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축구 팬들, 네덜란드 원정 경기 후 피습 사태
“86년 전 ‘수정의 밤’이 유럽에 되돌아왔다.”
7일 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프로축구 경기 중 벌어진 이스라엘 축구팬 집단 폭행 사태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비난하면서 한 말이다. 수정의 밤(Kristallnacht)은 1938년 11월 9일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독일 전역에서 수천 개의 유대인 가게가 약탈당하고, 1400여 개의 유대교 회당(시나고그) 등이 파괴되며 100여 명이 숨진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반(反)유대주의가 독일과 유럽 전역에 확산했고, 유대인 박해와 대량 학살이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스라엘과 네덜란드 정부는 암스테르담 폭행 사태가 유럽 내 광범위한 반유대주의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시작은 훌리건(폭력을 일삼는 축구팬들) 간의 충돌이었다. 7일 밤 네덜란드 축구팀 아약스와 이스라엘의 마카비 텔아비브 간 유로파리그(UEL) 경기가 벌어졌다. 이 경기는 아약스가 압도적 경기력을 보이며 5대0으로 낙승했다. 축구팬을 자극할 만한 판정 시비 등도 없었다. 그러나 경기 내내 이스라엘 축구팬들과 아랍 이민자 출신으로 추정되는 팬들 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스라엘 국기를 펴든 팬들에게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다. 팔레스타인 국기도 여기저기 등장했다. 이스라엘 축구팬들도 아랍어 욕설과 노래로 반격했다. 또 이스라엘 국기를 가로채려는 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직접 팔레스타인 국기를 빼앗기도 했다.
팬들 간의 실랑이는 경기 후 집단 폭력으로 번졌다. 경기장 밖으로 나온 이스라엘 축구팬들에게 수백 명의 군중이 몰려들어 집단 린치(폭행)를 가했다. 네덜란드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복면을 한 괴한들이 스쿠터와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와 이스라엘 축구팬들을 구타했다. 인도로 차량이 올라와 마구잡이로 사람을 치는 일도 벌어졌다. 오후 11시 넘어 시작된 폭력 사태는 새벽녘에야 끝이 났다. 20여 명이 다쳤고, 이 중 다섯 명은 병원에 입원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긴장하고 있다. 이 사태가 과격 축구팬들의 단순 충돌 사태가 아닌, 조직적 반유대주의 폭력이라는 정황 때문이다. 실제로 사태 발생 전 X와 텔레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유대인을 사냥하러 가자” “가자 지구 학살의 복수를 하자” 등의 글이 돌았다. 또 폭력 현장에서 친(親)팔레스타인과 반이스라엘 구호가 난무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60여 명을 체포해 재판에 넘겼고, 3일간 시위금지령을 내렸다. 딕 스호프 네덜란드 총리는 사태 수습을 위해 해외 출장 일정까지 취소하고 긴급 회의를 열었다. 9일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저항 기념비에서 열릴 예정이던 ‘수정의 밤’ 기념식도 폭력 사태가 우려되면서 전격 취소됐다.
이스라엘 정부도 기드온 사르 외교장관을 네덜란드에 급파, 사태 파악에 나섰다. 또 특별기를 투입해 이스라엘 축구팬들을 바로 귀국시켰다. 네타냐후 총리는 8일 밤 동영상 성명을 통해 “유럽 땅에서 그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공격받는 일이 다시 벌어졌다”며 “86년 전 이맘때 벌어진 ‘수정의 밤’의 재연”이라고 했다. 수정의 밤이란 명칭은 밤새 벌어진 폭력으로 독일 거리 곳곳에 깨진 유리 파편들이 널려 있었고, 날이 밝자 반짝거리며 빛을 냈다며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용어에 당시 사태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냉소적 비하가 담겼다고 본다.
이스라엘 정부는 네덜란드 내 아랍계 이민자들과 과격 이슬람 교도를 가해자로 추정하고 있다. 네덜란드 내 아랍계 이민자는 약 20만명에 달한다. 또 그 배후에 이란과 반이스라엘 단체들이 있으며 이들의 선전·선동을 통해 유럽 내 반유대주의가 급격히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수정의 밤 사건 때는 독일 나치당의 준군사조직인 돌격대(SA)와 친위대(SS), 나치청년단(Hitlerjugend) 등이 직접 폭력을 이끌었다. 네타냐후는 “모사드(해외 정보기관) 등에 추가 사태 가능성에 대비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팬들의 행태로 촉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암스테르담 폭력 사태의 원인은 이스라엘인들의 반아랍 구호와 팔레스타인 국기에 대한 공격 때문”이라며 “네덜란드의 팔레스타인·아랍인들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했다. 팔레스타인축구협회도 “마카비 텔아비브 팬들이 반팔레스타인 인종차별, 이슬람 혐오 행태를 보이며 폭력을 유발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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