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야심작 '반도체 20조 프로젝트'…미국이면 5조 아낀다

황정수/박의명/김채연 2024. 11. 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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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 vs 미국 25%…반도체 稅혜택 '극과 극'
韓 일반 반도체공장
15% 공제율과 달리
R&D용은 고작 1%
대만은 5% 감면
"차세대 제품 경쟁력
결국 R&D에 달려
시설 공제율 올려야"

삼성전자가 20조원을 투입하는 경기 용인 기흥 연구개발(R&D) 단지 등 ‘반도체 R&D용 시설·장비 투자’의 국내 세액공제율(1%)이 미국(25%)의 25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지었다면 5조원을 돌려받지만, 한국에 세운 탓에 2000억원만 공제받는다는 얘기다. 반도체 생산라인은 최대 15%를 깎아주지만 ‘사업용’이 아닌 R&D용 시설·장비에는 그만큼 공제해줄 수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산업계에선 “차별적인 공제율만 보면 차세대 반도체 경쟁력을 좌우할 미래 투자 대신 당장 돈벌이가 되는 생산시설 투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라며 “근시안적 정책이 반도체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10일 산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이 11일 발의하는 반도체특별법에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요청해온 ‘반도체 R&D 시설·장비 투자 세액공제율 상향’ 조항은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단체들은 현재 1%인 관련 세액공제율을 일반 반도체 생산시설(15%)만큼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일반 반도체 생산시설은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대상으로 지정돼 15% 공제를 받지만, R&D용 시설·장비 투자는 기본공제율(1%)을 적용받는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해 용인에 짓기로 한 기흥 R&D 단지의 세금 감면액이 2000억원인 이유다. 같은 돈을 평택 반도체 공장에 투입했을 때 받는 감면액(3조원)의 15분의 1이다. 한경협 관계자는 “R&D용 시설·장비 투자야말로 반도체 경쟁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투자”라며 “해외만큼은 안 되더라도 최소한 생산시설 투자만큼 공제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R&D용 설비 투자에 25%, 대만은 5%의 세액공제율을 적용하고 있다.

 삼성 R&D단지 美에 지었다면 5조 감면…'반도체 전쟁' 뒷짐진 韓
"전략기술공제에 R&D 설비 포함…공제율 올려 격차 해소해야"

삼성전자가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에 짓는 차세대 연구개발(R&D) 단지 ‘NRD-K(New Research and Development-Kiheung)’.

“세상에 없는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의지가 담긴 이 프로젝트의 투자금은 최첨단 반도체 공장 1기와 맞먹는 20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세액공제율은 일반 공장의 15분의 1에 불과한 1%다. ‘사업용 시설’이 아닌 만큼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공제율 15%)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정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같은 시설을 지으면 어떨까. 삼성전자의 세금 감면액은 투자액의 25%인 5조원으로 불어난다. 산업계 관계자는 “R&D 단지에는 최첨단 반도체 사업화를 위한 장비가 투입된다”며 “미래 반도체 경쟁력을 위한 투자를 닦달하면서 R&D 시설 투자 공제율을 생산시설 투자 공제율보다 낮게 책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총수가 직접 챙기는 R&D 시설

10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30조원이 넘는 돈을 R&D에 투입한다. 2020년 20조원(21조1100억원)을 넘어선 지 4년 만에 R&D 투자를 50%나 늘린 셈이다. SK하이닉스도 R&D 투자액을 2020년 3조4820억원에서 올해 5조원 안팎으로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대규모 R&D 투자가 제품과 서비스로 나올 수 있도록 최전선에서 뒷받침하는 곳이 R&D 전용 단지다. 여기에 들어가는 R&D용 장비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 등의 엔지니어들이 차세대 제품 개발 과정에 활용하고 시험 생산해보는 등 사업화 가능성을 점검하는 데 주로 쓰인다.

예컨대 2~3년 뒤 1나노미터(㎚·1㎚=10억분의 1m)대 최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정에 활용될 것으로 전망되는 ASML의 ‘하이-NA 극자외선(EUV) 노광장비’가 가장 먼저 설치되는 곳이 R&D 전용 라인이다.

총수들도 R&D 시설을 각별히 챙기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2022년 8월과 2023년 10월 두 번이나 NRD-K를 찾았다. 20조원 투자를 결정한 이도 그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지난 1월 올해 첫 현장 경영으로 경기 이천의 SK하이닉스 R&D센터를 방문해 인공지능(AI) 메모리 개발을 주문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R&D 단지는 미래 반도체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자산”이라고 말했다.

 초라한 R&D 시설 세액공제

R&D 시설·장비 투자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나 몰라라’다. 정부는 2021년 12월 반도체 등 첨단 산업 지원을 위해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를 도입했다. 2023년엔 대기업 반도체 시설투자 공제율을 기존 8%에서 15%로 올렸다. 하지만 R&D용 시설투자는 대상에서 쏙 뺐다. 조세특례제한법에 적용 대상인 ‘사업화 시설’이 나열돼 있는데, 여기에 R&D 시설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반도체 경쟁국은 각 기업의 R&D 시설·장비 투자에 차별 없이 대규모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미국은 R&D용 클린룸 건설 등 제조와 관련 있는 R&D 시설 투자에 25%의 세액공제를 적용한다. 대만은 첨단 장비 투자의 세액공제율이 5%인데, R&D 장비에도 똑같은 혜택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는 R&D 시설투자 공제 제도가 없지만, 정부가 자국에 투자한 국내외 반도체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준다.

이런 점에서 R&D 시설·장비 세액공제율을 현재 1%에서 15%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및 신성장 사업화 세액공제에 적용되는 시설 범위에 R&D 설비와 장비를 포함해 공제율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정부와 국회에 이런 방안을 다시 건의하기로 했다.

황정수/박의명/김채연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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