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리를 죽였다”…홍수가 휩쓴 거리로 나온 스페인 시민들

최혜린 기자 2024. 11. 1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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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 등서 대규모 시위
늑장 재난문자에 피해 커져
시민들 직접 피해 복구 작업
주지사는 비상 회의 지각도
당국의 홍수 늑장·부실 대응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진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주의 한 건물 앞에 9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던진 진흙과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수백명이 숨진 최악의 홍수가 일어난 스페인에서 당국의 부실 대응을 지적하는 대규모 시위가 9일(현지시간) 열렸다.

스페인 매체 엘파이스와 BBC 등에 따르면, 이날 동부 발렌시아주의 주도 발렌시아시에서는 약 13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당신들(정부)이 우리를 죽였다” “책임자는 즉각 사임하라”고 외쳤다. 같은 날 수도 마드리드와 알리칸테 등 인근 도시에서도 정부의 자연재해 대응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지난달 29일 스페인에 내린 폭우는 최근 유럽 지역에서 발생한 최악의 자연재해로 꼽힌다. 특히 발렌시아주에는 약 8시간 동안 1년 치 비가 쏟아지면서 가장 큰 피해가 났다.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 220명 중 212명이 발렌시아주에서 숨졌다.

문제는 발렌시아주 당국의 늑장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점이다. 홍수가 내린 당일 일부 지역은 오후 6시쯤부터 침수가 시작돼 성인 허리 높이까지 빗물이 차올랐지만, 시민들은 오후 8시가 되어서야 재난 문자를 받았다. 기상청이 오전 7시30분쯤부터 최고 단계인 폭우 ‘적색경보’를 내렸는데도 10시간 넘게 대피령이 발령되지 않은 탓에 주민들이 변을 당한 것이다. 중앙 정부의 구조 인력 파견이 늦어지는 사이 시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진흙을 파내며 피해 복구에 나서야 했던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카를로스 마손 발렌시아 주지사의 당일 행적도 시민들의 분노를 키웠다. 마손 주지사는 당일 오후 유명 식당에서 기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고, 이날 소집된 비상회의에는 오후 6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엘파이스는 보도했다.

시위대는 마손 주지사가 부실 대응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마손은 살인자”라고 외치며 시청을 향해 행진했다. 마손 주지사는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그는 중앙 정부가 충분히 경고해주지 않아 피해를 예측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재난 대응 1차 책임은 지방 정부에 있는 데다 닷새 전부터 기상청이 호우 경보를 내렸는데도 주 당국이 아무런 경고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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