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트럼프 귀환, 미국의 우경화

최희진 기자 2024. 11. 1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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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했다. 그는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격전을 벌였던 7개 경합주를 싹쓸이하며 백악관 입성에 필요한 수(270명)를 한참 웃도는 312명의 선거인단을 차지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아시아계 여성 대통령 탄생은 무산됐다.

민주당 ‘집토끼’였던 라틴·아랍계 유권자들이 ‘그래도 트럼프보다는 낫다’며 결국 해리스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미 언론의 득표율 분석을 보면 라틴계 인구가 다수인 86개 카운티는 공화당에 13.3%포인트 차 승리를 안겼다. 주민 55%가 아랍계인 경합주 미시간 디어본에선 트럼프(42.48% 득표)가 해리스(36.26%)를 손쉽게 눌렀다. 라틴계는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게 싫었고, 아랍계는 조 바이든 정부의 이스라엘 지원 정책을 심판하길 원했다.

유권자들이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이슈로 꼽았던 경제 문제에서도 민주당은 유리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크게 오른 소비자물가가 정권심판론의 주된 땔감이 됐다. 삶이 힘들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유권자가 많을 때 집권당이 선거에서 이기기는 어렵다. 더욱이 해리스는 바이든 정부의 2인자였기에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공화당이 경제와 이민 의제로 민심을 파고들 때 민주당은 민주주의와 재생산권 이슈를 앞세웠다. 민주당은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고 숨 쉬듯이 거짓말을 하며 인종차별주의자, 여성혐오주의자, 범죄자, 급기야 파시스트라고 비난했다. 트럼프의 언행을 돌아보면 민주당은 맞는 말을 했다. 선거 막판 트럼프 측 찬조 연사가 푸에르토리코를 “쓰레기 섬”이라고 매도해 언론이 들끓었던 것도 트럼프에게 대형 악재가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을 했는지보다 식료품 가격이 더 중요했고, 모든 선거 기사를 다 읽고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그날그날 바꿀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았다. CNN방송의 대선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9월 이전에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는 응답자가 79%였고, 9~10월은 13%, 대선 직전 주는 3%였다. 이번 대선의 승자는 늦어도 두 달 전에 정해진 셈이다.

물론 지난 7월 하순 등판한 해리스에겐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알릴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민주당 일각에서 나온 비판처럼 바이든이 좀 더 일찍 사퇴해 해리스에게 더 많은 시간이 있었다고 해도 당선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 등 자유주의 성향의 미 언론은 민주당이 ‘트럼프를 막아야 한다’는 구호를 되풀이했을 뿐, 더 나은 미래와 변화를 원하는 미국인들에게 감동적인 이상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 대학 학자금 대출 탕감, 무상 보육과 무상 고등교육 등 버락 오바마 및 바이든 정부에서 미완에 그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되레 민주당은 공화당의 공세에 우향우로 대응했다. 한때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반대했던 수압파쇄법(셰일가스 추출 공법의 일종)을 금지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꾼 게 대표적인 예다. 민주당 측 활동가는 대선이 끝난 후 AP통신에 “우리는 트럼프를 상대로 어떻게 유권자를 조직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고백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민 인구가 증가하고 물가가 폭등하면서 유럽에선 일찍이 우익의 득세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탄생은 미국도 우경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지 언론은 흑인(오바마)이 대통령이 됐던 때처럼 진보적 의제로 유권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시절은 지나간 것 같다는 암울한 전망을 하고 있다.

미 자유주의 진영에 그나마 다행스러운 소식이 있다면 2년 후 의회 선거가 실시된다는 점이다. 이번 대선에선 라틴계 미국인이 라틴계 이민자 추방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아랍계가 극우 유대계 미국인과 나란히 트럼프에게 투표했으며, 흑인 남성이 백인 후보에게 표를 줬다. 일견 이해하기 어려워 보여도 미우나 고우나 이 사람들이 바로 민주당이 되찾아야 할 유권자들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텃밭이었던 이들 유권자와 다시 연결되고,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던 인종·성별·계급·지역을 회복할 길을 찾아야 한다.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상·하원 의회까지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2년 뒤 또다시 실패한다면 트럼프 2기 4년은 국제사회에도 힘들고 불편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최희진 국제부장

최희진 국제부장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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