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빨간 잠수경'은 고쳤는데 낡은 설치예술 어쩌나

김다빈 2024. 11. 1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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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의 상징적 조형물 '빨간 잠수경'이 유지보수 작업을 마치고 12일 공개된다.

그동안 리모델링 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던 건축주와 작가가 원만하게 합의한 덕이다.

빨간 잠수경은 건축주인 현대백화점이 작가의 요청을 받아들이며 다행히 문제가 해결됐지만 노후 공공예술품 처리의 법적 가이드라인이 없어 작가와 건축주 간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건축주인 현대백화점은 육 작가 허락 없인 보수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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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잠수경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 조형물>
전국 2만4000개 건축 미술품 '유지보수' 갈등
빨간 잠수경 건축주 현대백화점
육근병 작가와 전격 합의
수리 보수 마치고 12일 공개
광주 '기원'·서울 '한강기념비'
철거 원해도 작가반대로 손 못대
관리 해체 관련 법규정 마련해야
4일 서울 창천동 현대백화점 신촌점 앞 조형물 '빨간 잠수경'이 유지보수를 위해 철거돼 있다. /김다빈 기자


서울 신촌의 상징적 조형물 ‘빨간 잠수경’이 유지보수 작업을 마치고 12일 공개된다. 그동안 리모델링 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던 건축주와 작가가 원만하게 합의한 덕이다.

빨간 잠수경은 건축주인 현대백화점이 작가의 요청을 받아들이며 다행히 문제가 해결됐지만 노후 공공예술품 처리의 법적 가이드라인이 없어 작가와 건축주 간 갈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 7월 23일자 A25면 참조

 재단장 마친 빨간 잠수경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서울 신촌점 앞 빨간 잠수경을 약 2주간 개·보수한 뒤 12일 다시 선보인다.

이 작품은 2009년 현대백화점이 신촌점 입구에 설치한 4m 높이 조형물이다.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육근병 작가의 ‘생존은 역사다’ 연작 중 하나다. 15년간 신촌광장을 지킨 랜드마크로 자리잡았지만,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이 슬어 흉물스럽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럼에도 건축주인 현대백화점은 육 작가 허락 없인 보수할 수 없었다. 저작자가 작품이 그대로 활용되도록 할 권리인 ‘동일성 유지권’을 갖고 있어서다. 양측은 수리를 맡을 제작사와 비용 등을 놓고 견해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미관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원작 취지를 살릴 제작사에서 보수하겠다”는 육 작가 입장을 현대백화점이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월 19일 철거되기 전 '빨간 잠수경'의 모습.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이 슬었다./최혁 기자


기존 빨간색을 다시 칠하고, 내부에서 영상물이 상영되는 원작 그대로 복원됐다. 작품 설치 당시엔 내부에서 프로젝터를 통해 영상이 송출됐지만, 고장 이후 방치된 상태였다. 육 작가는 “도시 속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새로 제작 중”이라고 했다. 영상은 12월 중순부터 송출될 예정이다.

 여전한 작가·건축주 간 갈등

건축 미술작품을 둘러싼 작가와 건축주 간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1995년 일정 규모 이상 건축물을 신·증축할 때 건축주가 의무적으로 미술작품을 설치하도록 한 이후 전국에 깔린 작품은 2만4000여 개에 달한다.

광주시는 제1회 디자인비엔날레가 열린 2005년 당시 시청 앞에 설치한 이탈리아 건축가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기원’을 철거하려다가 멘디니 측 반대에 직면했다. 작품에 사용된 천 소재가 오염과 파손에 취약해 매년 이를 교체하는 데 1억원 이상을 쓰고 있어서다. 그러나 멘디니 측은 ‘동일성 유지권’을 이유로 철거에 반대해왔다. 2019년 그가 사망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광주시가 올해 초 유족에게 철거를 요청했으나 유족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서울 청담도로공원에 설치된 한강종합개발기념비 역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찬양한다는 이유로 시민들의 철거 요구가 들끓었지만 저작권자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처럼 건축 미술작품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건 설치 계약서에 사후 관리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에도 건축 미술작품의 유지보수, 장소 이전, 변경 조치에 관한 내용이 없다.

이철남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국과 미국은 예술위원회에서 건축 미술작품의 유지보수와 처분을 관할하는 절차를 두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관리 매뉴얼과 사후 처리 방안을 마련해야 사후 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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