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야 끝난 ‘교제폭력’…일주일 새 4명이나 스러졌다

김송이 기자 2024. 11. 10. 21: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수차례 스토킹 끝에…다른 남성 만났다는 이유로 ‘살해’
끊임없는 잔혹범죄 ‘방지 시스템’ 부재…“법 제정 시급”

지난 일주일 사이 교제살인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알려진 것만 4건에 달했다. 살해 동기는 ‘스토킹 고소를 취하해주지 않아서’ ‘다른 남자와 연락해서’ 등이었다. 젠더폭력으로 여성들이 죽어나가는 일이 전국 각지에서 반복되고 있다.

30대 남성 A씨는 지난 8일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경북 구미에서 체포됐다. A씨는 피해자의 어머니에게도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스토킹 가해자로 3차례나 경찰에 신고돼 교정 프로그램까지 이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날 40대 남성 B씨가 서울 강서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3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B씨는 3개월간 알고 지내던 피해자가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얘기를 듣고 홧김에 범행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에는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다음 몰래 버린 남성 장교가 구속됐다. 같은 날 경기 파주의 한 모텔에선 50대 남성이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에 화가 났다며 연인을 살해했다.

이처럼 교제폭력이 빈번히 일어나지만 대책 마련을 위한 현황 파악도, 처벌을 위한 법과 제도도 느슨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은 지난해 처음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폭력이 살인으로 연결된 사건 규모를 파악했다. 그러나 피해자·가해자 성별을 구분해 발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성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훨씬 취약하단 사실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로선 여성이 교제폭력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려면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 보도를 기준으로 집계하는 ‘분노의 게이지’ 통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이 최소 138명이고, 살인미수 등에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311명이라고 집계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이미 호주 등 해외에선 통계를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피해자가 살해당했는지 전수조사하고 있다”며 “정부가 교제폭력을 심각한 문제로 보지 않기 때문에 통계를 내지 않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고 말했다.

교제살인을 억제하려면 ‘교제폭력방지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은의 변호사는 “교제폭력은 가해자가 상대방을 통제하려고 하는 특수성을 가지기 때문에 보복범죄율이 높은 편”이라며 “이런 부분은 단순 폭행치사로 볼 게 아니라 특수성을 고려해 따로 의율하고 피해자를 두껍게 보호할 수 있는 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교제폭력방지법을 통해 교제폭력의 개념과 심각성을 알리는 ‘사회적 선언’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교제폭력방지법은 지난 21대 국회에 여러 법안이 발의됐지만 ‘친밀한 관계를 정의하기 모호하다’ 등의 이유로 별다른 논의 없이 폐기됐다. 허 조사관은 “모호하다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려는 핑계”라며 “미국에선 다른 사람들에게 두 사람이 커플로 인식됐는지 여부 등으로 친밀한 관계를 파악하는 등 여러 해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예방하려면 ‘강압적 통제 행위’를 범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구를 만났는지, 옷차림이 어떤지 사사건건 간섭하는 행위는 지금은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런 것은 강압적 통제 행위의 일환으로서 살인을 예고하는 전조증상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처럼 강압적 통제 행위를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면 피해자가 물리적 폭력이 발생하기 이전에 신고하고 위험 상황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