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 음모론·거짓정보 또 활개치나…과학계 긴장
네이처 사설 "많은 연구자들이 절망 상태"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지구온난화는 사기"라고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복귀로 과학계에서 '트럼프 2기'의 과학정책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이번에도 과학 불신을 조장하고, 연구 결과를 정치적 이유로 부정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과학 분야 예산을 삭감하는 등 반(反)과학적 행태를 보일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9일(현지시간) '트럼프의 권좌 복귀 경계하는 과학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런 우려를 전했다.
WP는 "트럼프와 과학계는 대체로 '기름과 물 같은 관계'였다"고 설명했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1기 때 정무직 고위인사들이 허리케인 예보, 코로나바이러스, 생식건강, 환경보호 등에 관한 정부 산하 과학연구기관들의 연구 내용에 간섭하거나, 연구를 방해하거나 중단시킨 사례들이 과학분야 감시단체들의 기록에 남아 있다.
1기 때는 정부 관료조직과 헌법이 급작스럽거나 급진적인 정책변화에 제동을 거는 안전판 역할을 어느 정도는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1기 때 임명한 대법관 3명이 수십년 된 확고한 판례들을 뒤집는 데 앞장서 온 점을 감안하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전문가들과 과학자들의 판단을 법관들이 존중하지 않는 사례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트럼프는 행정·입법·사법 등 3권의 전폭적 지지를 확보한 채 2기 임기를 시작할 공산이 크다.
하원을 포함한 입법부도 공화당의 양원 장악이 유력하며 대법원 등 사법부 역시 보수 색채로 완연히 기울어 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과학저널 네이처는 미국 대선 다음날인 6일 사설에서 "용기를 품고 단결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과학계에 당부했다.
네이처는 트럼프 1기에 대해 "세계는 기후변화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등 세계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무시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정부를 목격했다"고 회고했다.
네이처는 "많은 연구자들이 (트럼프 당선에) 절망하고 있다고 네이처에 털어놨다"며 과학연구계가 단결해서 앞으로 다가올 힘든 일들에 굳건히 맞서야 한다고 당부하고 "이는 권력자에게 사실을 얘기하는 일을 이어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네이처는 2020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는 공식 사설로 조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WP는 진보성향 과학단체 '우려하는 과학자들'(UCS)이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과학을 옹호해야 한다며 과학분야 기관장에 자격 미달 인사가 지명될 경우 반대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고 전했다.
일부 유력 단체들은 원론적 입장을 내놓고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는 선거 후 공식 보도자료에서 "미국 선거가 끝나기는 했으나 선거운동 때의 수사(레토릭)가 새 정책에 반영될지 가늠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AAAS는 엄밀한 과학적 증거가 무시되는 경우 우려를 표명하되 모든 선출직 공직자들과 협력해 과학 정보가 제대로 반영된 정책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AAAS가 발행하는 사이언스는 7일 사설에서 과학에 대한 정파적 공격이 심해지고 대중이 대학 등 연구기관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며 "향후 4년간 이런 공격이 계속될 것이고 아마도 더 가속화할 것"이라며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대응을 통해 이런 공격이 성공을 덜 거두도록 하는 일은 과학계에 달렸다"고 당부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과학정책을 이끄는 실세가 누가 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WP는 전했다.
'백신 음모론자'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백악관에서 공중보건과 식품정책 분야를 맡을 것이라는 관측도 널리 회자된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백신 사용이 자폐증 등을 유발한다고 주장해왔다.
플로리다주 의무총감인 조지프 래더포가 연방 보건복지부(HHS) 장관 혹은 미국 공중보건의 최고 책임자인 연방 의무총감에 임명될 수도 있다는 얘기는 선거 전부터 돌고 있다.
래더포는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공개발언을 했다가 미국 식품의약청(FDA)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부터 경고를 받은 전력이 있다.
전기차 회사 테슬라와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엑스를 창업한 일론 머스크가 과학기술정책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럴 경우 유인 우주비행 계획, 군용 및 국가안보 정보수집용 인공위성, 배터리 기술 등에 대한 미국 정부의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머스크는 친 트럼프 성향의 정치자금 모금단체에 1억1천800만 달러(1천650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
limhwas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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