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논란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사라진 ‘공정과 상식’

박순봉·유새슬 기자 2024. 11. 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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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윤석열 정부]③
‘늪’이 된 김 여사 문제 대처, 무너진 공정과 상식

김건희 여사 논란은 윤석열 대통령이 근간으로 삼아 온 ‘공정과 상식’의 가치를 붕괴시킨 현재진행형 아킬레스건이다. ‘검사 윤석열’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이 화두를 선점했지만, ‘대통령 윤석열’은 김 여사에게 충성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이를 무너뜨렸다. 10%대 국정 지지율에도 김 여사 논란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 여사 문제에서 국민적 상식에 부합하는 태도를 보이지 못하면 남은 임기 국정도 발목이 잡힐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9월10일 자살방지를 위해 마포대교 난간에 설치된 도르레를 직접 만져보고 있다. 대통령실제공

지난 7일 임기 반환점을 맞아 열린 윤 대통령 기자회견에선 김 여사 질문이 가장 많았다. 질문한 26명의 기자 중 10명이 이 문제를 물었다. 절반의 임기에서 국민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주제가 김 여사란 의미다.

답변은 ‘남편 윤석열’에 가까웠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가 ‘사과를 많이 하라’고 조언했다면서 “이것도 국정 관여, 농단은 아니겠죠?”라고 말했다. 김 여사 특검법은 “삼권분립 체계의 위반”, “정치선동”, “인권유린”이라면서 특검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수사 특검팀장이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지난 7일 통화에서 “김 여사 한 명만 만족할 기자회견”이라고 말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제는 어떤 참모도 김 여사 문제를 윤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는 없는 상황임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김 여사 문제는 지난 2년6개월간 ‘공정과 상식’이 훼손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윤 대통령이 ‘공정과 상식’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대선에 나서고, 정부 출범때부터 주요 화두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윤 대통령의 대응이 문제를 확산하며 국정 신뢰를 떨어뜨렸다. 김 여사 문제에 관대한 태도와 적극 방어하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공정과 상식이라는 가치와는 멀어졌다는 평가가 끊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현재까지 ‘문제적 대응’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2021년 12월17일 김 여사의 학력·경력 위조 등에 사과했다. 당시 그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경력 기재가 정확하지 않고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제가 강조해 온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과거 제가 가졌던 일관된 원칙과 잣대는 저와 제 가족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다고 인정했으나, 구체적 경위나 어떤 의혹을 인정하는 지는 말하지 않았다.

이후 윤 대통령은 김 여사를 전담 보좌하는 제 2부속실 폐지하겠다며 “영부인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언론에 밝혔다. 김 여사의 공식 활동을 자제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럼에도 논란이 이어지자 2021년 12월26일 김 여사가 직접 사과했다. 다음날인 12월27일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에 출연해 “뭐 어쨌든 자기도 또, 남편의 위로를 받고 싶지 않았나 싶고, 여자로서”라고 말했다.

공언과 달리 김 여사는 공개적으로 혹은 비공개적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개식용 금지법을 추진하자는 입장을 냈고 이를 여당에선 ‘김건희법’이라고 명명했다. 민간인에게 명품백을 받아 지탄받고, 서울의소리 기자와의 통화가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가 논란이 됐으며 급기야 명태균씨 공천 개입 의혹에도 연루됐다. 경찰과 함께 마포대교를 찾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같은 활동은 윤 대통령의 약속이나 김 여사 자신이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2021년 12월 26일)”고 말한 것과 배치된다.

취임 후에는 김 여사 문제가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다는 수준의 입장 표명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박절’하지 못하거나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는 정도의 언급을 계속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신년 기자회견을 대체한 KBS와의 대담에서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 “(가방을 준 최재영 목사 같은 인사를)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 (상대를)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좀 문제라면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한 대표와의 면담에서 “집사람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했고, 지난 7일에는 “국민께 걱정과 염려를 드렸다”고 두루뭉술하게 사과했다. 김 여사 논란을 개인의 ‘성정’ 문제로 다루는 대응이 반복되며 ‘내로남불’이란 비판을 불렀다.

그 사이 윤 대통령 리더십과 국정 동력은 크게 훼손됐다. 대선 전부터 거론되던 ‘김건희 리스크’가 현실화하는 동안 여권의 제어장치가 어디에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17%까지 추락한 지난 7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부정 평가 이유 중 ‘김건희 여사 문제’(19%)가 1위를 차지했다. 조기 레임덕에 빠져들면서 임기 후반기 윤석열 정부 국정 과제도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많다.

국민의힘 내에선 수면 아래서 김 여사의 활동 중단을 넘어선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김 여사가 활동 중단하는 수준에서는 민심이 회복되기가 어렵다”며 “관저에서 나오거나 해외로 유학을 가거나 이런 식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김 여사 문제는 이제는 여당이나 참모들의 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며 “오직 윤 대통령과 김 여사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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