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도 줄서…'미래가속기' 24시간 돈다

고재원 기자(ko.jaewon@mk.co.kr) 2024. 11. 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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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성자가속기 시설 르포
100m 터널에 첨단장비 빼곡
반도체·우주패권 가를 열쇠
기업수요 급증…경쟁률 4대1
"국가간 경쟁 갈수록 치열해
韓도 업그레이드 서둘러야"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경주 양성자가속기를 점검하고 있다. 원자력연

지난 7일 경북 경주시 건천읍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 내 양성자가속기 시설을 찾았다. 양성자가속기는 수소 원자에서 전자를 떼어 만든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 장치다.

가속기를 보기 위해서는 2.5m 두께의 콘크리트 문을 지나야 한다. 가속기 가동 중에 나오는 방사선을 막기 위한 차폐용 문이다. 문을 지나 왼쪽을 돌아보자 100m에 달하는 긴 터널이 보였다. 이 터널 안에 양성자를 만드는 이온원, 11개 가속관으로 구성된 75m 길이 가속기가 길게 뻗어 있었다. 원통형 가속기에는 관과 배선이 일정한 형태로 연결돼 있었다.

이재상 원자력연 양성자과학연구단장은 "양성자를 초당 13만㎞ 속도로 다른 물질에 충돌시킬 수 있는 거대한 과학 연구시설"이라며 "향후 국내 반도체·우주산업의 패권을 가를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양성자가속기는 '현대과학의 연금술사'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다. 물질 구조나 성질을 변환시키고 신물질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가속시킨 양성자를 물질과 충돌시키면 다른 물질의 원자핵과 반응하거나 원자핵을 쪼개 다른 원소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플라스틱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거나 암 진단에 사용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하고 물질의 특성을 변화시킨다.

가속기가 있는 터널을 나와 복도를 걷다 보니 표적실에 다다랐다. 표적실은 양성자 빔을 표적 물질에 쏘는 실험실이다. 표적을 거치하는 거치대와 함께 빔이 나오는 구멍이 있었다. 최대 빔 전류는 20㎃(밀리암페어)다. 1초당 1경2000조개의 양성자를 쏠 수 있다는 의미다. 표적실에서 나온 이 단장은 "이달도 풀부킹"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국내 반도체 기업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1대1이었던 가속기 시설 사용 경쟁률은 올해 상반기 4.17대1로 치솟았다.

도입 초기 200만원(8시간 기준) 수준이던 서비스 비용이 전기료 인상 등과 맞물려 1000만원으로 올랐지만 경쟁률은 낮아지지 않고 있다. 원자력연은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8월부터 24시간 빔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며 하루에 최대 3차례 평가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반도체업계에서 양성자가속기가 각광받는 것은 반도체가 3㎚(나노미터)의 초미세 공정 수준으로 발전해서다. 반도체가 초고집적화되면서 '소프트 에러'가 발생하는데 우주에서 유입된 방사선 영향으로 반도체에 오류가 발생하는 현상이다. 양성자가속기를 이용해 1초 동안 10년간의 방사선량을 조사함으로써 최대 10만년의 반도체 내 소프트 에러 발생률(SER)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도 기업들이 앞다퉈 이곳을 찾는 이유다. 이 단장은 "예전에는 우리 기업들이 일본으로 가서 양성자가속기를 사용하곤 했지만 이젠 일본도 이를 제한하고 있다"며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점, 조 바이든 정부 때도 쇄국정책을 핀 점 등을 고려하면 미국에서도 양성자가속기를 쓰는 것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시설은 2012년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구축한 양성자가속기다. 최대 가속 에너지가 100메가전자볼트(MeV)로 이는 1.5V 건전지 6700만개의 에너지와 동일하다. 미국은 1기가일렉트론볼트(GeV), 일본은 3GeV, 한국보다 구축이 늦었던 중국은 1.6GeV의 가속기를 갖추고 있다.

원자력연은 시급성과 산업적 활용도, 경제성을 고려해 우선 200MeV로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가속기를 더 연장해 가속관을 늘리는 데 대략 25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단장은 "현재 성장하고 있는 우주산업 패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최대한 빠르게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주 고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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