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新회계 논란에 시작된 `눈치싸움`

임성원 2024. 11. 1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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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까지 무·저해지 비중 93.1%
롯데손보 등 수익 급감에 '예외'로 기울 듯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부가 손해보험사들의 보장성 상품에 대한 회계 처리 방식을 체계화 하겠다고 나서면서 '눈치싸움'이 치열해진 모양새다. 그간 손해보험업계는 새 회계제도에서 생명보험업권보다 유리한 보장성 상품 구조로 무·저해지 판매에 적극적이었다.

특히 지난해 새 회계제도 도입 후 흑자 전환했던 롯데손해보험 등은 실적이 크게 악화할 우려가 있어 방어 태세를 갖출 전망이다. 롯데손해보험이 매각을 진행하는 가운데 시장에선 최대 3조원대의 '몸값 고평가' 논란이 지속했다.

10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대형 손보사 5곳(삼성·DB·메리츠·현대·KB) 및 중소형사 3곳(한화·롯데·흥국)의 올 1~8월 누적 기준 무·저해지 환급형 질병보험 원수보험료는 6조826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손보사의 93.1%에 해당하는 수치이며, 작년 연간의 76.3%를 돌파한 수준이다.

8개사 중 무·저해지 판매 비중이 큰 곳은 삼성화재(1조6541억원)였으며, 그 다음으로 △DB손해보험(1조3795억원) △메리츠화재(8500억원) △현대해상(7877억원) △KB손해보험(6201억원) 순이었다. 중소형사 중에선 롯데손해보험(5718억원)의 판매 비중이 높았으며, 한화손해보험(5658억원), 흥국화재(3972억원)가 그 뒤를 이었다.

무·저해지는 해약환급금이 표준형 상품보다 없거나 적으면서 보험료를 10~40% 저렴하도록 설계한 상품이다. 중도 해지할 경우 보험 계약자에게 금전 손실 등이 발생하지만, 보험사들은 저렴한 보험료와 함께 납입 기간 이상으로 유지하면 혜택이 크다는 점을 내세웠다. 특히 보험사들은 지난해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후 핵심 수익성 지표인 신계약 보험계약마진(CSM)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보장성 판매에 총력전을 펼쳤다. CSM은 확보한 신계약을 통한 미래 이익 실현으로 추정되는 현재가치로, 일부 보험사들은 경험통계가 부족하다는 점 등을 들어 해지율을 완납 직전까지 과도하게 높게 잡아 CSM 및 당기순이익 등을 부풀렸다.

최근 금융당국은 이 같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보험개혁회의를 통해 무·저해지 상품 등에 대한 명확한 개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자의적 가정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손익에 드러나지 않지만, 미래에 이연된 누적 위험으로 건전성이 갑자기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중구난방이었던 무·저해지 등 상품의 회계 처리 방식을 체계화함으로써 보험사 간 본격적으로 옥석가리기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저해지 해지율에 적용할 계리가정은 '로그-선형모형(실무상 수렴점 0.1%)'을 원칙 적용할 방침이다. 다만, 각 사의 경험통계 등 특수성을 고려해 '선형-로그모형' 또는 '로그-로그모형' 등 다른 모형을 적용하는 예외 가정도 허용했다. 대신 예외 모형을 사용한 곳은 합리적인 채택 근거를 제시하고, 계리법인의 외부검증을 철저히 하도록 했다. 또 원칙 모형과 CSM 및 지급여력비율(K-ICS), 당기순이익 등의 차이를 분기별로 공시하도록 했다. 금융감독원은 예외 모형을 선택한 회사의 현장점검과 함께 계리법인에 대해선 감리근거를 신설해 외부검증의 적정성을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보험업계 일각에선 또 한번의 '변칙' 적용을 하는 곳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하며, 지속가능한 보험산업을 위해 보험 회계에 대한 불신을 타파한다는 정부의 취지가 무색해진 꼴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동안 실무단 회의에서 중소형사뿐 아니라 대형사 대부분도 원칙 적용을 적용할 경우 수익성 및 건전성 지표가 크게 악화할 수 있다며 대안을 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대형사 중에선 그동안 상대적으로 낙관적 가정을 한 DB손해보험과 현대해상이, 중소형사 중에선 롯데손해보험 등이 원칙 적용 시 타격이 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롯데손해보험은 지난해 흑자 전환을 달성한 보험사로 새 회계제도 시행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지난해 롯데손보의 연간 순이익은 3024억원으로 전년 631억원 손실에서 대폭 개선했다. 롯데손보는 장기 보장성 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며, 지난해 보장성 보험 중 무·저해지 비중은 37%에 달했다. 올 8월까지 기준으로도 해당 비중은 36%를 돌파했다. 롯데손보는 현재 매각 진행 중인 손보사로, 최소 2조원 이상의 몸값을 내세우지만, 시장에선 이 같은 매각가에 부합하는 경영 상황인지,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해왔다. 실제 우리금융지주도 인수에 관심을 갖고 실사까지 마쳤지만, 최종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새 회계의 계리가정 문제점과 이를 해결할 정답도 알고 있지만, 보험사 반발에 원칙 적용만을 내세울 용기가 부족했던 것으로, 결국 원칙이 또 무너진 상황"이라며 "한 곳이 예외안으로 간다고 할 경우 다른 곳도 안 갈 수 없어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성원기자 son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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