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물 새고 무너지는데···전세사기 주택 관리 나선 지자체 단 ‘1곳’

심윤지 기자 2024. 11. 1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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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인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7월 건물 외벽이 무너져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외벽에 붙어있던 가스 배관까지 파손되면서 큰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아파트에서 외벽 붕괴 사고가 일어난 것은 지난해 말부터 벌써 세 번째다. 하지만 건물 수리 책임이 있는 임대인과는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안전사고를 우려한 세입자들이 구청에 조치를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확인해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강민석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대표는 “겨울이 오고 바람이 거세지면 붕괴 사고는 또 일어날 것”이라며 “전세사기 피해가 장기화되면서 누수나 결로, 타일깨짐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외벽 붕괴 사고가 일어난 인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업체 직원이 18일 붕괴로 파손된 마감재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이 아파트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많이 산다. 이예슬 기자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지자체가 책임지고 관리하도록 한 ‘전세사기특별법’이 개정 두달째를 맞았지만, 지자체의 움직임은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리 업무를 조례로 규정한 지자체는 전북 전주시가 유일했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0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전세사기 피해지원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 41곳 중 ‘피해주택 안전관리 및 감독’에 대한 내용을 개정한 지자체는 전북 전주시 한 곳 뿐이었다.

지난 9월 공표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은 전세사기 피해주택이 임대인의 연락두절로 안전 확보 및 피해복구가 시급한 경우, 지자체장이 현황 조사와 공공위탁관리·비용 지원을 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필요한 사항은 해당 지자체의 조례로 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주시를 제외한 나머지 40개 지자체는 개정안이 통과된 지 두달이 지나도록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피해 주택 관리 책임이 있는 지자체에서 법적 근거 마련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가 지난 9월 수원시 전세사기 피해자 690명을 대상으로 한 ‘전세 피해주택 관리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는 하자처리나 유지보수 등 시설물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의 90%는 임대인과 연락이 닿지 않아 수선 및 관리 요청을 포기한 상태였다. 전기·수도세 등을 장기간 미납해 단전·단수 안내문이 붙거나, 승강기·차량차단기·폐쇄회로(CC)TV 등이 고장난 상태로 방치된 경우도 흔했다. 관리비 연체나 이용 중단은 피해자들이 직접 대응할 수 있다지만, 소유권이 없는 개인이 전면적인 수선이나 관리에 나서기는 한계가 있다.

승강기 사용료가 장기 연체된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운행 중단 안내문이 붙어있다.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 제공

지자체들 역시 같은 이유로 개입을 꺼린다. 건물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임대인 동의 없이 공공이 위탁관리나 수선을 맡겼다가, 추후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수원·부천 등 전세사기 피해가 밀집한 경기도에서도 관련 조례 개정을 진행 중이지만 ‘임대인이 추후 구상권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도의회 의원들의 우려로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권지웅 경기 전세피해지원센터장은 “임대인이 동의를 한 경우에만 지자체가 지원을 하고 있다”며 “조례보다 상위에 있는 개정 법률도 ‘안전 확보 및 피해복구가 시급한 경우’로 개입을 제한해뒀기 때문에 지자체들이 적극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주택에 남겨진 피해자들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문 의원은 “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가장 바란 것이 국가의 피해주택 관리 지원이었는데, 정작 조례 제정 등 후속 조치가 미진한 실정”이라며 “빠른 시일 내 적극적인 관리·감독이 이뤄지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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