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려되는 폐합성수지 처리 대란
탄소배출, 정확히는 온실가스의 감축이 국제적 이슈가 된 지도 벌써 30년 가까이 지났다. 1997년 교토의정서를 통해 공식화된 탄소배출 절감 의무는 2015년 파리협정을 통해 더 강화되었고,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그 의무를 다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온실가스 배출과 밀접하게 연결된 폐기물의 소각 및 매립 량을 최소화하는 것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위해선 폐기물을 최대한 재활용해야 한다.
폐기물과 재활용자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데이터와 처리과정에서의 투명함이 요구된다. 부정확한 데이터는 잘못된 정책 수립을 가져오고, 불투명한 처리과정은 탄소배출을 증가(불법소각, 불법매립 등) 증가시키는 등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처리의 대부분을 민간기업이 수행하고 있어, 기업 수익성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치밀한 관리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는 이를 위해 규제를 통한 관리와 함께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을 통해 처리 기업들의 수익도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배출량과 처리 및 사용량을 맞추는 것이다. 아무리 정부에서 수익을 지원한다 해도 결국 처리와 재사용량이 배출량보다 적다면(무한히 적재해 놓을 수가 없으니), 앞서 언급한 불법매립, 불법소각 등 탄소배출량 증가와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하는 형태의 결과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2018년에 발생한 아파트 재활용품 수거 대란이나 최근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폐합성수지의 최종처리 문제 등이 가장 가까운 예시들이다.
2018년의 문제는 흔히 아파트 폐지 대란이라고 했지만 본질은 폐합성수지(폐플라스틱) 대란이다. 당시 수익성이 없던 폐합성수지에 대해 유가성이 있는 폐지가 수익의 보조적인 역할을 했는데, 2017년 말 중국에서 발효된 폐기물 수입금지 정책으로 중국으로 수출되던 폐지가 갈 곳을 잃어 가격이 급락하고 재고가 넘쳐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손해를 보며 수거할 수밖에 없었던 수거업체들이 수거 자체를 거부해버리는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최근 나타난 폐합성수지 최종처리 문제는 아직 구체적으로 공론화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이 잘 모르는 문제이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폐합성수지들의 상당수가 시멘트 업체의 소성로 연료로서 처리돼 왔는데, 건설경기 악화로 시멘트 수요가 줄어 공장의 사용량이 감소하고 있다. 시멘트공장이 위치한 지자체에서 소각으로 발생하는 환경문제를 이유로 환경부담금의 납부 의무를 부가하려 하는 등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이 두 문제의 공통점은 배출량과 처리 및 사용량을 맞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2018년처럼 상황이 심각해지기 전에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대란이 발생하고 나서야 땜질 처방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필자는 해법으로 정부에서 폐기물산업 정책을 수립 기준이 되는 원칙을 우선적으로 만들고, 이에 기반해 시장참여자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하여 공정하면서도 유연한 정책을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 정책 원칙의 가장 근간이 되어야 하는 부분은 합법적인 기업, 즉 인허가를 취득해 제도권 안에 있는 기업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들은 법률규제 하에서 활동하며 정책수립을 위한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있고, 처리의 투명성 역시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가 수많은 불법업체들을 실제 폐기물처리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눈감아주고 있다. 당장 중요한 것은 눈앞의 민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데이터 제출 의무도 없고, 결국 통계에서 누락되어 정책수립의 걸림돌이 된다.
물론 이들을 무조건 규제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인허가를 취득해 합법적인 활동을 하도록 할 수 있는 유예기간 등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대부분의 폐기물 업체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야 정확한 데이터가 수집되고, 이를 기반으로 페기물 배출량과 사용 및 처리량을 산출해 장기적이고 정확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아무쪼록 올바른 원칙의 수립으로 땜질 식 처방이 아닌, 정확하면서도 시장상황에 유연하게 맞춰 나갈 수 있는 폐기물산업 정책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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