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종·동물 억압하는 인간 존재 성찰···‘모든 물질에는 생명이 있고 평등하다’
비판적 에코페미니스트들의 포스트 휴머니즘 담론 형성
‘신유물론’으로 이어지기도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한국여성학회 추계학술대회가 지난 9일 서울대에서 열렸다. 주제는 ‘포스트휴먼 시대, 페미니즘의 물질적 전환’.
이현재 회장(서울시립대 교수)은 “최근 이 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론적 담론이 포스트휴머니즘이고, 페미니즘의 한 흐름인 에코페미니즘이 포스트휴먼 담론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해 온 만큼, 이 시대에 필요한 페미니즘의 통찰을 살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학술대회는 연세대학교 김현미교수가 에코페미니즘의 계보를 설명하며 문을 열었다. 1970년대 중, 후반 이후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을 결합해 페미니즘의 한 분파로 발전한 에코페미니즘은 인간의 자연 지배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지구생명체가 서로의 삶을 공동으로 구성해가는 반려자로 봐야함을 강조한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일찌기 백인 남성 중심의 위계적 사회에서 여성들이 희생돼 온 것이, 인간에 의해 자연이 희생되는 논리와 닮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주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단위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평가 절하했던 동·식물과 무생물 자연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인식을 이미 갖고 있었다. 이같은 생각, 즉 모든 물질에는 생명이 있고, 평등하다라는 것이 신유물론의 핵심으로, 신유물론은 포스트휴먼 담론의 존재론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은 인간 이외의 물질과 생명들의 행위력을 인정하는 포스트 휴먼 담론으로 이어졌다. 현대 페미니즘 철학과 포스트휴먼 논의의 권위자 로지 브라이도티가 1999년 펴 낸 공저 <들뢰즈와 페미니즘 이론>에서 신유물론이란 용어를 처음 썼다고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유엔을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의 원인을 인구의 과잉 때문으로 진단해 왔어요. 그래서 출생률이 높은 남반구 여성들에게 무자비한 재생산 통제를 가해 왔어요. 하지만 에코페미니스트들은 북반구 중심의 약탈적 자본주의와 과잉 소비에서 탄소 배출과 쓰레기가 늘며 기후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간파했고, 환경 파괴로 이익을 얻는 자와 부담을 지는 자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줄기차게 싸워서 기후변화의 원인에 대한 시프트(전환)를 이뤄냅니다.”
김교수는 이제까지 인간의 역사를 구성해 왔던 것이 결국은 여성살해(gynocide), 종족살해(genocide), 생태계 파괴(ecocide)였다며,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은 각각 가부장제, 식민주의, 자본주의·과학 기술만능주의에 대응하는 급진적 정치 기획과 실천으로, 역사적인 경로들을 다 흡수하며 발전해 왔다고 설명했다. 비판적 에코페미니스트들은 다른 인종, 동물을 억압하는 존재로서 여성 인간 자신들이 갖고 있는 특권의 지점을 성찰하며, 인간을 포함해 지구 위에 얽혀있는 모든 존재의 재생산 정의, 환경 정의 운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기조세션 ‘포스트휴먼 시대의 페미니즘과 물질성’ 외에도 △젠더와 인공성 △몸의 물질성과 장애·질병 △기후위기·생태·페미니즘 △동물·여성과 억압의 상상력 △페미니즘 대안 정치와 정책에서의 돌봄 등을 비롯한 10개의 세션이 진행됐다. 300여 명이 참석한 학술대회에는 포스트휴머니즘이 부상하는 담론임을 뒷받침하듯 젊은 남녀 참가자들이 많았다. 학술대회 이후 로지 브라이도티, 우에노 치즈코 등 세계적 석학과 9개국 활동가들의 축하메시지, 짧은 인터뷰를 담은 축하영상 상영, 여성학회 40년 역사 상영, 아프리카 댄스그룹과 함께 하는 축하공연 등이 펼쳐졌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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