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전부가 아니다 [세상읽기]
류영재 |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제주도 통합(환경, 교통, 재해) 영향평가위원회 재해분과 심의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한 아무개씨는 주로 제주도에 설치되는 골프장이 비가 많이 내릴 때 발생할 수 있는 산사태 등을 방지할 안전조치 등을 충실히 갖추어 설계했는지를 심사했다.
아무개씨가 심의위원으로 참여한 재해분과 영향평가 심의에서 지적을 받은 골프장 사업자들은 그 지적을 보완할 수 있는 각종 용역을 아무개씨에게 맡겼다. 그 후 골프장 사업자들은 아무개씨가 수행한 보완 용역 결과를 제출하여 재심사에 합격했는데, 그 재심사에도 아무개씨가 심의위원으로 참석했다. 검찰은 이같이 심의위원이 심의 대상 골프장 사업자들로부터 심의와 관련된 용역을 받은 것을 뇌물로 보아 아무개씨를 수뢰죄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도 이를 뇌물로 인정하여 아무개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아무개씨는 수뢰죄 재판 중에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는데, 쟁점은 ‘자신이 수뢰죄의 공무원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아무개씨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형법상 수뢰죄는 ‘공무원’이 그 직무와 관련된 뇌물을 받았을 때 성립한다. 그런데 아무개씨는 직업 공무원이 아니었고, 다만 생업과는 별도로 제주도 통합 영향평가위원회 재해분과 심의위원으로 위촉되었을 뿐이다. 당시 관련 법령에 영향평가위원회 심의위원을 공무원으로 간주하여 형사처벌 규정을 적용한다는 내용도 없었다. 따라서 아무개씨가 재해분과 영향평가와 관련하여 뇌물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수뢰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헌법재판소는 아무개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정위헌 결정을 했다. 아무개씨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근거로 하여 수뢰죄 판결에 대해 재심 신청을 했는데, 법원은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을 법률의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이 아니라 법률 해석의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에 해당한다고 보아 재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헌법재판소는 법원의 재심 기각 결정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의 충돌은 우리 사회와 법조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논의의 쟁점이 형법상 수뢰죄에서 ‘공무원’의 범위로, 그리고 한정위헌 결정을 둘러싼 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의 충돌로 이전하면서 사라진 것은 사태의 본질과 예방 대책이다. 아무개씨 수뢰죄 사건의 본질은 심판이 심사 과정에 관여했다는 점이다. 심사 과정에 관여한 이상 심사의 공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 심판 자격은 심사 대상자로부터 용역을 수임해 별도의 수입을 챙길 수 있는 ‘꿀 보직’으로 인식될 수 있다.
공무의 염결성과 청렴성이 의심받을 수 있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고, 이를 막기 위한 법 규정이 미비하여 해석이 갈린다면 보완 입법을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예방 대책일 텐데, 형사사법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쟁점이 엉뚱하게 한정위헌 결정의 효력으로 옮겨갔다.
법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헌법재판소의 월권을 비판하고, 헌법재판소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아무개씨가 부당하게 처벌받은 희생자라고 호소한다. 현재 제주도에서 골프장을 건설하는 사업자들이 통합 영향평가위원회 심의위원으로 위촉된 이들에게 심의와 관련된 용역을 맡겨도 된다는 것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사후 점검은 찾아보기 어렵다.
법적 해결이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사회적 논의를 변질시키고 중단시킨 예를 찾아보기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법은 사전에 모든 사태를 예견하고 세세히 만들지 못한다. 사법적 판단은 만들어진 법만을 기준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미처 예견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책임을 논하고, 예방 대책을 세우기에 사법절차만으로는 부족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모든 사안의 본질, 책임, 사후 대책 여부를 모두 사법적 판단, 특히 형사처벌 가부만을 기준으로 하여 논의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앞서 아무개씨의 사안을 예로 들자면, 헌법재판소의 입장에 따라 그가 형법상 수뢰죄의 공무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더라도 그의 뇌물 수수는 다시 일어나선 안 될 일임이 자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받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말 그러한가. 법이 전부일 때, 사회의 선은 그만큼 후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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