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소수자 위한 정치’가 절실한 급변기
다짜고짜 신경질적인 상담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계속 통화를 이어가야 하나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왜 그리 화가 났는지 물어보고 싶은 궁금함이 그 망설임보다 더 크기 때문에 숨을 고르고 들어본다. 그중에는 발달장애인인 자식을 살해하고 바로 이어 자신도 자살하기로 결심한 후 실행하기 직전 걸어온 전화도 있었다. 굽이굽이 굴곡진 그의 인생사를 들으면서 영문도 모른 채 보호자로부터 살해당할 뻔한 중증 발달장애인 자식 생각에 눈물이 났다. 긴 통화로 그의 잘못된 결심을 간곡히 달랜 후, 얼른 긴급 복지지원 체계를 연결해 비극을 막았다.
며칠 전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의 세월 동안 발생했던 부모의 ‘살해 후 자살’ 사건 102개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가 공개되었다. 부모의 정신질환, 경제적 곤란, 부부 불화가 복합적인 원인이었으며, 목숨을 잃은 아동 중 73.5%가 9세 이하 어린아이였다. 이 아이들이 곧 자신의 목숨이 끊어질 것을 예상했거나 동의했을 리 만무하다. 가장 많은 가해자는 30대에서 40대의 부모였으며, 범행 장소의 75.5%가 가정이었다. 아이는 태어나 가장 오랜 시간 머물던 가정에서 그 일을 겪고 세상을 떠나간 것이다.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해간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에서도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후보들의 정책이 중요 쟁점이었는데, 공약 방향은 서로 달랐다. 트럼프 후보는 경제성장과 시장원리를 통해 저소득층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한 반면, 해리스 후보는 소수자에 대한 포괄적 생활지원 폭을 넓히겠다고 약속하며 권리와 형평성을 강조했다. 앞으로 트럼프 당선자가 이민 노동자, 장애인, 소수인종 등 소수자를 어떻게 대하는 미국을 만들어갈지 세계 여러 나라가 주목하고 있다.
한편, 미 대선 결과가 확정된 다음날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 나섰다. 임기 반환점을 지나는 윤석열 정부가 전반기에 추진해온 노동·연금·교육·의료 개혁에 저출생 대응까지 합친, 이른바 ‘4+1 개혁’을 남은 기간 어떻게 수행할지에 대한 계획이 담화에서 발표되었다. 복지 정책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이 정부가 하려는 복지는 포퓰리즘 복지나 정치 복지가 아니고 ‘약자 복지’라는 것이다. 노인이나 장애인과 같은 약자를 위한 복지를 확대하고 수혜 대상을 늘려갈 것이라는 내용이 짤막하게 담겨 있었다.
쌀쌀해지는 날씨에 연일 굵직굵직한 뉴스가 지나가며 문득 예전 그날 내게 전화를 걸었던 그 발달장애인의 보호자가 생각났다.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던 날 선 무기력함이 지금은 좀 괜찮아졌을까. 그는 무슨 마음으로 이 뉴스들을 보고 있을까.
세상이 급격히 변해도 사회적 자원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 변화나 경제적 충격에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을 받는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 위기나 변화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은 그럴 수 없기에 갑작스러운 사회 변화에 직격탄을 맞고 졸지에 삶의 끝자락까지 내몰리곤 한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제적 논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치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는 단순히 법을 만들거나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실패하여 소수자가 사회안전망에서 벗어나는 경우, 빈곤이나 범죄, 사회 불안 등 더 큰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
집권 후반기를 맞은 이 정부가 세상의 크고 작은 변화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소수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한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어 진취적이고 포용적인 정치를 펼쳐주길 바란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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