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에 저항하는 절박한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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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척(慘慽)의 고통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그는 딸을 잃고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죽은 자들에게 가해진 잘못은 남은 자가 대신 사할 수 없다.
그 누구도 희생자를 대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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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척(慘慽)의 고통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외할머니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보냈다. 이어 연탄가스 중독 사고로 큰아들을 잃었다. 스무 살 남짓에 이 세상을 떠난 외삼촌에 관해 물어도 어머니는 별말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식당을 하며 매일 단골손님들과 약주를 했다. 해방 전해에 태어난 당신은 환갑을 앞두고 눈을 감았다. 당신이 병원에 있을 때 문병을 가 두 손으로 당신 손을 쓸었는데 이제 당신 얼굴이 흐릿하다. 당신은 내게 서느런 그리움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지났다. 2023년 11월 책방에서 파주 운정신도시에 사는 유가족을 모시고 추모의 밤을 보냈다. 그리고 어김없이 또 10월이 왔다. 2024년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그 유가족을 다시 모시고 추모회를 열었다. 우리는 살아내기 위해 망각한다. 이 세계가 참혹하고 비통한 일로 가득하다는 걸 잊지 않으면 삶을 이어가기 힘들 것이다. 나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일들을 자주 잊어버리고 그것이 부끄러워 울음을 삼킨다.
남은 자는 증언한다. 그는 애써 미소 지으며 자리를 지켰다. 그가 살아낸 지난 1년의 세월 동안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일상을 보내는 동안 그는 끔찍한 시간과 직면했다. 그리고 참사는 반복됐다. 그가 물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누구를 위한 일일까요? 희생자를 위한 일일까요? 유가족을 위한 일일까요?”
죽은 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딸을 잃고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곁이 돼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살아야겠다고, 살아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이야기하는 그가 있고, 흐느껴 우는 사람들이 있고, 아물지 않을 상처가 있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이 있다고 믿는 그가 있고, 귀 기울여 듣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앞에 다다른 이후가 있다.
죽은 자들에게 가해진 잘못은 남은 자가 대신 사할 수 없다. 단지 기억할 뿐이다. 그들을 위해 증언할 따름이다. 그 누구도 희생자를 대신할 수 없다.
세상의 소리를 거스르는 역성(易聲)의 용기가 필요한 때다. “처박혀버린 얼, 처박힌 이름, 처박힌 리듬, 짓밟힌 넋”(‘역성’)을 되찾기 위해. 이승윤은 순리를 거부하는 잡음을 엮어 세 번째 정규 앨범 ‘역성’을 내놓았다. 그는 라이너 노트에 “음악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적으며 “음악을 듣는 이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믿고 싶”다고 덧붙였다.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다.
책방에 온 유가족은 자기 딸이 바리케이드 너머에 있는데도 딸을 만나기까지 12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기억의 힘은 세다고 하지요.” 무엇 하나 쉽게 얻어지는 게 없었다는 그는 아주 작은 관심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책방에 모인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다며 싱긋 웃었다. 지난 2년의 세월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태원 참사 2주기 기록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창비, 2024)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진실이란 그것을 묻고 이해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추모회가 끝나고 유가족을 배웅하며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는 밝은 표정으로 추모회가 힘이 됐다고 내게 말했다. 그가 가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망각에 저항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지. <끝>
최지인 시인
* ‘너의 노래 나의 자랑’은 이번 회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최지인 시인과 열독해주신 독자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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