산 중단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는 한미연합훈련과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중단이나 축소, 대북 제재 완화와 북미관계 개선, 한반도 긴장 완화 방안, 심지어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이 논의될 수 있다.

요지는 북미가 비핵화 대신에 군비통제나 핵감축 회담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국내에선 진영을 초월해 ‘최악의 시나리오’나 ‘악몽’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또 윤석열 정부가 북미 접근을 견제하기 위해 ‘비핵화는 한미의 공동의 목표’라는 점을 강조하고 트럼프가 원하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대미 투자 확대 등에 동의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최악은 전쟁이다. 차악은 군비경쟁의 격화와 전쟁 위기 고조이다. 최선이 당분간 불가능하다면, 군비통제라는 차선책에 대한 거부감을 내려놓을 시점이라는 뜻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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