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투어리즘을 통해 본 동두천 옛 미군 위안부 성병관리소 [김동진의 다른 시선]
공간 보존은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일
(시사저널=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특별히 날씨가 좋았던 지난 주말, 필자는 동두천으로 특별한 투어를 다녀왔다. 투어는 31년째 영업 중이라는 한 부대찌개 식당에서 시작되었다. 과거 가난하던 시절에도 항상 물자가 풍족했던 미군부대에서 나온 소시지와 햄을 기반으로 우리나라의 김치와 라면을 혼합해 끓여 먹는 음식인 부대찌개의 역사에 대해서는 필자도 익히 알고 있었다. 소시지와 햄을 좋아하는 자녀들 때문에 가끔 집에서도 그리 맵지 않게 끓여 푸짐하게 먹던 메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별다른 생각 없이 먹던 부대찌개를 실제로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지역에 가서 먹으니 그 의미가 더욱 새롭게 다가왔다. 단순한 음식의 범주를 넘어, 그동안 멀게 느껴지던 미군부대와 그 주변의 사회적 환경이 필자의 일상 속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온 감각이었다.
이 특별한 투어의 다음 방문 장소는 '주한미군 공여지 반환운동 기념비'가 있는 어느 산중턱이었다. 주한미군 공여지의 반환 및 개발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실제로 그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지역주민 활동가 출신 가이드의 생생한 언어로 접할 수 있었다. 시민단체의 오랜 투쟁 끝에 결국 공여지 반환을 이뤄내 온 마을 주민들이 잔치를 했다는 오래전 스토리는 지금 그 장소에 머무름으로써 나의 몸에 스며드는 감각으로 다가왔다.
다음으로는 1992년 윤금이씨 피살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지나, 해당 사건의 범인인 케네스 마클의 소속이었던 미군부대 게이트가 보이는 곳에 머물렀다. 미군부대가 창출하는 지역경제에 기대어 살던 시민들조차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들고일어났다는 바로 그 현장에서, 스물여섯에 스러졌던 윤금이씨의 숨결이 아직도 맴도는 듯했다. 그 자리에 선 필자의 발걸음은 이제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증인이 되었다.
미군들이 부르던 멸칭 '몽키하우스'
이런 루트를 지나 다음으로 만난 장소가 바로 철거 위기에 놓인 옛 미군 위안부 성병관리소, 일명 '몽키하우스'였다. 1973년부터 1996년까지 운영된 성병관리소는 성병 보균자 진단을 받은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완치될 때까지 감금 관리하던 장소다. 성병 보균자를 정부가 치료해 주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이 공간의 존재는 대한민국 정부가 자국민 여성을 상대로 포주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1961년 제정한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있음에도 미군 부대 반경 2km 지역에 한해 성매매를 허용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직업소개소로 위장한 인신매매를 통해 미성년자 10대 여성 청소년들이 강제로 미군 위안소로 유입되었다. 뒤늦게 속은 것을 알게 된 여성들이 도망가려 시도해도, 지역 경찰과 포주들이 연결되어 있었기에 여성들은 다시 속수무책으로 잡혀 들어왔다.
국가에서는 이런 미군 위안부 여성들을 '달러벌이 역군'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동시에 포주와 지역 경찰들은 미군 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미군의 폭력에 대해 철저히 눈감았다. 포주들은 여성들이 도망가거나 질병으로 일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의 비용을 부담하라며 자신들만의 계산법을 강요했고, 여성들은 실제로 목돈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끊임없이 빚을 갚아야 했다. 성병 관리 또한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성병에 걸린 미군이 지목하는 여성이라면 보균 유무와 상관없이 성병관리소에 감금했고, 검진표를 지참하고 있지 않아도 무조건 성병관리소로 데려갔다. 검사 결과 성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진단받은 여성까지도 감금해 페니실린을 강제 투여했다. 당시 사용되던 페니실린은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지 않던 종류였고, 부작용으로 사망한 여성들도 있었다. 또한 짧게는 4일 길게는 한 달 정도 성병관리소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의 치료비와 그 기간 동안 일하지 못해 생긴 비용을 여성들이 부담하게 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아 필자 역시 별생각 없이 부르던 명칭인 '몽키하우스'는 성병관리소의 철창 속에 갇힌 여성들의 모습이 우리 안에 갇힌 원숭이와 같다며 미군들이 부르기 시작했던 사실상 멸칭이란 것을 이번 투어를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 성병관리소 철거를 반대하는 천막 시위를 67일째 이어가고 있다는 농성장과 동두천을 테마로 한 자작곡을 연주하는 아티스트의 공연 현장을 지나 좁은 사잇길로 돌아가서 만난 옛 성병관리소는 소요산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처연하게 그 존재를 드러냈다.
그간 문서와 증언으로만 마주하던 미군 위안부의 역사가 이제는 그 건물의 창살 너머에 갇힌 소녀들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라 도망가더라도 금방 잡혀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실재하는 공간에서 그 여성들의 삶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소요산 주차장·호텔 건립 계획은 납득 안 돼
과거의 역사는 기록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이렇듯 실재하는 공간으로도 존재한다. 역사적 장소를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유지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우리는 자랑스럽고 성공적인 역사적 경험뿐 아니라, 수치스럽고 절망적인 역사적 경험으로부터도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흔히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국가적 성매매와 관련된 장소이기 때문에 수치스러운 기억을 떠올린다며 철거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 공간을 보존한다는 것은 국가가 자국민 여성을 상대로 했던 폭력의 역사와 마주하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일이다. 또한 그 공간의 방문자들이 단순히 지식으로 역사적 사건을 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사건의 역사적 무게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여, 과거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으로부터 나아가 사회적 책임의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적인 의미도 지닌다.
필자가 참여했던 그 특별한 투어는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의 지원으로 '경기 북부 평화시민행동'이 주최한 다크투어리즘 공론장 사업의 시범 투어였다.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비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장소·사람들과 연관된 여행의 형태로, 인간이 겪어온 어두운 역사를 직접 경험하고 이해하며 기억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던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2011년 9·11 테러가 발생했던 미국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등이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명소로 알려져 있고, 국내에서도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 그 예시라 할 수 있다.
동두천시의 시민단체들은 이미 수년 동안 해오는 옛 성병관리소 보존 활동의 일환으로 작년과 올해 그 건물의 보존 및 활용을 위한 아이디어 공모전과 토론회 등을 개최한 바 있다. 동두천시가 현재 검토 중인 소요산 관광객 주차장과 호텔 건립 계획은, 옛 성병관리소 건물이 지닌 역사적 가치와 교육적 의미를 고려할 때 재고의 여지가 있다. 시민단체와 역사학자들이 제안하는 다크투어리즘 활성화 방안은 이 공간을 통해 창출할 수 있는 또 다른 사회적 가치와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다. 철거 위기에 놓인 그 공간이 이제는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가 아닌 성찰적 미래의 이정표로 우뚝 설 수 있기를, 그래서 그곳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역사적 아픔을 넘어 인권과 평화의 길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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